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회장의 선진부국 4만불 경제정책-차별화경제 강의(2)

   
▲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
한국경제의 천지개벽 요인과 향후 과제

지난 200여년의 근현대 경제발전사를 살펴보면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고 재산권을 보장하여 열심히 자조하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부를 축적하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보다 활짝 열어준 나라들은 성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부의 평등이니 분배의 평등이니 하여 자조하는 국민들을 폄하해온 나라들은 예외 없이 실패하였다. 그리고 발전의 노하우를 먼저 창출한 흥하는 이웃들이 그 영광을 지속하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인류역사에 일등문명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음은 상식이며, 18~19세기 이후 근현대의 경제발전의 역사에 있어서도 일등경제가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모두 경제발전의 노하우가 무임승차되는 경제진화의 본질적 특징 때문이다. 무임승차는 버스회사를 망하게 하는 이치에 다름 아닌 것이다.

영원한 일등경제는 없고 영원한 일등 기업도 없고 영원한 일등은 어느 분야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1등의 저주’라고 할 수 있다. 1등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추월(catch-up)당하게 되는 것이다. 후발자가 선발자를 무임승차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최근 50여년의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예외지만 대부분의 유럽 선진국이 걸어온 길은 흥하는 이웃을 폄하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다. 수정자본주의라고 하여 사회주의 이념을 수용하고 보편적 무상복지제도를 강화했다. 유럽 대륙의 대부분의 국가는 사회민주주의를 내걸고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국가의 경제적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서구를 무임승차한 일본 또한 명치유신이후 100년 동안 꾸준한 성장을 거치지만 1970년대 들어오면서부터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여 "우리도 유럽이다"라고 하면서 도입한 제도가 바로 사회민주주의 체제이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평등주의정책을 일본은 벌써 30년 전부터 시작한 셈이다. 국가 균형 발전, 수도권 규제, 유도리 교육 등 일본이 먼저 앞서서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최근 우리나라는 일본을 30년 정도 뒤따라 하고 있는 셈이다.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30년 정도 하고 나니까 일본의 성장도 꼼짝없이 내려가는 것이다. OECD 선진국들이 선진국병에 걸려있다면 우리는 중진국 병에 걸렸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일을 우리는 선진국이 되기도 전에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가 일본에 무임승차한 것이고 우리가 도약한 이후 중국이 우리를 무임승차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발전의 노하우가 끝없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일본의 성공노하우는 물론 실패의 노하우까지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일등의 저주현상을 기업을 통해 보면 더 흥미롭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삼성전자는 일본의 전자업계에 무임승차하였는데, 이러한 점에서 세계 10등에서 2, 3등으로 갈 때까지 삼성전자는 오히려 편한 측면이 있었다. 맨 앞의 소니를 열심히 쫓아가면 문제가 없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까 삼성은 맨 앞에 서게 되었고, 이제는 전 세계 전자업계들이 삼성전자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 한국경제는 60~90년대까지 30여년간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기업,조직 등에 대한 차별화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일본이 유럽의 평등과 분배 지향의 사회민주주의를 받아들여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듯이 한국도 일본의 사민주의를 수용해 성장이 정체되는 중진국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사진은 반대기업적인 경제민주화 광기를 부추기고 있는 좌파 시민단체가 특정대기업에 대해 비난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면.

국가나 개인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뒤에 쫓아가는 사람이 앞에 가는 사람을 ‘착취’해서 궁극적으로 따라잡는(catch-up) 것이 세상의 변화 이치인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은 이런 이치를 거꾸로 본 셈이다.

지구상의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은 많은 경우 경제 이론보다도 이념에 의해서 결정된다. 주류경제학은 가능하면 이념을 배제하는 것이 경제학의 과학화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지난 2세기 동안 열심히 경제학을 발전시켜 왔지만, 실제 경제정책은 많은 경우 이념에 의해서 결정된다.

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론에 따르면 혁명을 통한 평등사회 건설이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이다. 이 세상은 계급투쟁의 장이고 이 세상에서는 앞선 자가 뒤떨어지는 자를 착취한다고 생각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이 세상이 모순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한다고 했는데 거꾸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이용해서 같이 발전해 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닐까. 오히려 뒤따라오는 사람이 앞서있는 사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임승차해서 따라 배우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칼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리면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착취”하는 셈인 것이다. 내 주위에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으면 내가 발전하지 못하고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듯이 부르주아가 없으면 세상은 발전하지 못한다. 결국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한다.” 이것이 오늘날 복잡계로 진화한 네트워크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 작동원리이다.

칼 마르크스의 이념, 더 나아가 사회주의의 이념은 초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성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나 지금의 자본주의체제는 어느 누구와든 열린 비선형적 상호작용을 통해 시너지를 공유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즉 닫혀 있으면 엔트로피의 극대화를 막을 수 없는 철저한 네트워크 사회로 진화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네트워크가 다 못하는데 나만 더 나아질 수는 없으며, 나보다 앞선 네트워크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 또한 보다 많은 시너지를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칼 마르크스는 이 세상의 이치를 거꾸로 본 셈이다. 사회주의이념은 ‘흥하는 이웃이 있어 내가 망한다’는 자본주의관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의 자본주의사회는 오히려 ‘흥하는 이웃이 더 많아야 내가 더 흥하는 구조’로 진화한 셈이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이념의 실현과정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