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해운 구조조정 외면, 국책은 자본확충 정부에 떠넘겨
[미디어펜=이서영 기자]독일의 아우토반. 무제한 속도로 달리는 이곳에서 10대가 차량이 질주한다. 9대가 250km로 달리고 있다. 유일하게 한 대만 브레이클 밟았다. 100km로 다소 얌전하게 전진하고 있다.

모든 차량들이 질주하는데, 나홀로 저속 주행을 한다면 뒤쳐질 뿐이다. 목표물에 가장 늦게 도달할 뿐이다. 외톨이로 전락한다. 꼴찌를 한다.

한국은행의 요즘 행태를 보면 남대문사 홀로 도를 닦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에 대해 오불관언하고 있다. 미국의 FRB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이 무한질주하면서 물가 외에 성장과 고용을 중시하는 양적 완화정책을 구사하는 것과 달리 가고 있다. 그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지만, 우리는 상관없다는 투다. 한은법에 정해진 대로 오로지 인플레이션만 박멸하면 된다는 협량한 옹고집이 느껴진다. 이러니 남대문사()로 불리고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한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해법을 선보이고 있다. 한은은 전통적인 인플레퇴치에만 치중하고 있다. 한국의 물가는 1%대로 극히 안정돼 있다. 오히려 디플레가 걱정될 정도로 물가는 하락하고, 소비는 위축돼 있다. 쟈넷 앨런 FRB의장이 고용과 성장 등을 고려하며 확장적 금리정책을 유지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 한국판 양적완화를 놓고 한은이 꿈쩍도 않고 있다. 4.13 총선 이후 달라진 여소야대 상황에 기대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팀과 노골적인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주열 한은총재는 정부와 이인삼각으로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고, 고용과 성장을 선순환시키는 데 협조해야 한다. /사진=연합뉴스

한국판 양적 완화 이슈를 지켜보면서 한은의 역할이 참으로 왜소하다는 느낌이 든다
박근혜 정부 들어 취임한 이주열 총재는 유일호 경제팀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주열은 한국은 양적 완화는 전개해온 선진국들과는 다르다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한은 스스로 변방의 작은 중앙은행으로 안주하고 있는 인상을 준다.

한국적 양적 완화방안은 4.13총선 과정에서 강봉균 새누리당 선대위원장이 화두를 던졌다. 강 위원장은 당시 한은이 산업은행 채권과 주택저당증권채권(MBS)를 직접 매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유일호 경제팀도 양적 완화방안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조선 해운 철강 등 부실기업 불황업종 구조조정을 위해선 한은과 재정의 투트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은이 산은과 수출입은행등에 자본을 확충해주자는 게 골자다. 이들 국책은행들이 확충된 자본을 바탕으로 불황산업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 재무구조 개선에 투입하자는 것이다.

한은을 통한 양적 완화를 추진하자는 것은 전통산업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 해운사들은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다. 조선업체가 몰려있는 거제에는 수만명이 실직위기를 겪고 있다. 민심이 흉흉하다고 한다. 울산경제도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은 이달중 수주실적이 전무했다. 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조선 3사의 지난해 적자는 10조원대를 넘는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해운사들도 십년이상 장기 불황으로 산소호흡기로 연명중이다. 채권단의 지원이 없이는 생존하기 힘든 상황을 맞고 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이 되고 있다. 대주주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이 그룹재원과 개인사재까지 털어서 재무구조 개선에 안간힘을 썼다. 하늘도 무심한 듯 해운업의 불황은 끝이 없다. 언제 햇빛이 들지 알 수 없다. 조선 해운사의 채무가 무려 78조원으로 추정된다.

