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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고 신봉승 선생의 마지막 종명 인터뷰
"정치고 교육이고 나라 돌아가는 꼴 볼 수 없어 역사에서 답을 찾아라"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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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04-21 10: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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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드라마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한 원로 극작가 신봉승 선생이 4월19일 별세했다. 사인은 폐암. 선생은 폐암 말기인 2012년 11월 마지막으로 책 두 권을 출판하고 더이상의 집필작업은 하지 않겠다며 마지막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전문. 

   
▲ 우태영 언론인
조선왕조실록 연구의 대가인 원로작가 신봉승(80) 선생이 최근 두 권의 저서를 잇따라 출간했다.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을 다룬 역사소설 '혁명의 조건'(도서출판 선)과 조선시대 성현들로 대한민국 가상 정부를 구성해 본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청아출판사)이다. 신 선생은 지난 여름 섭씨 40도 가까운 더위와 씨름하며 이 책들을 썼다. 지난 11월 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집필실에서 필자와 만난 그는 이번 책들을 쓰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과로사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는 더 이상 책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사실상의 절필을 선언했다.

신 선생은 2008년 폐암 진단을 받은 후 5년 동안 8권의 책을 저술하고 한 해 20여차례의 강연을 하는 등 정열적인 활동을 벌여왔다. 성공한 작가이며 예술원 회원인 그는 자녀들도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다. 남들 같으면 유람이나 다닐 상황이지만 신봉승 선생이 염천에 키보드를 두드린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판세를 보면 안타까운 구석이 너무나도 많아요. 정치도 그렇고, 아이들 교육도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다 해법이 나와 있어요. 역사를 연구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워요."

책 출간은 지식인의 의무

신 선생은 개인적으로도 써야 할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의 학자들이나 고위 관리들은 죽기 전에 종명시(終命詩)를 썼습니다. 종명시는 처음에 '살아서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았고, 책 속의 가르침에 어긋난 일이 없었다'고 시작합니다. 나도 살아있는 동안 사람의 도리를 하나라도 더 깨치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어요. 이번에 책을 쓰면서도 조금 더 빨리 깨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고 신봉승 선생은 생전 정치고 교육이고 나라 돌아가는 꼴 볼 수가 없다며 역사에서 답을 찾으라고 일침했다. /사진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에 신 선생이 낸 책들이 종명작이라면 이 인터뷰는 종명(終命)인터뷰가 되는 셈이다.

신 선생은 강릉사범학교를 나와 문단에는 시로 데뷔했다. 그 후 소설, 희곡, 평론, 영화, TV 드라마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81년부터 10년간, 그로서는 51세부터 환갑 때까지, MBC드라마 '조선왕조실록'의 극본을 쓰면서 조선왕조실록의 최고 권위자로 올라섰다. 매주 월요일 저녁 9시50분부터 60분간 방영된 이 드라마는 이성계부터 고종시대까지를 담은 대하역사드라마.

최고의 시청률은 세조의 측근 한명회(韓明澮)가 주역으로 나온 '설중매(雪中梅)', 최저시청률은 병자호란, 정묘호란을 담은 '남한산성'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의 TV드라마 10년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워 보인다. 그가 자부심을 갖는 것은 또 있다. "TV에서 조선왕조실록을 10년 하니까 이조실록, 이씨조선이란 말이 사라졌습니다. 식민주의를 청산하는 데 기여한 것입니다. 나의 커다란 자부심입니다."

신 선생은 드라마를 끝낸 뒤 5년 동안 대하소설 '조선왕조 5백년'(48권)을 집필했다. 이처럼 신 선생이 조선왕조실록으로 대작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한문으로 된 실록 전체를 읽었기 때문. 당시에는 아직 한글로 번역된 실록은 나오지 않았었다. 덕분에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관한 한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권위자가 되었다. 그 후에도 그는 실록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난세의 칼' '이동인의 나라' 등의 역사소설, '조선의 마음' '직언' 등의 평론집 등 조선에 대한 작품을 쉬지 않고 썼다. 최근에 낸 인수대비를 다룬 역사소설 '왕을 만든 여자'는 수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이처럼 역사소설을 써내는 이유는 지식인으로서, 원로로서의 국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바 료타로'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역사를 읽을 줄은 아는데 해석할 줄은 몰라요. 역사학계에서도 역사기록은 할 줄 알지만 전체를 아우르질 못합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한국사는 하나의 기록일 뿐 역사에 대한 해석이 없어요. 소설로 표현하면 재밌는 이야깃거리들은 많아요. 소설가 이광수(李光洙), 박종화(朴鍾和) 등이 얼마나 많은 역사소설을 썼습니까? '단종애사(端宗哀史)' '금삼의 피' 같은 역사소설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들은 사료를 그대로 옮겨쓴 듯합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이 없어요. 학자나 소설가나 역사 기록의 행간을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소설의 주인공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떻게 뛰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어요. 그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국가를 위해서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연구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신 선생은 역사해석을 통해 국민의식 형성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대표적 작가로 일본의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를 꼽는다.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 '료마가 간다' '언덕 위의 구름'은 각각 10권으로 된 대하소설. '료마가 간다'는 사카모토 료마를 중심으로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강대국으로 발돋움한 이야기이다. '언덕 위의 구름'은 20대 청년들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이야기. 일본에서는 이 책들이 3500만질이 팔렸다. 신씨는 "이 소설들은 일본인의 국가인식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며 "일본에 시바 료타로 같은 소설가가 있다는 것은 하늘의 보살핌"이라고 말했다.

