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 현물출자 대가로 '법인세 500억' 부담
[미디어펜=이원우 기자]"좋은 마음으로 나섰다가 속된 말로 '독박' 쓰게 생긴 거죠."

산업은행이 500억 짜리 '법인세 폭탄'을 맞게 생겼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지만 이 경우는 그저 '서로 도우려다' 생긴 일이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국책 산업은행에게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다. 한국산업은행법 제1조는 '산업의 개발‧육성, 사회기반시설의 확충, 지역개발, 금융시장 안정 및 그 밖에 지속가능한 성장 촉진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관리'하는 것을 산은의 기능으로 정의하고 있다. 

너무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때때로 문제로 지적되지만, 산업은행이 국내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과 자산 건전성 관리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 산업은행이 수출입은행에 LH 주식 5000억 원어치를 현물출자 하려다 500억원 상당의 '세금폭탄'을 맞을 상황에 직면했다. /미디어펜


산은은 같은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의 건전성 악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2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식 5000억 원어치를 현물출자함으로써 9.8% 수준으로 내려앉을 위기에 놓인 수은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의 BIS 비율을 10%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취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이 과정이 생각처럼 녹록치 않다는 데 있었다. 

산은이 보유한 LH 주식에는 작년 3월 정부로부터 현물출자 받은 부분이 포함돼 있다. 현재 산은의 장부에 적힌 LH 주식의 가격은 4950원이다.

한편 수출입은행도 작년 정부로부터 약 1조원 상당의 LH 주식을 출자 받았다. 수은의 장부에 적힌 금액은 9295원이다. 산은 장부가와 4345원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현 상황에서 산은이 수은의 장부가 9295원에 맞춰 5000억 원어치를 현물출자하면 산은은 주당 4345원의 시세차익을 거두는 셈이 된다. 4950원짜리 주식을 9295원에 넘기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산은은 수은에 LH 주식을 주는 대가로 수은의 지분을 취득할 뿐이어서 실제 현금유입은 없다. 장부상에서만 시세차익이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세금이다. 세금은 장부상에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내야 한다. 현행 법인세법은 현물출자를 양도와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시세차익이 발생할 경우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은이 계획대로 5000억 원 어치의 주식을 수은에 현물출자할 경우 약 500억 원의 법인세를 부담해야 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다. 실제로 체감되는 차익은 없는데 세금만 500억이나 지출하게 생긴 셈이다.

일련의 상황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측면이 없지 않다. 산은과 수은이 서로를 돕게 된 계기는 작년 산은의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이 5조5000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냈을 때 수은이 약 1조6000억 원을 부담해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수은의 BIS 비율 악화를 막기 위해 산은이 나선 것이지만, 그 대가로 산은은 500억 원의 법인세를 부담하게 생겼다. 이럴 바에야 수은이 산은을 지원하는 의미도, 산은이 수은을 도와주는 의미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현재 산은과 수은 양측 모두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지만 매우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 관계자는 "거액의 세금까지 물어가면서 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산은 내에서 '억울하다'는 여론이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은이) LH 주식 말고 다른 걸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기재부와 금융위는 '원칙론'에서 한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쉽게 말해 산은이 수은에 LH 주식 현물출자를 하려면 세금은 얼마가 됐건 당연히 전액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 나온 세법 개정이나 과세 유예안(案)은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산은이 사익 추구 차원에서 하는 일도 아니고 정부 방침에 맞춰서 하는 일인데 (당국이) 저렇게 나 몰라라 원칙론만 고수하는 게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맥락에서의 '정부 방침'이란 최근 당국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들을 정리해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과업은 현재 금융당국이 가장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대우조선해양을 떠안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산업은행은 기업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비상대기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LH 주식 현물출자 논란도 결국엔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다. 산은이 1998년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적자를 보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대손비용 부담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개최된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채권은행들이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원칙에 의거해 과감하고 신속하게 구조조정을 추진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속도감 있는 구조조정을 하려면 국책은행은 때때로 예상치 못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조조정 이행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대해 당국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는 기업 구조조정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

시장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돌아간다지만, 산업은행의 '보이지 않는 눈물'을 닦아줄 손이야말로 지금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