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전혁 명지대 교수, 전 새누리당 의원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모든 과자의 포장에 제조업체를 표시하지 못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마 대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이 믿을만한 제품인지 감을 못잡겠죠. 첫 출시된 제품일 경우 소비자의 혼란은 더 할 겁니다. 해당제품이 가령 롯데제과 제품이라면 “이것 한 번 사먹어 볼까? 그래도 롯데 제품인데...”하고 신뢰를 표시합니다. 이런 걸 신호효과라고 합니다.

이런 신호효과는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의 전반에 퍼져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쓰는 휴대폰, 가전제품, 의약품, 병원, 은행, 증권회사, 해외여행 ... 심지어 요즈음은 쌀이나 농산품까지 사람들은 신호효과를 활용합니다. 같은 값이면 유명브랜드 제품을 쓰고, 이마트나 신세계백화점에 납품된 제품이라면 품질을 신뢰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치인은 어떻게 선택하십니까? 우선 국회의원이나 광역자치단체장, 잘 아세요? 잘 모르시죠? 그런데 어떻게 그 분들에게 투표하셨나요? 아마 여러분들의 표심을 움직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 분들의 소속정당이었을 것입니다. “아 저 후보는 OO당이니 경제는 이런 생각, 국방이나 안보는 저런 생각, 복지는 요런 생각 ...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 생각이 대부분 맞았죠? 바로 소속정당이 주는 신호효과에 기대어 투표하신 겁니다.

국회의원이나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엔 그래도 어느 정도 인지도도 있고 검증된 후보가 나오니 투표 결정을 하기가 그나마 쉽습니다. 물론 신인이 나오는 경우는 그것도 어렵긴 하죠. 그래도 언론이 나서서 일부 검증해줍니다. 충분치는 않지만 ... 근데 문제는 기초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경우에는 언론 검증도 거의 없습니다. 해당 후보와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한, 그 사람에 대해 알 길이 없습니다. 기껏해야 소문 정도겠죠.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일반 샐러리맨이나 가정주부들은 그나마 그 소문조차 듣기 힘듭니다.

여러분들이 여태껏 투표한 행태를 잘 반추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얼마나 꼼꼼히 후보자를 따져가며 투표했는지를 ... 후보자의 소속정당을 보고 투표하지 않았나요? 삼성이나 LG 제조사를 결정하고 가전제품 고르듯이... 만약 그랬으면서 지방선거 공천 폐지에 찬성하신다면 그건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겁니다. 지방선거 공천폐지는 유권자들에게 더 큰 사회적 의무를 부과하는 겁니다. 나 자신이 후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검증위원이 되겠다는 결기와 의무감이 없다면 공천폐지가 가져올 부작용이 너무도 큽니다.

다시 과자 얘기로 돌아갈까요? 제조회사 표시가 금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너도 나도 과대포장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자의 질보다 포장지 경쟁이 벌어질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소비자의 취향에 기대기 보다 도매상이나 소매상에게 기대려 할 겁니다. 관광지에서 파는 과자와 같은 경쟁의 양상을 상상해보면 됩니다. 매일 꾸준이 파는 제품이 아니라 4년에 한 번 팔고 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장삿속의 판매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죠.

공천이 없어지면 선거시장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합니다. 정책이나 내용이 좋은 후보자보다 스펙(포장지) 좋은 후보자가 단연 유리합니다. 각종 유사정당(도매상․소매상)이 난립할 게 뻔합니다. 선거를 목적으로 만든 향우회, 산악회, 각종조합, 사이비시민단체, ... 이런 검증되지 않은 조직을 만들던지 아니면 그런 조직에 빌붙겠죠. 공짜는 없습니다. 조직관리를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결국 지방의 돈 있는 호족(豪族)이 당선의 영광(?)을 누리겠죠. 소속정당이 없으니 견제도 안 됩니다. 돈 든 만큼 빼먹으려 하겠죠. 역시 공짜는 없으니까요.

알맹이 대신 화려한 포장지(스펙), 유통조직(각종 유사선거 조직)에 먹인 뒷돈을 소비자(유권자, 국민)로부터 빼먹으려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결과가 예상되는 정당공천 없는 선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조전혁 명지대 교수, 전 새누리당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