신 선생은 역사소설을 통해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 "정사(正史)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우군이 없어서 외롭다"고 탄식했다. "우리 역사학계는 역사를 문자로만 읽습니다. 팩트 파인딩(fact-finding)만 하는 것 같아요. 행간을 읽지 못합니다. 젊은 학자들은 늘 '선생님, 기록 있습니까?' 하고 되묻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기록은 잘 알겠지요.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가 막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문학에 관심이 없어요. 역사인식이 없기 때문 아닐까요? 나는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보는 관점을 정확히 나타내야 한다고 봅니다."

이성계의 회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실 정통 사학계가 실증주의 역사학과 가치중립을 강조한 탓에 대중이 접하는 역사해석에 대한 주도권은 재야의 좌파 연구자들에게 넘어간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 선생이 최근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담은 '혁명의 조건'을 쓴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

"요즘 국민에게는 최영(崔瑩)은 좋은 사람, 이성계는 나쁜 사람처럼 되어 있는 듯해요. 당시 고려인들의 상황에서 보면 이성계는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최영은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이성계는 요즘 말로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이라고 할까요? 역사를 요즘의 정권 차원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정치적 이해집단의 입장에서만 봅니다."

내친김에 위화도회군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자.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결정하는 순간은 쿠데타입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수도인 개성을 점령하고 훈구세력의 거두인 최영을 귀양 보내는 등 전권을 장악하고도 왕좌에 앉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전제(田制)개혁만 했습니다. 또 그동안 자기는 오늘날의 부총리 격인 수문하시중만 하고 총리 격인 문하시중은 훈구파 인사들에게 맡겼습니다. 권력찬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죠."

당시 고려에서는 원나라와 결탁한 훈구세력과 불교사찰들이 백성들의 논밭을 다 빼앗아 가지고 있었다. 이성계는 이를 폭력을 거의 쓰지 않고 3년 만에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고려 훈구세력들은 물론 식자층은 대부분 반대했다. 이들의 땅문서를 개성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는데 3일 동안이나 탔다. 백성들이 이 땅문서가 불타는 것을 보고 이성계가 임금이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즉 처음에는 쿠데타였지만 전제개혁을 단행한 만큼 혁명이라는 것이 신씨의 견해. 이성계는 처음부터 권력욕이 전혀 없었을까?

"이성계는 시골인 동북면 출신으로 고려에서 출세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30년을 군(軍)에서만 살았죠. 그러던 이성계가 처음 고려 조정에 진입하여 지배층이 부패에 찌들어 있고 백성이 도탄에 빠진 것을 보고 거사를 치른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전제개혁은 모두 정도전 등 개혁세력이 했어요. 이성계는 오히려 속도 조절을 했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면 이성계는 조민수, 이색, 이임, 심덕부 등 훈구세력들을 문하시중에 천거했다. 훈구세력 스스로 개혁에 동참하도록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이들이 개혁을 거부해도 거의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신씨는 이성계의 이 같은 행태를 정치적 계산보다는 성품 때문으로 돌린다.

"과일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린다고나 할까요? 우유부단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부하들에게 우유부단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조선 선비들 도덕성 본받아야

그는 '혁명의 조건'에서는 이성계의 성품 중 '남보다 두드러진 점이 있다면 강직하되 사욕(私慾)이 없다는 점이고, 사욕이 없으니 사욕(邪慾)이 있을 까닭이 없다'고 요약했다. 그렇더라도 후대 사람들은 왜 최영, 정몽주를 높이 평가할까?

"충절을 기려야 한다는 점 때문인 듯합니다. 실제로 나중에 세종이 편찬한 삼강행실도에는 정몽주의 충절이 기록되어 있지요."
이성계 이후 조선왕조는 군부의 정권찬탈을 우려하여 군사력을 키우지 않아 태생적으로 약체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선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역사를 이해하지 못해 나온 주장입니다.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나라가 500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어요. 세계 역사상 최장수 국가가 되었습니다. 도덕적으로 바로 선 훌륭한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어야 했다는 주장도 있다.

