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과 GDP 단순비교, 양극화 원인 대기업에 전가하는 셈

지난해 초여름. 중국에서는 ‘시안속도’라는 신조어가 유행했었다. 이 신조어는 140만㎡에 달하는 광활한 공장 부지를 정리하는데 걸린 시간이 단 3개월에 불과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내면의 의미는 더욱 크다.

당초 삼성전자가 건설하려는 반도체 공장 부지에는 7개의 촌락이 있었다. 대부분이 농민인 촌락의 거주 인구는 1만여명, 주택 수는 4,473채였다. 그런데 공장 건설이 확정된 지 단 3개월 만에 이곳의 농민들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주됐다.

밀양 송전탑 논란에서 보듯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시안 정부는 베이징, 충칭, 선전 등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승리를 이끌기 위해 이 같은 조치를 취했다.

   
▲ 일부 매체와 좌파시민단체, 야권인사들이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매출액을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한해에 생산한 부가가치의 합인 국내총생산(GDP)과 무리하게 비교하는 엉터리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력집중이 심화됐다며 반대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인도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현지 국내기업 전시관에 마련된 삼성전자부스에서 첨단 IT제품을 이용해 국내 삼성전자 직원과 통화하고 있다.

다른 사례이기는 하지만 충칭 정부 역시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각종 혜택을 부여한다. 기업소득세 감면, 지방세 3년간 면제, 토지가격의 10~50%에 해당하는 보조금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세계 모든 국가의 지방자치단체들은 공장을 비롯한 기업의 투자 유치에 혈안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세수 증대와 고용 확대는 물론 지역경제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공장을 비롯한 기업의 투자 유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조지아 주 정부는 기아자동차 공장을 유치하면서 공장 용지를 무상으로 주고 새로이 2개의 도로를 깔았다. 심지어 미국의 각 주 정부는 현대기아자동차의 파업이 일어나면 앞 다퉈 한국을 방문, 공장 이전을 제안할 정도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상품을 개발하고 생산한다. 또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과정에서 생산요소의 공급자에게는 소득을 창출시켜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투자 기회를 확대하며, 기술혁신을 주도해 부(富)를 축적한다. 이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와 역할이다.

좀 더 쉽게 말한다면 기업은 근로자에게 제 때 봉급을 지급해 원활한 소비활동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착실히 세금을 납부해 국가 전체적으로 부를 축척해 나가도록 하는 것으로 이미 사회적 책무를 다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 이상의 것을 기업에 요구하는 것은 기업의 존립 근거를 파괴할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기업, 특히 대기업은 지탄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지속적인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감시와 질타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

심지어는 대기업을 경제력 집중과 사회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하기 위해 사이비 통계를 억지로 동원하기도 한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최근의 논란이 대표적이다.

논란의 요지는 지난 2012년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매출이 국내총생산 대비 23%, 12%로 두 그룹의 비중만 35%에 달한다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지난 2008년의 23.1%에 비해 급격히 비중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를 접하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협소한 시장에 대기업들이 엉덩이를 들이밀고 들어온 것처럼 비치기 십상이다.

국내총생산이란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일정한 기간(보통 1년)에 걸쳐 새로이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부가가치 또는 모든 최종재의 값을 화폐 단위로 합산한 것을 말한다. 그런 만큼 이를 기업의 매출과 직접 비교하는 자체부터 넌센스라고 할 수 있다.

   
▲ 현대차와 삼성전자의 매출액 80~90%가 대부분 해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GDP는 국민들이 국내에서 생산한 부가가치총액을 의미한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도 무시한채 좌파시민단체와 반재벌 매체들이 무책임하게 삼성과 현대차의 매출액을 GDP와 단순 비교해서 반삼성 반현대차 정서를 조장하고 있다. 이들 엉터리 분석은 반기업적인 경제민주화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현대차 북경제 3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조립작업을 하고 있다.

굳이 국내총생산에서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하려면 매출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봐야 한다. 한 기업의 부가가치는 매출에서 부품 값 등 중간 단계에 투입된 가치를 뺀 것이다. 따라서 부가가치는 매출보다 훨씬 작을 수밖에 없다.

또한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 같은 대기업들은 국내보다 해외 매출이 더 많다. 애초부터 잘못된 비교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이들 대기업의 해외 매출은 국내총생산에서 빼야 한다. 만일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에 적용한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매출 합계는 국내총생산의 120%에 달하는 우스운 결과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엉터리 분석이 횡행하는 것은 통계(統計)에 대한 무지이거나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과 사회 양극화를 과장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권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경제민주화 역시 이 같은 사이비 통계를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의 설 땅이 없어진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편향적이다. 상당수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중간제품을 공급함으로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인 만큼 대기업의 발전은 중소기업의 발전으로 연계될 수 있다.

오늘날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역시 대기업 때문이 아니다. 일자리가 없고, 이에 따라 부의 창출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기업은 물론 이들의 투자가 대접받는 환경이 조성되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고, 이를 통한 중산층 복원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은 흥하는 이웃이 있어 내가 망하는 계급투쟁의 장(場)이 아니라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흥할 수 있는 상생과 동반 발전의 장이다. 따라서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 같은 대기업을 때리지만 말고 오히려 제2의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을 만들어 내야 지속 성장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거짓말쟁이는 숫자로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다수의 사람이 숫자 문맹(文盲)일 경우 숫자, 그 중에서도 통계라는 이름의 숫자는 꾀나 높은 권위로 사람을 짓누른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강력하게 주장하다가도 통계로 반박당하면 더 이상 언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통계조차 명백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공식적인 통계라고 해도 그것은 만드는 사람들과 조직에 의해 형성되는 산물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통계에 대한 해석 역시 관점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이 때문에 통계는 정치적 투쟁을 위한 수단으로도 많이 사용된다. 대부분의 통계가 사회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시민운동가나 시민단체는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만일 시민운동가나 시민단체가 특정 사안에 대한 왜곡된 통계를 제시하고, 언론은 그 같은 통계를 확인할 능력이나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그대로 보도할 경우 통계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무기가 될 뿐이다. [정구영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