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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현대차 싫다고? 삼성 현대차 더 만들어야
반대기업 반수도권 반부자정서 극복해야 선진부국 진입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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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4-01-18 16:4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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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승희회장의 선진부국 4만불로 가는 경제정책-차별화경제 강의(7)

   
▲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대한민국의 바뀌어야 할 세 가지 이념


경제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이념성향은 지나치게, 흥하는 이웃에 적대적이다. 물론 과거의 압축 성장과정에서 흥하는 이웃이 부당한 방법으로 성공했다는 인식이 그 바탕이 되고 있으며, 이런 인식이 얼마간 사실일 수도 있다. ‘자조적 노력 없이 부당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방식’이 만연했다면 오늘날 이룬 한국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에도 눈을 감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이념을 바로잡지 않고는 한국경제의 지속성장이 어려워 보인다.

첫째, 무조건적인 반대기업 정서와 친중소기업 정서를 바꿔야 한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생기고 이들에 경제력집중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동시에 이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생긴다. 그래서 슘페터는 칼 마르크스의 무력혁명이 아니라도 국민들, 특히 지식인들의 반 대기업정서가 고조되면 대기업 국유화를 통해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된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공하는 대기업은 그 경제의 성공모델인 셈이다. 성공노하우의 창출주체이며 많은 다른 기업들의 무임승차 대상이다. 성공기업이라고 영원하지 않다. 조립 대기업이 없이 부품 중소기업이 설 땅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을 규제하면 결국 피해는 중소기업으로 간다. 대기업을 더욱 국제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이 답이지 규제가 답은 아니다. 국내 중소기업과의 관계가 불편하면 대기업은 해외로 나간다. 아까운 일자리를 수출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도 어려워진다.

특정 규모 이상의 기업을 계속 규제하면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그런 규모 이상의 기업은 점점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고, 작은 기업만 계속 늘어난다. 거꾸로 특정 규모 이하의 기업에게만 특혜를 계속 주면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세월이 가면 그러한 작은 기업만 늘어난다.

중소기업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잘하는 중소기업이 특별한 것이다. 잘하는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대출한도를 벗어나 더 많이 지원해도 좋다고 해야 중소기업이 성장한다. 그런데 중소기업이 조금 성장하다가 300인 이상으로 고용인이 늘어나 중견 기업이 되면 아무런 혜택도 없으니까 둘, 셋으로 쪼개서 중소기업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수가 99%인데 대부분 성장하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가 만들어 낸,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작기 때문에 지원하는 경제 제도적 환경의 결과이다.

중소기업 정책은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 기를 펴고 성장해서 대기업이 되어 대기업을 압박할 수 있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잘하는 중소기업을 역차별하는 중기육성정책은 하루 빨리 정리되어야 한다.

   
▲ 삼성이 싫으면 삼성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서울대가 싫으면 서울대가 더 많이 나오도록 하고, 서울이 싫으면 서울같은 도시를 더 많이 만들어 내라. 한국경제가 지속 성장하려면 반대기업, 반부자, 반수도권 정서 등을 극복해야 한다. 흥하는 이웃을 폄하하는 사회민주주의적 평등 균형 도덕 정책은 성장의 역동성을 하락시킬 뿐이다. 차별화 동기부여 정책만이 더 부강한 나라, 경제가 더 역동적인 나라로 만들 것이다. 리더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에 있어서도 잘못된 관점이 있다. 대기업이 없이 부품중소기업은 독자생존을 못하게 되어 있다. 대기업들이 상생하겠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별로 열심히 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부품 중소기업을 도와줘 봐야 크게 이득도 없고 자칫 손해를 볼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에 흔쾌히 도와주지를 않는다.

예를 들어 삼성이 자사 제품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잘 키워서 세계 일류를 만들면 상생에 도움이 되겠지만 발목이 잡히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즉 이 기업이 다른 대기업으로 가버리거나 공급 안하겠다고 하면 관리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대기업이 자기의 중요한 부품회사를 계열 회사로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해 주면 부품 회사를 잘 키워서 거기서 나오는 수익도 얻고, 수출도 하면 상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상생을 못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대기업이 자기 부품회사의 지분을 30%이상 소유하면 계열회사로 판단해서 각종 대기업 규제 정책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부품회사의 경영을 관리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육성에 적극 나서기는커녕 외국에서 사오게 된다. 이것이 지난 30년 동안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부품산업을 육성한다고 외쳤지만, 대기업들의 자발적 협력노력을 유도하지 못하고 아직도 일본과의 무역적자가 줄어들고 있지 않는 이유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경기규칙, 제도를 제대로 바꿔, 협력에 부수되는 잠재적 거래비용을 낮춰줘야지 기업들이 자생적으로 협력하게 된다. 요즘처럼 '도와줘라' 강제하면 대기업들은 해외조달에 나서게 되고 어려운 건 중소기업이 된다.


