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완화는 부동산시장 활로 단비불구, 대못 고수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라앉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하우스푸어, 렌트푸어, 깡통주택, 전세난 등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건설업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생산 및 고용 유발 효과 역시 높다. 한마디로 부동산 경기 부양은 건설사 도산, 금융권의 부실채권, 내수침체, 실업, 성장률 등을 일시에 해결해 주는 유용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대한 유혹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은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가 가장 버거워 했던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부동산 특유의 속성인 투기를 억제하면서도 경기 활성화를 유도해 내는 것은 좀처럼 맞추기 힘든 ‘퍼즐’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대 들어 수도권에 인구가 몰려들자 과감한 주택 공급정책을 시행하면서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해 강력한 투기억제책을 병행했다. 전두환 정부는 택지개발촉진법을 통해 주택용지 확보에 나섰고, 노태우 정부는 이를 발판으로 분당·일산 등 수도권 5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 역시 집값이 계속 오르고 투기도 꼬리를 물자 위헌 논란에도 불구하고 ‘토지 공개념’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와 부동산 시장을 규제했다.

김영삼 정부 들어 부동산 시장이 비교적 안정세를 보인 것은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는 정책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역대 정부의 과감한 공급정책과 강력한 투기억제책들이 비교적(?) 균형 있게 적용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한 쪽에 치우친, 다시 말해 브레이크가 없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다. 외환위기(IMF)의 후유증으로 경제 전(全) 부문이 장기침체에 들어가자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해 활로 찾기에 나선 것이다. 사실 ‘부동산 불패 신화’라는 말도 토지초과이득세 폐지, 분양권 전매제한 폐지 등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한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말이다.

이 여파로 지난 2001년부터 꿈틀대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은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걷잡을 수 없이 과열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전국의 아파트 가격은 34.0%, 서울은 52.9% 상승했다. 특히 강남 3구는 77.7%나 급등했다. 부동산 광풍이란 말이 실감날 정도였던 만큼 강력한 투기억제책의 출현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무현식 '부동산 보유=부자' 및 공공성 강화프레임에 갇혀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박원순시장의 과도한 공공성 강화 정책은 중산층의 재산형성을 저해하고, 원주민의 입주를 더욱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박시장(맨왼쪽)이 뉴타운과 재개발정책에 대한 정책구상을 밝히고 있다.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된 것은 물론 양도세를 올리고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분양원가 공개 등 각종 규제가 쏟아졌다. 굵직굵직한 부동산 대책만도 수십 가지에 달하며, 세세한 것까지 포함하면 부동산 규제가 500건 넘게 신설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 경기 과열 방지, 또는 투기억제책이 아니라 부동산 보유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이들에 대한 징벌적인 제재를 가하는 등 반(反) 시장적 행보를 보였다는 점이다.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의 과도한 부과, 개발이익은 물론 양도소득의 원천적 환수 등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처럼 주거비용을 고통스럽게 높이고, 시세차익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정의(正義)’로 여긴 흔적이 역력하며, 시장 논리를 무시한 무리한 정책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반론을 반(反) 사회적인 주장으로 몰고 갔다. 다분히 정치적 코드가 개입된 ‘도그마’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 장기침체의 원인을 노무현 정부의 ‘대못 박기’ 탓으로 돌린다. 그 만큼 정책의 후유증이 잔존하면서 시장을 왜곡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는 왜곡되고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완화 등을 추진하고, 이밖에 크고 작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부동산 광풍에 대한 우려가 국민 사이에 집단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는데다 야권과 반(反) 시장주의자들의 도그마, 다시 말해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부자들만 살찌게 하는 것’이라는 공세를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집 한 채를 갖고 있는 평범한 봉급생활자나 평생에 재산이라고는 집 한 채 밖에 없는 은퇴자 등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더욱 어려워지는 역설적 결과가 초래됐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의 ‘4.1 부동산 대책’을 통해 거래 회복의 활로를 모색하고, 이후에도 장기침체 탈출을 위한 후속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을 통한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완화가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용적률이 완화되면 똑같은 넓이의 땅에 더 높이 건축물을 올릴 수 있어 일반분양 주택 수가 늘어나고, 이는 곧바로 사업성 개선으로 이어져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활로 찾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문제는 용적률 완화가 ‘임의조항’이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에 따라 적용 여부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현재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의 용적률 완화 취지에 공감해 후속 조치를 검토 중이지만 서울시는 시의 정책 방향과 다르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일종의 딴지인 셈이다.

서울시는 그동안 임대주택 비율이나 소형 아파트 비율 상향, 공공용지 기부채납 등을 유도하는데 용적률 상향을 ‘미끼’처럼 이용해 왔다. 명분은 공공성 강화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모두 부동산 대못을 박았던 노무현 정부의 유산이며,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 탈피라는 당면 과제를 감안하면 지엽적인 정책에 불과하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로 건설사는 물론 이사운송업체, 인테리어업체 등 연관 업종의 연쇄 도산이 초래되고 있다. 청소, 전기, 가스 등 부대 서비스업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10만명이나 줄어든 건설업 고용이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가 건설부문 전체의 침체는 물론 경제 성장과 고용의 발목까지 잡고 있는 셈이다.

경제학 용어에 ‘동태적(動態的) 상황하의 의사결정’이라는 말이 있다. 전략(戰略)과 달리 전술(戰術)은 언제든 상황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의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완화는 전술 차원에서 접근돼야 함에도 공허한 명분만 고수하고 있다.

이는 '부동산 보유 = 부자'며, 부자를 위한 정책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노무현 정부 때의 도그마를 회상케 한다. 정치적 코드에 기반한 반(反) 시장적 접근의 데자뷰를 경험하는 것 같다는 얘기다. [미디어펜=정구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