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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금융투자업계, '이란 리스크' 떠넘기는 KIC를 무시하라
승인 | 김지호 기자 | better502@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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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05-12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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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오늘 내가 하는 발언 중에 정부 의사와 다른 게 있다면 즉시 저지해 주세요.”

정부에 참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 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전일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한국투자공사(KIC)와 운용업계 간담회’를 참석하기 직전 엘리베이터에서 은성수 KIC 사장(사진)이 이형주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에 한 말이다. 국부펀드인 KIC는 해외자산에만 투자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운용자금이 110여조원에 달해 국민연금과 함께 글로벌 투자업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전일 간담회에서 은 사장은 국내 자산운용사와 증권가 해외 대체투자 분야 위탁운용사(GP)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KIC는 현재 국내 건설사가 해외에 건설하는 인프라에 투자해 국내 건설사에 자금을 조달하는 펀드를 연내 조성 중이다.

설정규모는 최대 20억 달러(2조300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전해졌다. KIC가 이 펀드에 단독 유동성공급자(LP)로 참여할 테니 증권사와 운용사가 GP로 들어와 달라는 것이다. 증권사와 운용사는 이 과정에서 지분투자자로 참여할 수 있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이 자리에서 은 사장은 “국내 자산운용사 등에 자산위탁을 많이 하는 것이 올해 KIC의 비전”이라며 “KIC와 함께 국내금융사들이 해외에 나가 투자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 국내 금융사들이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클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KIC가 국내 증권사·자산운용사와의 연계라는 업무 목표를 세워 해외로 뻗어나가는 한국 금융산업을 보여주자는 큰 그림을 갖고 있어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화답했다.

황 회장은 이형주 과장이 간담회에 참석한데 대해 “정부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자리에 참석한 증권사와 운용사 사장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통해 수주한 여러 공사 등에 결국 금융투자업계를 들러리로 내세우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담회에서 은 사장은 박 대통령의 이란 방문 기사를 프린트해 와 내밀어 보이기도 했다. 최근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으로 KDB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부담이 가중되자 금융투자업계에도 손을 벌리겠다는 것이다.

유가 하락과 오랜 경제제재로 이란에서의 공사 수주에는 입찰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한 뒤에도 미국 기업, 금융 기관이 이란과 직거래를 하거나 제 3자간의 거래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란 진출 리스크가 크다는 얘기다. 자칫 지분 투자를 잘못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금융당국은 리스크를 극도로 기피하는데다 덩치가 큰 은행을 이란에 끌어들이기는 부담스런 상황이다. 결국 KIC를 내세워 보다 만만한 금융투자업계의 팔을 비트는 차선책을 선택한 걸로 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그가 한 말처럼 은 사장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의사를 앵무새처럼 읊어댄 것에 불과하다. 2014년까지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은 사장에게는 누구보다도 익숙한 일이다.

우리나라가 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는가? 정부가 금융사를 압박해 기업에 무리한 대출을 하게 하면서 기업과 은행이 연쇄적으로 무너진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 아직도 금융당국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아마 증권사와 운용사는 은행에 비해 망해도 파장이 적을 것이라고 보는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생각이다. 금융당국은 이란 등 해외진출 리스크를 금융투자업계에 떠넘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또 다른 불행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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