좌파진지 전락한 공영방송, 시민단체 개혁운동 전개해야

 

   
▲ 황근 선문대 교수
해방이후 한국 정치의 지형도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어 왔다.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가 횡행하던 시절 선거구도는 기껏해야 ‘여농야도(與農野都)’였다. 농촌지역은 여당이 유리하고 야당은 도시지역에서 지지율이 높다는 말이다. 왜 ‘기껏해야’라는 표현을 썼는가 하면, 돈을 뿌려서 선거를 치렀던 관행이 도시와 농촌간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실상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한국사회의 정치지형도는 1960년 군사정부 등장과 이어진 유신정권 그리고 신군부를 거치면서 ‘민주 대 반민주’구도로 재편됐다. 이 구도는 이전과 달리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철저히 배타적인 구도라는 것이 특징이다. 서로가 ‘타도의 대상’이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정치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근대화세력’과 ‘민주화세력’ 이라는 이분법 갈등구도 역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에서 이어져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작년에 있었던 대통령선거결과에 대해 야당과 야당성향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선거무효’를 외치고, 박근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이러한 배타적 구도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주 대 반민주’ 구도와 더불어 지난 30년이상 한국사회에 깊이 착근되어 있는 것이 이른바 ‘영호남 지역’ 구도이다. 정치적 지역구도가 형성되게 된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1960~70년대 경제성장 거점이 주로 영남지역에 편중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소외된 호남지역 유권자들의 차별감이 반영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지역구도가 확실하게 한국정치구도를 지배하게 된 것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유력 정치인이 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과 오버랩 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도와 ‘지역구도’가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지금까지도 한국정치를 견고하게 지배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결합된 정치구도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처음 깨달게 된 것은 1987년 1노3김이 대결한 대통령선거였다. 선거결과 70~80년대 민주화를 주도해왔던 김대중, 김영삼 두 후보의 지역을 기반으로 한 분열구도로는 정권을 획득할 수 없다는 자괴심이 들게 되었다. 이같은 정치구도에서는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1989년 1월 3당 합당과 민자당 창당으로 그 같은 패배의식은 더욱 팽배하게 된다.

이같은 배경에서 진보진영은 사회 문화 언론분야 같은 비정치적인 영역에 대한 이른바 ‘생활속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좌파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친 진지전’을 준비해온 것이다. 1980년 중반과 후반 전교조와 현재 언론노조의 전신인 방송노조가 출범한다. 이어서 90년대 들어 ‘문화연대’가 출범하면서 문화 전 영역에 걸친 이른바 ‘장기 혁명(long revolution)'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절묘한 지역연합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정부가 출범하면서, 이처럼 사회문화영역에 구축해온 대중적 지지기반이 표면화되기 시작한다. 90년대 말에 몰아친 인터넷혁명과 모바일 열풍이 이들 문화운동과 결합되면서, 급기야 2002년 노무현정권을 탄생시킨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도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사이버공간은 진보진영의 견고한 문화권력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보수세력들에 의해 인터넷 공간에서의 패권도전이 시도되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언론분야에 대한 진보세력의 권력지형변화를 위한 전략은 ‘언론개혁운동’을 통해서 추진되었다. 언론개혁운동은 크게 두 방향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조·중·동 보수신문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보수정치권력과 유착되어온 공영방송 또는 공영방송을 표방하고 있는 방송사들 내부에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신문개혁은 노무현정부 시절 극성을 떨었던 ‘앤티 조선운동’ 같은 시민활동과 조·중·동의 시장지배력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신문법 개정이다. 물론 이 때 개정된 신문법 법률조항들은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모두 헌법불합치 혹은 위헌판정을 받아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 공영방송이 사회권력화하고 있다. 노조등 직원들과 좌파세력이 공영방송을 장악해 정치지형화하면서 방만한 경영을 일삼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합리적 보수시민단체가 좌파들이 견고하게  똬리를 틀고 장악한 공영방송을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주는 개혁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사진은 KBS노조의 총파업출정식 장면.

방송개혁은 주로 방송사내에서 언론노조를 통해서 추진되었다. 목표는 방송사내에서 언노련의 주력인 PD와 기자들이 경영진의 통제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우선 경영진의 통제를 받지 않은 PD들이 독립적으로 제작하는 프로그램, 예를 들면 ‘PD수첩’ ‘2580’같은 시사프로그램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2003년 집권한 노무현정부 시절에 이같은 노조의 전략이 사측과 밀접히 연계되어 이같은 정치적 시사 다큐프로그램들이 더욱 극성을 떨게 된다. 아직도 기억되고 있는 ‘인물현대사’ 같은 프로그램들이 바로 그런 맥락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아울러 시청자참여라는 명목으로 진보좌파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제작한 프로그램들이 고정 편성되기 시작한다,

또한 기자와 PD들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편성규약이 제정되고, 주요 경영진이나 간부들에 대한 중간평가도 도입되었다. 또 공정방송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주로 노조에서 문제제기한 프로그램들에 대한 방송여부를 노사가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제도적 변화는 2010년에 폐기되었지만, 전통적인 방송사내의 상하관계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팀제 도입이다. 최근에도 야당과 KBS노조가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보도책임자 등 주요 간부에 대한 종사자 동의제’같은 것들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것들이다.

실제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착근된 방송사내 노조의 막강한 권력은 보수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제거되거나 개편되지 않는다. 도리어 보수정권의 취약성 때문에 이러한 권력과 결탁해서 적당히 넘어가는 미봉책에 그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같이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20년이상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진보진영의 언론권력 확보노력은 이른바 ‘언론개혁' 혹은 ‘방송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추진되어 왔다. 물론 한편으로 보면, 방송개혁운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방송을 되찾아오는데 일정부분 기여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개혁이라는 미화된 개념이 국민들에 대한 막연한 동의 아니 최소한 큰 저항 없이 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쟁취한 방송권력을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 국민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종사자들이 끌어안고 있는 ‘방송의 전유화’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방송개혁은 ‘독점적 공영방송사 혹은 종사자’들의 경제적, 사회적 권력화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번 코레일 파업에서 드러난 것과 같은 공기업(KBS는 법적으로 공기업은 아니지만 실제 구조는 공기업과 같은 형태다)의 방만함과 비효율성 그리고 도덕적 해이가 구조화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방송개혁은 방송의 사회권력화 그리고 진보진영의 견고한 진지화를 구축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보수진영에서 더 강력하게 방송개혁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정치권, 특히 보수정권은 자신들에게 결코 유리할 게 없는 방송개혁을 할 의지도 없고 또 할 용기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 합리적인 보수 시민들이 나서서 철저하게 정치지형화된 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개혁운동을 전개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정치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종사자들이 주인이 되어 버린 공영방송을 진정한 주인인 시청자 즉,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될 것이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