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혜택 받은 시민운동가, 시정선 반기업적 행보

서울시장은 흔히 소(小)통령으로 불린다. 대통령 다음 가는 자리라는 의미인데, 그만큼 권한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서울시의 면적은 전체 국토의 0.6%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구(지난해 기준)는 전체 인구의 20%가 넘으며, 지역내총생산 역시 283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25%에 육박한다. 대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의 본사 대부분도 서울에 있다. 한마디로 서울은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비단 경제뿐일까. 사실 서울시는 정부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한다. 25조원에 가까운 예산으로 공원 조성이나 가로등 설치 같은 작은 사업부터 한강 재정비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업을 결정 및 집행한다.

각종 인허가권은 서울시장 파워의 백미(白眉)다. 이에 대해서는 국토교통부 장관 등 중앙정부 관계자는 물론 국회의원 등 정치인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서울시장은 사실상 ‘서울공화국’을 통치하는 대통령인 셈이며, 이에 따라 시장의 역사관ㆍ정치관ㆍ사회관ㆍ경제관 등은 서울시의 미래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박원순 시장은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소통의 달인, 콘텐츠의 경쟁력을 갖춘 마당발로 통했다. 이미지는 유연해 이념논쟁과는 다소 거리가 먼 합리적 진보로 비춰진다. 이 때문에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권의 차기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대중의 감성을 교묘히 파고드는 명분과 네이밍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덕분일 뿐이다.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이 대표적이다.

   
▲ 서울시가 현대자동차의 뚝섬 110층 초고층빌딩에 대해 도심조화에 맞지 않는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불허했다. 뚝섬 초고층빌딩이 들어선다면 서울의 도심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져 투자및 일자리창출,관광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번 결정은 박원순 시장의 오세훈 전시장의 색깔지우기 측면도 있지만, 그의 반기업적 성향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보를 떠나 대부분의 정치인은 기회주의, 또는 여론추수 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박 시장의 저술, 발언, 칼럼을 읽어보면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문제는 그 같은 신념과 의지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근현대사에 대한 박 시장의 시각은 ‘정의가 실종되고 모리배들이 득세한 결과’의 산물일 뿐이다. 지난 60년 동안 이루어진 대한민국의 성공과 북한의 실패는 외면한 채 오로지 우리의 약점 찾기에 연연하는 ‘외눈박이 사관’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이 같은 박 시장의 역사관은 정치관으로 곧장 연결돼 그의 이념(理念) 체계 역시 국가보안법 폐지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사회관도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의혹을 낳는다.

실제 올바른 기부문화 확산을 통해 소외계층 및 공익활동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재단의 주요 수혜자는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환경정의 등과 같은 반미, 반정부, 반기업 성향의 시민단체다.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로 부르며 진보적 아이디어를 통한 사회변화를 모색키 위해 설립했다는 희망제작소 역시 시민참가 형태의 좌파 싱크탱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숙원사업이었던 뚝섬 110층 신사옥 개발 계획을 포기한 것은 인허가권을 틀어쥔 서울시의 규제 때문이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박 시장의 경제관, 특히 기업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초 뚝섬 110층 신사옥 개발 계획은 순풍을 타고 진행됐다. 오세훈 전 시장이 국토해양부에 요청해 용도지역을 변경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닦았고, 용도 변경의 조건으로 기부채납 비율을 48%까지 끌어올려 공공성 논란역시 해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시장이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오 전 시장은 한강변을 다양하게 개발하는 내용의 일명 '한강 르네상스'를 추진했는데, 박 시장 취임 이후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 현대자동차에 전달됐다.

이로 인해 잠정중단 상태에 들어간 뚝섬 110층 신사옥 개발 계획은 서울시가 지난해 '초고층 건축 관리기준'을 내놓으면서 결정타를 맞았다. 기준안은 상업기능이 몰려 있는 도심과 부도심에만 50층·200m 이상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공장 터였던 뚝섬 부지는 이 같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이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초대형 투자 프로젝트가 서울시의 규제에 무릎을 꿇은 셈인데, 서울시의 규제 근거가 우습다. ‘도시공간의 조화(調和)가 이유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도시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요소는 이미지다. 차별화된 도시의 이미지는 관광객 유치 및 투자 자본의 이동을 통해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이에 따라 세계의 도시들은 도시정비사업 등을 통해 경제적 부흥과 활력 회복을 도모하고 있는데,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가 런던의 거킨빌딩처럼 랜드마크가 될 만한 초고층 빌딩을 건설하는 것이다. 금싸라기 땅인 서울광장이나 노들섬 텃밭에 벼농사를 짓는 것이 도시공간의 조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부조화(不調和)다.

일부에서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서울시의 규제를 오 전 시장에 대한 ‘색깔 지우기’로 해석한다. 새빛둥둥섬,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용산국제업무지구,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오 전 시장의 대표적 시책이 줄줄이 좌초됐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혐의가 인정된다.

하지만 박 시장은 전임 시장 색깔 지우기에만 매달릴 만큼 물렁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더욱 큰 무서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른다.

박 시장의 측근들은 그의 경제관, 그 중에서도 기업관은 진보진영 일반이 갖고 있는 이념적 편향성과 다르다고 강변한다. 그리고는 참여연대 시절 소액주주운동을 할 때도 세습경영이나 대기업을 반대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하지만 그의 각종 저술을 보면 20세기 한국의 산업화 기적은 실종돼 있다. 반감과 증오만 넘칠 뿐이다. 또한 기업의 후원은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기업 오너들에 대한 업적에는 인색하다.

박 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서울시 1급 공무원 6명 중 무려 5명을 강제 퇴진시켰다. 과거 반대 세력이 입성해도 조직쇄신 차원에서 1~2명 정도 퇴진시키던 관례에 비춰보면 정치적 보복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지나치게 무리한 인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빈자리에는 시민운동가 등 진보진영 인물들이 대거 진입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펼쳐질 시정(市政) 역시 명약관화해 보인다.

그들만의 코드시장, 박원순.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가 상임이사로 일했던 희망제작소, 즉 ‘희망을 제작한다는 곳’에서는 도대체 어떤 희망을 위해 무슨 일들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미디어펜=정구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