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제작비 싼 보도 교양프로로 연명, 종편 취지 못살려

   
곽경수 고려대 언론학과 강사(언론학박사), 전 청와대 춘추관장
새해 들어 종합편성채널들이 다시 언론계 이슈의 한 가운데에 섰다. 평소 비판을 받던 막말 방송이나 편파 방송 혹은 방송사고 때문이 아니다. 그것 보다는 훨씬 더 크며 근본적인 문제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편 재승인 심사가 바로 그것이다.

 2011년 12월 1일 방송을 시작한 종편 4사 중 JTBC, 채널A, TV조선은 방송 승인 유효 기간이 각각 올해 3월 혹은 4월로 종료되기 때문에 3월에 재승인 심사가 예정되어 있다(MBN은 11월 말 재승인 심사 예정).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달 안에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3월말 이전에 재승인 여부를 최종 의결할 예정이다.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종편 1~2개는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미리부터 엄포를 놓고 있다.일부 언론관련 NGO와 언론 학자들도 엄격한 재승인 심사를 요청하고 있다.

이에 반해 종편사와 종편을 소유하고 있는 일부 신문들은 자체 기사를 통해 정치 토론 활성화를 통한 여론 다양성 조성, 일자리 창출 등 지난 2년 동안 종편이 많은 역할을 했다며 재승인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이제 출범 2년이 지난 지금 종편은 계속 필요한 존재인가? 모든 종편들의 재승인은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대체 몇 개의 종편이 남아야 하는가를 차분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 기준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프로그램의 편성 및 제작의 적절성 등 이라고 하지만 그동안의 심사 결과를 보면 대부분 재승인을 담보로 한 정권차원의 방송 길들이기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지금까지 재승인을 못 받은 언론사가 iTV 1개에 불과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는 기존의 정치적 판단이 아닌 객관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종편들이 존재 가치가 있었는지 알아보고, 만약 있었다면 종편들이 허가 당시 약속했던 사항을 이행했는지를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 방통위가 3월중 종편4사 중 3개사에 대해 재승인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종편들은 당초 미디어산업 다양화, 일자리 창출,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 강화 등을 내세웠으나, 편성프로의 60%이상을 값싼 보도 교양프로에 치중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점을 감안하면 종편 설립취지에 근접하는 종편들만 재승인하는 등 선별적인 재허가가 바람직하다.

독자가 없는 신문은 존재할 수 없듯이 방송의 존재 이유 역시 시청자다. 시청자들이 선택하지 않는 방송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 종편들은 출범 초기 시청자 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약 1%대의 시청자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이 집계한 종편들의 2013년 평균 시청률을 보면 MBN 0.88%, TV조선 0.80%, 채널 A 0.75%, JTBC 0.74%로 이는 기존 채널인 YTN의 0.65%나 EBS의 0.73%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편 4사의 평균 시청률을 모두 더하면 3.17%로 SBS 평균 시청률 4.50%과 1.33%p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종편4사의 평균시청률 그래프가 우상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갈수록 시청률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시청자들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종편의 존재 이유는 나름대로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 종편 4사 월별시청률(출처: AGB닐슨)

   
 

이번에는 종편들이 허가 당시 약속했던 사항에 대한 이행 실적을 보기로 하자. 당시 종편들이 방송 허가를 위해 내세운 명분은 ‘미디어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미디어 육성’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 이었다.

먼저 ‘미디어 다양성 확보’ 차원을 살펴보자. 미디어 다양성이란 민주주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여론 다양성의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에 소유 구조의 다양성 측면이 우선시되는 경향이다. 그러나 소유권외에도 내용의 다양성, 노출의 다양성 등 여러 측면이 존재한다. 종편의 소유 구조 편향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내용의 다양성 측면을 검토해 보기로 하자.

종편이란 말 그대로 보도, 교양, 오락 프로그램을 모두 내보내는 채널을 말한다. 따라서 각 장르별 최소 편성 비율이라는 규제가 존재하거나 방송사 자율적으로 이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종합편성의 원조인 지상파들은 과도한 오락 프로그램 편성을 막기 위해 방송법 시행령에 '보도 10% 이상, 교양 20% 이상, 오락 20% 이상'으로 규제하였으나 이제는 각 방송사 자율에 맡기고 있다. 종편에 대해서는 방송법 시행령에서 오락 프로그램을 전체 방송시간의 50% 이하로 편성할 것만을 규정하고 있다.
 