둘째, 무조건적 반(反) 수도권과 친 지방 정서를 바꿔야 한다. 지역을 균형발전시킨다고 수도권은 무조건 규제하고 지방을 육성하는 정책을 계속 하고 있다. 그러면 전국토가 하향평준화가 되고 만다. 균형 발전 정책의 핵심은 수도권을 규제하고 지방에 골고루 혜택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수도권의 상대적 정체는 불가피한데 잘하는 지방은 잘 못하는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다.

그러니 지방의 집적이 안 이뤄지고 모두가 올망졸망한 지역으로 남게 된다. 작기 때문에 지원하는 중소기업 육성정책의 폐해가 여기서도 생기는 것이다. 규모가 작고 잘 못하는 지역이라야 지원을 받는 정책이 계속 진행되면 국가 전체가 하향평준화가 되고 만다.

셋째, 반(反) 부자 정서를 바꿔야 한다. 국가나 정부가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 편이라면 어떻게 될까? 계속해서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고 돈 많은 사람들은 청산하겠다고 한세대, 30년 동안 계속 한다면 돈 많은 사람들은 해외로 가고 대한민국엔 가난한 사람들만 남게 된다.

이미 이러한 경험을 선진국들이 하고 있다. 유럽의 대륙 국가들이 경제가 정체되고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선진 G7이라는 나라들이 부딪히는 많은 경제 문제들의 핵심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이념에 기초해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면, 이것은 결국 흥하는 사람들을 폄하하는 정책을 계속하는 셈이 된다.

흥하는 이웃이 많지 않아야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발상이다. 세월이 가면 흥하는 이웃들은 서서히 소수로 전락한다. 사회가 원치 않는 인간형은 세월이 가면 사회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선진국들의 사회 민주주의 체제가 결국 문제인 셈이다.

부자일수록 세금을 더 많이 내도록 해야 하지만, 동시에 박수를 받아야 된다. 강남에 산다는 것이 비난받거나 미안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강남에서 살면 자랑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지 너도나도 부를 쌓고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된다. 그것을 자꾸 누르면 불행하게도 선진국으로 가기는 어려워진다.

복지도 자조하는 사람에게 혜택주는 차별적 시스템으로

복지정책도 그냥 전부 도와주는 보편적 복지가 돼서는 안 된다. 복지혜택을 받되 향상하고 변화하고 자기가 일어서고자 하는 사람을 더 대접받게 하는 차별적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선진국 복지제도가 실패한 이유는 못하는 사람을 도와주니까 못하는 것이 대접받을 자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점점 실업이 늘어나고 복지혜택 대상이 점점 늘어나고 국가는 재정 부담이 늘어나서 꼼짝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항상 우리가 지원은 하지만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성과에 따라 대접을 차등하겠다는 경제적 차별화 원리를 전파하고 실천하였다. 일어서면 더 지원하겠다고 함으로써 국민들을 더 이끌어낸 것이다. 미국이 채택하고 있고 우리도 최근 도입한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 EITC)와 같이 자조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더 갈 수 있는 차별화된 복지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확대해야 한다.

복지제도는 어려운 사람을 도우는 목적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늘진 곳의 사람들을 양지로 이끄는 역할을 해야 개인에게도 국가에도 도움이 된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경제정책이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고 그것은 반드시 잘하는 경제 주체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경제적 차별화가 경제발전 정책의 핵심 원리이다. 그래야 자원을 잘 활용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면서 경제 전체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정책이란 소위 정치적인 이유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어쩔 수 없는 계층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것은 1/n로 줄 수밖에 없다. 불행한 것은 우리나라가 경제정책을 사회정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개발연대 압축성장 과정에서 활용했던 성공의 노하우, 즉 경제적 차별화원리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부 똑같이 나눠주면 모두 잘 되고 돈 많이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나눠주면 나눠줄수록 역동적인 성장이 줄어드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똑 같이 나눠주면 결과적으로 잘하는 주체, 잘하는 기업이 상대적으로 폄하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엄격히 분리해야 된다.