불황산업을 이대로 두면 말뫼의 눈물이 한국 조선소에서도 현실화할 것이다. 스웨덴 조선사인 코쿰스가 경영난으로 폐업하기 직전인 2002년 현대중공업에 대형 크레인을 1달러에 팔았다. 한국의 조선소들도 말뫼의 크레인을 산 지 14년만에 비슷한 운명을 맡고 있다. 중소 조선소 상당수가 문을 닫거나, 땡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적 양적 안화는 전통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수단으로 제시됐다. 박근혜대통령도 양적 완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6일 보도국장 편집국장 간담회에서다.

문제는 한은이 꿈쩍도 안한다는 점. 더구나 한은의 일개 부총재보가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국민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4.13 총선 이후 달라진 여소야대 상황에 기대 박근혜 대통령과 경제팀과 노골적인 엇박자를 내고 있다. 청와대에 반기를 들었다. 한은측은 재정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은은 뒤로 빠지고, 정부가 국채발행등을 통해 국책은행 자본을 늘리라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되레 정부에 훈수까지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여소야대 상황을 맞이했다고 하지만, 한은이 부총재보 입을 빌려서 청와대에 반기를 든 것은 볼썽사납다. 한국적 양적완화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을 원군으로 악용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공적자금부터 투입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공적자금은 국민혈세다. 국민세금을 투입하기위해선 채권단과 대주주간에 손실분담등이 확정돼야 한다. 그 다음에 국민혈세를 투입할지 결정해야 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선제적으로 하기위해선 한은을 동원하는 것이 골든타임을 최대한 활용하는 장점이 있다. 안철수 대표는 국민세금을 너무 함부로 쓰겠다고 덤비고 있다.

한은은 무조건 정부에 부실산업 구조조정을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재정과 중앙은행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움직여야 한다. 이주열 총재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엄중히 직시해야 한다. 물가퇴치에만 안주하는 전통적 한은풍토에서 벗어나야 한다. 남대문절간에서 나와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 거제에도 가보기 바란다. 정부와 이인삼각으로 경제의 환부를 도려내고, 고용과 성장을 선순환시키는 데 협조해야 한다.

국채발행이나 한은 발권력 동원이나 결국에는 국민부담이다. 미국 FRB와 일본은행 유럽중앙은행은 꺼져가는 경기를 되살리기위해 제로금리,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벤 버냉키와 쟈넷 앨런으로 이어지는 FRB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초대형 양적 완화로 대응하고 있다. FRBGE와 캐터필라 등 기업의 상업어음까지 매입했다. 자동차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FRB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가뿐 숨을 몰아쉬던 공룡 GM은 기사회생했다. 다시금 세계자동차 판매량 1위를 탈환했다.

예외적이고 위급한 상황에서 대출을 허용한다는 FRB133항이 근거였다. FRB는 금융위기 시에 총 12000억달러를 풀었다. 중앙은행이 기업어음까지 매입하면서 시중의 돈맥경화를 풀고, 기업의 자금난을 터줬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간 것이다. 중앙은행은 무차별적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전통적인 논리에서 벗어났다. 위기에 처한 산업과 부실기업에 중앙은행 자금이 들어간 것이다. 위기 땐 중앙은행도 최후의 구원투수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줬다.

한국의 중앙은행이라고 왜 못하는가? 우리는 기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양적 완화는 할 수 없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자신감이 없다. 혁신을 거부하고 있다. 고용과 성장을 도외시하는 전통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더 이상 야당과 노조에 기대서 비겁한 행태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유일호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책은 선택의 문제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없다.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허비해선 안된다. 청와대와 엇박자를 놓는다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독립성을 무기로 나홀로 성안에 갇혀선 안된다.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동참해야 한다. 디플레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라스트 리조트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힘들다. 한은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 끝에 양적 완화를 언급한 것에 대해 최소한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한다. 재정과 한은이 이중주를 이루면서 경제위기를 해소해야 한다. 위기산업의 구조조정을 완수해야 한다. 이주열 총재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 정치만 협치가 있는 게 아니다. 금융 재정정책에도 협치가 절실하다.

[미디어펜=이서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