"근대의 눈으로 조선을 볼 때 생기는 인식의 오류입니다. 역설적으로 임진왜란을 겪고도 망하지 않은 것은 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지배층이 똑똑한 때문이었죠. 조선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열심히 한 나라였습니다. 가난해도 마음만 바로 서면 된다는 것이 조선이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임금이 제 맘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선비들은 부패하지 않았으며, 임금에게 직언하고 배운 대로 행하였습니다. 신하들이 임금을 무턱대고 따라한 적이 없어요. 요즘처럼 아랫사람들이 무턱대고 윗사람을 따라한 적이 없단 말입니다."

대한민국도 조선처럼 지식층의 도덕적 각성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저술한 책이 바로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 "대한민국이 수립되고 대통령 이하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우리가 바로 이 사람이다 하고 기리는 반듯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조선왕조 519년 동안 임금은 27명, 참판 이상의 고관들은 600여명. 신 선생은 이 중에서 '반듯함'을 기준으로 현대의 대통령을 비롯한 각부 장관을 선정했다.

조선왕조 인물들로 내각을 구성해 보니

대통령에는 단연 세종대왕. 세종은 한글 창제 등 개인적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성군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가뭄이 들자 경회루 앞에 초가삼간을 지어 기식했고, 세금을 줄이려 세밀한 여론조사를 벌인 뒤 백성들의 의견이 분분한 세제개편은 중단한 것 등 어디 하나 모범되지 않은 행동이 없다.

'예(禮)로써 가르치면 상식적인 국민이 되고, 법(法)으로 가르치면 피동적인 국민이 된다'고 설파한 김장생(金長生·1548∼1631)은 교육부 장관감이다. 외교부 장관에는 구한말 승려 출신의 개화파 인사 이동인(李東仁)을 선정한 것이 파격이다.

국방장관에는 당연히 이순신 장군일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조헌(朝憲·1544~1592)을 뽑았다. 조헌은 일찌감치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사한 인물이다. 법무장관에는 도끼를 들고 상소를 올린 구한말 위정척사의 거인 최익현(崔益鉉), 검찰총장에는 ‘큰 간신은 충신 같고, 큰 탐관은 청백리 같다’고 경고한 신진사림의 기수 조광조(趙光祖·1482~1519), 감사원장에는 재야의 조식(曺植·1501~1572)을 선정했다. 그가 이 같은 가상 조각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타까움에서입니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볼 수가 없어요. 나는 조선 선비들이 얼마나 반듯한 사람들이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정치에 불만들이 많은데 역사를 읽으면 정치도 잘하게 됩니다. 역사책에 옳다고 나온 것은 지금 해도 옳은 것들이 많아요. 요즘 정경유착, 부패가 문제라고 합니다. 문제의 원인은 정치인들입니다. 정치인이 부패하면 안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조선 선비들의 도덕성은 우리가 하늘같이 받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습니다. 왕조실록을 읽으면 우리가 나아갈 길이 보입니다. 왜 앨빈 토플러만 읽으라고 합니까?"

그래도 사람들은 나중에 국권을 빼앗긴 것은 지도층 잘못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텐데….

"나라를 빼앗긴 것은 정보 부재 탓이라고 봐야죠. 조선의 선비들은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게 최대의 약점이죠. 조선 최고의 사상은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가르침입니다. 사서오경은 인간학에 대한 책입니다. 이 서책들을 익혀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되고 관리가 되어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선비들은 생각했죠. 사서오경의 가르침은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하는 것, 배워 익힌 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은 요즘처럼 성인이 되어 한 것이 아니었어요. 다섯 살 때 천자문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평생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학문은 몸에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선비들은 이 사서오경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근대에 들어와서는 불행해진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덕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부패도 거의 없었죠.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의원, 역관, 승려 등 중인 출신들이 조선 근대화에 앞장을 섭니다. 유홍기, 오경석, 이동인이 그들입니다. 하지만 이들 중인은 과거를 볼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이들의 주장이 조정에 반영될 수가 없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신 책 안 쓰겠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권위로서 조선 선비들의 도덕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이 남다르다. 그렇다면 요즘의 역사드라마에 대해서도 견해가 있을 듯하다.

"나는 극본을 쓸 때 사실에 기반을 두고 씁니다. 드라마에서 팩트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보다도 역사인식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사실을 다소 변형하더라도 조상들이 지켜온 근본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요즘에는 이러한 기본이 무너지고 있어요. 시청자들이 과연 배울 게 있을까요? 드라마 작가들이 역사 원전을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더 이상 책을 안 쓸 건지. "지난 여름에 그 더위 속에서 두 권을 쓰고 나니까 너무 힘들어요. 몸이 말을 안 듣는 느낌입니다. 이제는 다신 안 씁니다. 다만 한 가지, 조선시대 선비들이 어릴 때부터 무엇을 공부하며 성장했는가에 대해 쓰고 싶지만… 안 쓰겠습니다. 사실 나에게 쓰는 것은 숙명입니다. 놀고 싶어도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책은 안 써도 개인 홈페이지든 어디든 글은 계속 쓰고 싶어요." /우태영 언론인

(이 글은 '조선 pub'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우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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