흥하는 이웃을 키워내야 한다.


부자들이 많아져야 전체 사회의 경제적 역동성이 증가한다. 그래야 동반 성장도 가능하다. 마치 부자가 있기 때문에 서민이 잘못된다는 생각, 즉 마르크스적인 사고가 기저에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수정자본주의, 서구 사회민주주의가 전부 마르크스적인 자본주의 모순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지역균형 발전이란 논리로 만연된 반수도권 친 지역정서를 바꿔야 한다. 수도권을 무조건 규제하고 지방을 육성하는 것에 매달리면 전국토가 하향평준화될 뿐이다. 지방도 잘하는 지방이 잘 못하는 지방에 비해 피해를 보게 된다. 수도권규제에 얽매이면 전국이 올망졸망한 지역으로 전락할 뿐이다. 지역균등발전협의체 의장인 이시종 충북지사가 수도권규제 완화정책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회가 점점 하향평준화가 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될까? 흥하는 이웃이 많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따라서 배우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내가 그 사람을 앞서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식이다. 국가가 나서서 흥하는 이웃이 폄하되지 않도록 사회경제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국민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기업가, 학계 등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남의 모범이 되고 사회에 귀감이 되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도록 박수쳐주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만이 사회가 선진국으로 빨리 가는 길이다. 이것이 노벨상 후보도 많이 나오고 스타도 많이 나오는 역동적인 선진경제로 가는 길이다. 즉, 흥하는 이웃을 많이 키워내는 사회만이 선진경제를 이룰 수 있다.

경제력집중, 불균형을 절대 두려워하면 안된다

경제력 집중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발전의 불가피한 방법이기 때문에 잘하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힘이 모이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보면 안 된다.

불균형을 절대 두려워하면 안 된다. 부자가 싫으면 부자를 더 만들어내고 서울대가 싫으면 서울대를 더 만들고 대기업이 싫으면 대기업을 더 만들어야 한다. 강남이 싫으면 지방에도 강남이 생기게 해야지 지방 전부를 균형 있게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불균형을 불균형으로 대응해서 균형을 지향하는 원리인 것이다.

기업문제에서도 경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잘하는 기업이 대접받도록 해야 한다. 못하는 기업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면 그 사회는 절대 경제적으로 일어설 수 없다. 대한민국은 잘하지 못하는 기업이 국민의 우상이 되는 독특한 경제사회 분위기가 되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류를 지향하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도록 사회가 제도를 만들고 분위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조항이라는 헌법 119조 2항도 바꿔서 사회민주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공정사회에서 공정이라는 것은 평등을 의미하는데 평등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결과의 평등, 둘째는 기회의 평등, 세 번째는 법 앞의 평등이 그것이다. 아주 극단적인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약간 좌파 성향이 강한 사람은 기회의 평등을, 자유주의자들은 법 앞의 평등을 추구한다.

국가가 보장할 수 있는 것은 법 앞의 평등밖에 없다. 미국 헌법은 법 앞의 평등을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기회의 평등으로 가기 시작하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것은 결과의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약간 옷을 갈아입고 좀 더 그럴 듯하게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 주면 결과가 평등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시장의 결과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다. 우리 사회나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진입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 앞의 평등일 뿐이다.

부동산정책은 규제중심에서 시장친화적인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집값을 낮추려면 토지 공급도 많이 하고, 농지 규제 풀고, 공장농지, 주택용지 들을 더 많이 늘려서 땅값이 내려가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제일 중요한 자산이 집인데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 경제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은 위험하다.

농업지원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잘하는 농민은 배제하거나 상대적으로 역 차별하면서 어려운 농민에게만 계속 혜택을 주면 모든 농민이 전부 어려워지려고 할 것이다. 결국 세월이 30년 지나고 나면 대한민국 농민은 전부 어려운 농민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난 30여 년간 걸어온 길이고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며 그 결과가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성공한 리더 자조하는 국민 우대, 실패한 리더는 평등주의 지향

역사상 성공한 리더는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책임과 자조를 강조하고 국가가 국민을 보조하고 이끄는 패러다임을 견지하였다. 박정희의 신상필벌과 경제적 차별화원리의 실천이 그렇다. 싱가포르 이광요의 국민의 모든 생활을 책임지겠다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탈피선언이 그렇다. 등소평의 부자의 노하우를 따라 배우라는 선부론(先富論)이 그러했다. 자조하는 국민을 우대하여 국민을 자조하는 국민으로 일으켜 세우는 지도자는 성공하지만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여 평등주의를 따른 지도자는 실패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보편화되고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경제평등주의가 활개 치는 시대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비결인 박정희의 차별화된 리더십을 살려내려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유념해야할 것이다.

