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80년대 중반 외교부 공무원으로 미국에서 연수를 받고 있을 때 미국에서 망명 생활 중이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향을 관찰해 당시 신군부 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17일 공개한 198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1985년 1월8일 유병현 주미 한국대사는 이원경 외무장관에게 미국 학계·법조계 인사 130여 명으로 구성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이 김 전 대통령의 안전 귀국을 요청하는 연명 서한을 전두환 당시 대통령 앞으로 같은 달 10일 보낼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이런 내용은 당시 하버드 대학에 연수 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이 하버드대 교수로부터 입수해 주미 한국대사관에 알렸다고 유 장관은 전문에 적었다.  유 장관은 육사 7기 출신으로 초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후 1981년 합참의장을 끝으로 대장으로 예편한 뒤 주미대사(1981∼1985년)를 지냈다.

전문에 언급된 '반 참사관'은 당시 외무부 소속으로 하버드대 케네디 행정대학원에서 수학하던 현재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언급한 것이다. 주미대사관은 나흘 뒤인 1월 11일 이 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이 당시 전두환 대통령 앞으로 보낸 서한을 첨부했다.

당시는 김 전 대통령이 전두환 신군부 정권의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하다 1982년 말 신병치료를 위해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 생활을 할 때다.

한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이 망명 2년여 만에 1985년 2·12 총선을 앞두고 귀국하려 하자 귀국시 재수감하겠다고 압박하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총선 직전인 2월8일 귀국했다.

'김대중 안전귀국 보장 운동'은 서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한 헌신적 노력으로 세계에서 존경을 받는 김대중이 귀국할시 안전과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요소일 것"이라면서 "국내적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려는 노력은 모든 국가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이런 노력이 귀국의 1985년 국회의원 선거,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올림픽 게임과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화합을 성취하는데 중대한 요소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미측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교활하고 믿지 못할 인물"(1월 29일 외무부 보고), "간교한 인물"(2월 9일 주한미국대사관 1등서기관과 외무부 미주국장 면담) 등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귀국 후 신변 처리 문제가 자국 여론에 미칠 영향을 주시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김 전 대통령이 진작 죽었으면 통일이 빨라졌을 것이다. 반 총장이 잘한 행동이다”고 댓글을 남겨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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