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총파업 밥그릇 싸움, 의료산업 활성화에 동참해야

우리나라를 둘러싼 경제 기상도는 흐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성장 동력마저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 없는 성장도 발등의 불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총생산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인 반면 고용은 정체되는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해 왔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economy, stupid)’란 말로 빌 클린턴이 조시 부시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것처럼 현대 정치에서 가장 주요한 이슈는 경제 활성화, 즉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지난 2000년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는 세금 인하, 금리 인하, 예산 증액 등의 경기 부양책을 써왔다. 하지만 이 같은 경기 부양책의 효과는 단기간에 실종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저투자·저금리·저물가·저성장 등을 특징으로 하는 디플레이션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장 동력 확보와 일자리 창출은 모든 국가, 모든 정권의 ‘숙제’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에서는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가 ‘서비스 산업의 발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보건의료 서비스 개선안을 추진하려는 것도 이 같은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든 ‘출구’를 찾아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 의사들의 파업 결의는 투자형 영리병원 허용 등 민영화를 위한 밥그릇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고부가가치형 의료산업 활성화와 일자리창출을 출발부터 가로막는다. 의사협이 집단이기주의를 버리고 정부와의 성숙한 대화를 통해 의료수가 규제 완화 등 진짜 이슈를 풀어가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문형표 복지부장관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동안 의료보건 서비스는 질병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지출로 인식돼 왔고, 이에 따라 보건의료 서비스 산업은 전형적인 소비산업으로 간주돼 이를 통한 성장 동력 확보 및 일자리 창출은 좀처럼 연계성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명공학기술의 획기적 발전과 이에 기반을 둔 첨단의료기술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 단순한 질병치료가 아닌 높은 건강 수준 달성을 위한 적극적인 보건의료 서비스 소비, 보건의료 서비스의 국제교역 규모 증가 등으로 인해 보건의료 서비스는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정책의 수혜 측면에서 볼 때 모든 이해 당사자가 만족할 수는 없다. 정부의 채무 탕감 정책이 대표적 사례.

채무 탕감은 사회적 약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들의 활발한 경제활동 참여라는 점에서 바람직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빚을 국가가 대신 갚아주게 되면 그동안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성실하게 빚을 갚아왔던 국민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원격의료 실시,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영리병원 추진) 등을 주요 골자로 한 정부의 보건의료 서비스 개선안을 의료계, 특히 동네병원을 추축으로 한 개원의들이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사안이다.

원격의료를 실시하게 되면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져 동네병원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은 막대한 자금이 대형병원으로 몰려 동네병원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동안 동네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즉 개원의는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실제 지난 2000년 2만명 수준이던 개원의는 2013년 3만3,000명으로까지 늘어났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에서 동네병원이 차지하는 의료비, 다시 말해 동네병원이 가져간 급여비는 지난 2001년 34.1%에서 2011년 21.6%로 줄었다. 한마디로 개원의는 숫자가 늘어 경쟁이 치열해진 반면 이들이 차지하는 파이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정부라고 해서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정부 역시 개원의의 수가 인상률이 전체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수준임을 알고 있다. 이에 따라 수가 인상에 대한 길을 열어 놓은 상태며, 원격의료도 동네병원 위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모든 사안이 그렇듯 칼로 무를 자르듯 명쾌한 해법 도출은 쉽지 않다. 더구나 원격의료 실시,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등은 의료법 개정과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이 통과돼야 가능한 일이다. 아직은 서로 입장을 조율하고 보완책을 마련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의협 집행부가 3월 총파업 카드를 제시한 것은 철도파업에서 보듯 자신들의 밥그릇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액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보건의료 서비스의 성격을 감안해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민영화 괴담’을 만들어 낸 야권 및 온라인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민주당은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확인도 없이 ‘의료 민영화’라는 용어를 들고서 대 정부 공세에 나섰고, 이는 곧장 대형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대형 포털 사이트가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주요 뉴스로 올렸음은 물론이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 운동을 시작했으며,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의료 민영화라는 단어와 관련된 자극적 만화와 영상물도 퍼졌다. 뭔가 짜여 진 각본에 따라 민영화 괴담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의료 불평등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의료 민영화가 이루어지면 맹장수술을 하는데도 900만원이 든다”는 황당무계한 괴담이 먹혀 들어갈 수 있다.

요즘 대한민국은 여론정치의 ‘덫’에 걸린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모든 정치 활동이나 정책 시행을 여론과 연결시켜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하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치 활동이나 정책을 시행하는데 있어 여론은 참작돼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하면 결과적으로 중우정치의 함정에 빠져들 수 있으며, 특히 괴담이 난무하는 온라인 여론에 휘둘리면 사실과는 다른 전혀 엉뚱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어느 정부도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정책을 시행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돈이 없어 아픈 것도 차별받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의료계의 소탐대실, 민영화 괴담이 의료산업 활성화를 출발부터 주저 앉히는 악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미디어펜= 정구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