방통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지상파인 MBC의 편성비율은 보도 19.8%, 교양 37.1%, 오락 43.1%이며, SBS는 각각 17.5%, 37.8%, 44.6%로 지상파 3사의 편성비율은 대체로 보도 20%, 교양 40%, 오락 40% 정도다. 종편인 JTBC는 보도 13.2%, 교양 42.9%, 오락 43.9%로 지상파와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TV조선, 채널 A, MBN 3사의 평균적인 편성 비율을 보면 보도 45.5%, 교양 30.3%, 오락 24.2%로 보도와 교양의 비율이 76% 가량이나 된다.

편성비율 준수의 당초 취지였던 '오락 과잉 금지'라는 명분을 역이용해 보도·교양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종편 3사가 이처럼 기형적인 편성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드라마 등 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해서는 적자로 인해 채널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초기 실패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편들은 그동안의 신문사 운영을 통해 자신들이 자신있는 분야인데다 제작비도 적게 들어가는 보도·교양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종편은 편성만 보면 종편 채널이라기 보다는 YTN과 같은 보도전문채널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다음은 글로벌 미디어 육성 측면을 보자. 글로벌 미디어 기업으로 발돋움 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보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나라 방송계에서 지상파 3사나 CJ E&M 등이 가장 경쟁력이 크다고 하는 것도 경쟁력을 갖고 있는 콘텐츠 때문이다. 그런데 앞의 미디어 다양성에서도 나타났듯이 종편의 콘텐츠는 보도 교양에 집중되어 있어 경쟁력 있는 콘텐츠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경쟁력있는 프로그램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호소하는 프로그램인데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이 그러한 장르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인기 있는 한류 콘텐츠를 보라. 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 드라마, 예능, 영화 등 모두가 오락 프로그램이다. 물론 다큐 등 교양 프로그램도 국제 경쟁력이 있을 수 있으나 종편의 교양 프로그램은 다큐 등은 없고 대부분 시사토크 프로그램이기에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가 없다.

우리 국민 빼고 그 누가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그렇게 관심을 갖겠는가. 결국 다양한 장르의 콘텐트를 제작해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미디어 그룹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약속은 종편 스스로 시작부터 좌절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의 편중 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재방송 비율이다. 방통위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TV조선의 재방송 비율은 56.2%, JTBC의 재방송 비율 59.0%, 채널A의 재방송 비율은 56.1%에 이른다. 결국 보도나 시사토크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오락 등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 제작은 그만큼 더 적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부분의 종편사가 방송 2년 만에 적자가 1,000억 원 이상 쌓이면서 제작비 절감의 압박은 더욱 커지고 있다. 따라서 제작비가 적은 보도·시사 프로그램에만 집중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지난해 종편 4사의 프로그램 제작비를 보면 오락 프로그램 비중이 높은 JTBC는 1,625억원인데 반해 MBN 802억원, TV조선 861억원, 채널A 942억원에 불과한 것도 이 예측이 올바르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종편 출범 당시의 당위성 가운데 하나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당시 종편들과 정부는 종편 채널 1개를 허가하면 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 전체적으로 2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통위가 발표한 ‘방송산업실태조사’를 보면 종편 출범 첫해인 2011년 방송계 인력은 2,556명 증가, 2012년은 1,445명 증가, 2013년은 통계가 아직 없지만 약 1,000명 가량 증가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결국 종편 출범후 방송계 전체에서 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더구나 이 일자리가 모두 종편으로 인해 창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그렇다 하더라도 당초 창출하기로 했던 일자리 20,000개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일부에서는 종편이 은퇴한 연예인이나 소위 ‘듣도 보도 못한’ 정치 평론가의 일자리를 만든 것이지 방송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젊은이를 위해 일자리를 만든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국 종편 4사는 출범 2년 만에 1%대의 시청률을 기록해 시청자의 눈길을 잡는 데 성공하면서 나름대로 존재 가치를 증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초 약속했던 ‘미디어 다양성 확보’와 ‘글로벌 미디어 육성’ 그리고 ‘일자리 창출’ 등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종편 4사의 재허가를 모두 취소 할 수는 없다. 종편사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는데다 모두 취소하게 되면 이는 종편의 책임이 아닌 정부의 책임이 되어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기에 정부에서도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종편 4사 모두 재허가를 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을 스스로 초래한 종편사에 대해서는 분명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은 선별적 재허가이다. 그나마 당초 약속을 지키려했던 2개사에 대해서는 종편 재허가를, 1개사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시사보도에 전념하도록 종편을 취소하고 보도전용채널로 허가를, 그리고 다른 한 개사에 대해서는 허가 취소를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 종편에 제공했던 특혜(의무재전송, 10번대 채널 배정, 방송발전기금 납부 유예)는 방송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전면 취소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곽경수  고려대 언론학과 강사(언론학 박사), 전 청와대 춘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