a) 민주정치의 포퓰리즘화를 막기 위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의 정치화”현상을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경제는 차등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적 평등의 의념을 경제에 오염시키지 않도록 해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b) 경제의 대외개방에 있어 세계 일류기업들을 대상으로 선별적, 차별적 유치 전략을 활용한다. 대외개방은 단순한 경제교역의 문제를 넘어 외부와의 비선형적 상호작용을 통한 시너지의 확보과정이다.

c) 은행의 차별화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출심사 기능을 강화하고 지원을 차등하도록 유도한다. 은행 등 금융시장이 우수한 경제주체를 선별 지원하는 일을 잘 할 때라야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와 동기부여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

d) 수월성 교육을 강화해야한다. 어떤 이념의 교육도 그 성공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더 대접받는 수월성교육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평준화교육은 공교육의 실패를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루 빨리 수월성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에 따른 부작용은 그것대로 처리해야지 수월성교육을 포기하면 안된다.

e) 지역균형 발전 이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역의 집적을 촉진하는 산업클러스터와 지역경쟁력이 있는 도시 중심의 발전을 유도한다. 도시의 성장 발전이 없이 지역의 발전은 없다. 모든 지역이 균등하게 발전하는 “발전”은 사회주의의 허상이다.

f) 경제발전과 일자리창출을 최우선으로 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정책마인드를 유지해야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삶의 터전으로서 기업이 토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체제이다. 이제 일자리 있고 없음이 빈부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선진국들은 농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1-2%에 그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동반성장의 핵심은 보다 많은 기업들의 창업과 성장을 유도하여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늘리는 일이다.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을 우대하지 않고 모두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불과하다. 이런 관점에서 기업정책, 노사정책, 기술정책, 교육정책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g) 통화금융, 재정 등 거시정책은 경제발전 정책이 아니라 경제안정 정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제발전은 경제제도 정책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과에 따를 인센티브의 차별화를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h) 재분배 복지제도나 사회정책에 동기부여기능을 부가하여야 실패하는 복지패러다임에서 탈출할 수 있다. 민주사회가 재분배정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공동체를 책임진 국가에 주어진 명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의 재분배 정책이 지속가능한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인센티브를 차별화하는 재분배 사회 정책만이 발전 친화적이며 지속가능하다. 시장의 차별화와 동기부여기능에 역행하는 무상, 무차별 복지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일할 능력이 없는 개인에 대한 국가공동체의 절대적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경제용미, 용중으로 부강한 나라를 지켜내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국은 우리가 일본을 무임승차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의 성공노하우를 무임승차했다. 이제 일본은 성공노하우의 복제대상에서 반면교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최강 경제지만 그 미래는 그렇게 밝지 않다. 우리가 갈 미래 모델은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미래는 동북아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중국과 우리는 모두 앞선 흥하는 경제를 무임승차하여 단기간에 도약을 이룬 경험과 동시에 선발 경제들의 실패를 거울삼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중국은 실패한 서구 포퓰리즘 민주주의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으나 한국은 이미 이 실패하는 선진국의 사민주의 패러다임을 신속히 따라가고 있다. 자칫 중국과 우리의 운명이 갈릴 수 있는 상항이다. 어쩌면 중국을 따라 배워야할 딱한 시대로 회귀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우려된다.

 

미래 전략은 바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용미용일 전략에서 배워야 한다. 중국을 철저히 이용하되 맹종하지 않고 또한 미국을 버리지 않는 용중 용미전략, 그리고 이를 위해 자주와 자존의 바탕인 강한 경제를 지켜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의 당당한 주장을 내 놓고 필요하면 대척할 수 있는 관계, 중국이 자기 필요에 따라 우리를 찾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용미는 절대적 조건이다. 우리가 중국을 의식하여 미국을 버리면 중국도 우리를 버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에 절대적 전제 조건은 우리 경제를 세계 최강대열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흥하는 이웃들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내지 않고 이 일은 가능하지 않다. 모두가 내 실패가 내 탓이 아니라, 흥하는 이웃의 탓이라 생각하는 사회,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흥하는 이웃을 폄하하고 실패하는 국민을 존경(?)’한다는 사회는 결코 용미도 용중도 할 수 없는 사회이다. /좌승희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미디어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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