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 적은 세계 최악의 규제탓, 제도혁신 리스트 시급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창조경제의 구현을 통해 경제부흥을 이루겠다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어언 1년이 되어간다.

작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는 과학기술과 산업이 융합하고, 문화와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 간의 벽을 허문 경계선에 창조의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 융합의 터전 위에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 이후 정부는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3대 방향, 6대 전략, 24개 과제’를 발표하는 등 노력을 했지만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한국의 창조경제는 아직도 시동을 거는 중으로 구동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새 정부의 창조경제론에 대해 지금도 비판적인 시각이 없지는 않다. 예를 들면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는 시장경제에서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아이디어에 의해 낡은 지식, 구태의연한 방식이 도태되는 창조적 파괴 과정이 무시로 진행되는데, 새삼 창조경제의 이름으로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 부처마다 기왕에 해왔던 일들, 또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창조경제의 이름으로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재포장, 발표하면서 ‘이게 뭐지’ 하는 세간의 의구심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가하게 개념 논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작년 봄에 맥킨지 연구소에서 한국 경제에 대해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다고 했듯이 우리 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면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는 최근 6년(2008~2013) 동안 평균 경제성장률이 3%에도 이르지 못할 만큼 침체하고 있는 데다 2017년이면 생산가능인구도 감소세로 전환되는 등 앞날도 갈수록 험난하기만 하다.

기존의 제조업-수출 공식만으로는 경제 재도약도, 원하는 일자리 창출도 기약하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성장 공식을 찾아내야 한다. 영국의 ‘Creative Britain: New Talents for the New Economy', 미국의 'Strategy for American Innovation'에서 보듯이 선진국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 속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 박근혜대통령은 투자와 일자리창출, 성장회복을 위해 창조경제를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창조경제가 어정쩡한 상태로 있는 것은 관료와 국회의원들의 과잉규제와 입법러시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칙금지-예외허용이라는 과잉규제가 기업가정신을 질식시키고 있다. 박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이 성공하고 창조경제가 꽃피기위해선 제도개혁 리스트를 만들어 대대적인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 박대통령이 창조경제박람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창조경제는 개념이 모호할 수 있지만 문제인식도 가야할 방향도 맞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지난 1년 동안 정부는 부처별로 또는 합동으로 이것을 하겠다, 저것을 하겠다며 계획을 발표했지만 정작 핵심을 빠트린 게 있다. 창조경제의 원동력은 정부가 아닌 민간 자율의 창의적인 융복합화 시도와 기업가적 발견 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가정신의 자발적 발현을 무산시키는 주범은 다름 아닌 시장과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통제의 과잉이다. 우리의 경우 규제 시스템이 ‘원칙 금지-예외 허용’ 방식이라 규제당국의 재량적 판단 여지가 큰 데다 규제 권한 또한 행정 부처별로 분산·분절화되어 있어서 불확실성, 비효율성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게다가 입법부는 경제민주화 프레임 속에서 규제의 신설·강화 법안 만들기에 여념이 없으니 개인도 기업도 맘 놓고 경제활동 하기에 버거운 게 지금의 현실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2013년도 한국의 제도경쟁력을 세계 148개국 중 74위로, 그리고 OECD 국가 중에서 꼴찌 수준으로 평가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창조경제의 적(敵)은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방해하는 시장제도와 규제의 낙후성이다. 제도의 실패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낙후된 지금의 모습은 결과적으로 행정부와 입법부의 합작품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창조경제 시대를 열려면 정부가 ‘무엇을 새로 하겠다’는 것 보다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제도혁신 리스트를 먼저 만들어야 했다.

규제권력을 놓는 게 쉽지 않겠지만 그 일부터 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도 제도 개혁의 대부분은 법률 개정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은 행정부가 아무리 의지 충만해도 혼자서 할 부분이 많지 않다. 따라서 창조경제 생태계 조성은 부처별로 포기해야 하는 규제 리스트를 만들고, 그 규제들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법 개정을 위해 입법부와 공동으로 노력했어야 했으나 지난 1년 동안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도 핵심 화두로 규제개혁을 주창하였다. 즉, 지난 1월 6일 신년사에서 ‘투자관련 규제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해서 꼭 필요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풀겠다’ 하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답이다. 창조경제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반드시 규제를 정비하고 제도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규제개혁의 완성이 국회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제도 실패의 가중자와 제도 경쟁력의 복원자 중에서 제19대 국회 정치인의 선택은 무엇일까? 창조경제의 적이 될지 조성자가 될지는 계속해서 지켜볼 일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