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심판’ 호남 민의 무시하는 어리석음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우리나라 정치 역사에서 문재인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정치인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속칭 텃밭, 안방이라는 곳에서 완벽히 비토당하고도 대권 레이스에서 1위를 달리는 유례없는 경우의 주인공이 문재인이다. 더 기이한 것은 이런 민심의 배척을 본인은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선거 며칠 전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에서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 하겠다"더니 막상 그런 일이 벌어지자 "호남의 패배는 아주 아프다"면서도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는 더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말도 했다. "우리 당이 더 노력하도록 국민이 회초리를 들어주신 것이다"라고.

문재인은 호남 민심이 회초리를 든 대상을 자신에게 국한시키지 않고 더민주당 전체로 돌렸다. 공은 나누고 과는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보통 존경받는 리더들의 태도라면 문재인의 이런 모습은 분명 그것과 거리가 있다.

문재인의 호남 무시 역사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적 기반인 호남의 28석 중 25석을 국민의당에 내주었다면 상식적인 판단을 가진 이라면 지지를 거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세간에 '문재인의 저주'라는 우스갯소리도 그렇다. 당이 그렇게 반대해도 기어코 호남에 내려가더니 광주 8곳 중 그나마 국민의당 후보에 앞서가던 광산을 이용섭 후보가 낙선했고, 다른 지역에서도 민심의 태풍을 맞고 친문 후보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호남이 문재인을 가차 없이 심판했다는 진실을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그런 결과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호남 민심이 자신을 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튕겼다. 이건 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면 의도적인 무시로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수도권 승리를 핑계로 배수진까지 쳤던 자기 발언조차 적당히 뭉개고 넘어가겠다는 얕은 잔꾀다. 문재인을 준엄히 심판하고도 이것조차 무시당한 호남의 심정은 지금 어떻겠나. 문재인의 치명적 약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전남 순천시 아랫장시장에서 노관규 후보와 함께 사죄의 절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실 이런 면에서 문재인이 보여준 성향은 꽤 오래됐다. 10여 년 전인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에 가서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호남 민심을 들쑤셨던 일화는 유명하다. 여러 복합적인 원인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그 여파로 광주와 전남에서 민주당에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당이 국민의당에 참패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부산에 가서 호남 민심에 염장을 질렀던 문재인은 이번엔 호남에 직접 가서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해 버리겠다고 아예 자해공갈 식으로 윽박질렀다. 그게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차이다. 문재인은 과거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와 경험을 바탕으로 교훈을 얻었다거나 반성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10여년 만에 한층 더 노골적으로 호남 무시의 태도를 보여준 꼴이 되고 말았다.

문재인의 정계은퇴가 호남 민심 다독일 것

호남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압도적인 몰표를 줬다. 그러나 그 후에도 호남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평가한 것이 바로 이번 선거 결과다. 친노와 호남 중심의 비노 간 감정골을 메우지 못하고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갈라진 분당사태의 책임, 그 과정에서 문재인이 보여준 태도에 대한 섭섭함, 무책임 등 그동안 쌓이고 쌓인 것들이 폭발한 것이다.

한결같이 준 마음이 무시당하고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고 깨닫는 순간 드는 진한 배신감은 분노와 증오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문재인이 호남의 마음을 다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어렵지만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호남 땅에 가서 호남 민심을 향해 본인 입으로 말한 정계은퇴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광주에서 당선되면서 징조를 보였던 작년 4.29 재보선 때, 참패한 후 "우리당이 패배한 것일 뿐 국민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는 궤변을 더 되풀이해서는 곤란하다.

문재인은 그해 10.28 재보선에서 다시 패배하고도 "우리당은 많이 부족했다. 국민들을 투표장으로 이끌 만큼 희망을 드리지 못했다. 우리당을 더 혁신하고 더 단합해서 꼭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며 민심을 무시했다. 문재인은 당이 갈라지기 전, 전임 김한길 안철수 대표처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다.

호남에 가선 정계은퇴 배수진이나 치고, 또 그렇게 심판당하고도 심판인지 아닌지 기다려보겠다는 뻔뻔한 태도만 보이는 것은 성난 호남 민심을 더욱 자극할 뿐이다. 특히나 그건 호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투표로 보여준 민심을 무시하는 것은 본인이 그렇게 강조하는 민주주의도 아니다.

문재인은 무엇보다 이번 총선 결과에 이러쿵저러쿵 떠들 주제가 못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두말할 것 없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 물러났을 것이다. 문재인은 이번 총선을 통해 드러난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야 한다. 그래야 호남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게 본인과 더민주당이 사는 길이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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