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 무소신·무이념 일관…입법엔 등 돌린채 야당에 기웃
20대 국회는 최악이라던 19대 국회보다 더 나빠질지 모른다. 3당 체제로 변화했지만, 여야 모두 체질이 바뀌지 않은 탓인데, 더민주는 극단적 투쟁을 거듭할 것이다. 운동권 출신이 19대 때와 여전하고(49.6%) 당 지도부를 전대협 출신이 장악했다. 바람직한‘야당의 재구성’이 물 건너간 형국에서 소수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을 쳐다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4.13 총선 참패 이후 방향조차 못 잡는데다가, 개혁의 첫 단추인 비대위원장 모시기조차 허둥댄다. 당 정체성과 전혀 무관한 인물에 매달리거나, 최악의 경우 좌익 인사 최장집 같은 인물을 모시려는 좌파 코스프레도 눈에 거슬린다. 결정적 변화 없이는 기회주의적 웰빙 기질이 우심해질텐데, 그 따위 ‘배신의 정치’로는 대한민국의 내일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곁들인 시리즈 칼럼을 두 차례 싣는다. 이번이 두 번 째 글이다. <편집자 註>
      
새누리‘배신의 정치 DNA’를 어떻게 청산할까?-②

   
▲ 조우석 주필
 19대 국회 새누리당 소속 의원 대부분이‘배신의 정치 DNA’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밝히겠다고 지난번 칼럼에서 필자는 공언했다. 그렇게 큰소리를 꽝꽝 친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데, 연세대 유석춘 교수(사회학)팀이 작업한 실증적 논문 ‘19대 국회 의원입법 공동발의 네트워크 분석’을 지난 주 확보했다.
 
이승수(연세대 대학원)와 함께 쓴 이 논문의 설득력이 대단하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팩트만을 뽑아내 새누리의 실체를 새삼 증명해줬기 때문인데, 왜 그 집권여당이 영혼이 없는 정당인지, 19대 국회가 왜 무능-무책임의 대명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선악이분법의 극한대결에 몰두하며 으르렁대던 그들은 어느 순간 이익집단으로 똘똘 뭉치는 이른바 ‘배신의 정치’, ‘자기 정치’의 구조도 이 논문을 들여다보면 썩 잘 드러난다. 전 원내대표 유승민만이 배신자가 아니라 거의 모든 새누리 의원이 그 지경이라는 점도 확인되는데, 그걸 밝혀낸 방식이 썩 흥미롭다. 의원입법 과정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하는 의원 사이의 네트워크를 분석한 것이다.

새누리 입법엔 등 돌린 채 야당에 기웃대는 의원들

즉 의원입법 때 발의(發議)를 위해서는 자신을 포함하여 최소 1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때 누구누구와 함께 발의했는가를 확인하는 건 그들끼리의 개인적 친소관계는 물론 이념지향을 확인할 좋은 잣대다. 여기에 착안한 유석춘 교수 팀은 지난 4년 의원입법 법률안 1만5612건 전체를 뒤졌다. 
 
전수(全數)조사 결과 지난 4년 거의 모든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조감하는 작업이 가능했다. 우선 야당이나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동조했던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다수 밝혀졌다. 우선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았던 운동권 출신 야당 의원들의 법안에 공동 발의를 해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재오, 이만우, 김세연, 이에리사, 최봉홍, 김성태, 이명수, 조명철 의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이‘머리가 빈’위인들이라면, 야당의 반(反)시장적, 반(反)국가적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빌려준 이들의 ‘얼 빠진 그룹’도 상당수다. 그들의 이름(박인숙, 황영철, 홍문표 의원)을 차제에 기억해두자. 그런가 하면 국가안보 관련이나 경제회생 등 새누리의 중요법안에 단 한 번도 대표발의나 공동발의에 참여하지 않은 ‘무늬만 새누리’인 이들도 상당수다.
 
그들이 바로 유승민-이재오 등 두 명을 포함해 강기윤, 김태흠, 김회선, 박덕흠, 안홍준, 이군현, 이학재, 이한구, 한선교 의원 등이다. 이재오는 ‘과거 운동경력으로 야당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그룹’(이재오, 최봉홍, 김성태, 이명수 의원 등)에도 이중삼중으로 이름을 올린 ‘문제아’로 드러났다.
  
이런 자료 분석을 통해 19대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이념적 정체성이 모호하거나 문제가 있는 의원으로 드러난 사람만 총 52명이라고 이 논문은 지적했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대 공천에서 다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거나 무소속으로 당선됐으니‘배신의 정치’를 계속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그럼 이들 52명을 제외한 나머지 새누리 의원 100명은 멀쩡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 대부분이 기회주의적 웰빙체질을 버리지 못한 채 무소신-무이념으로 일관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외려 이러한 야합이, 배신이 ‘소통’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돼왔다.

   
▲ 지난 4년 새누리식의 야합과 탈선의 정치는 사회 혼란을 부추겨온 요인이다. 집권세력과 체제수호 세력이 일치하지 않다는 게 이 사회 혼란의 핵심이다.사진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20대 국회 당선인 워크숍에서 당선인 전원이 국민에게 고개 숙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역시 유승민-이재오가 가장 큰 문제

이 논문에서 유승민 전 원내대표 이름이 반복해 등장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야말로 야합과 탈선정치의 중심에 서지 않았던가? 그는 지난 해 4월 국회 연설에서 좌파적 경제론을 펼쳐 우리를 당혹케 했고, 야당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세상을 가진 자, 기득권 세력, 대기업 대(對) 빈곤층으로 나누는 계급적 관점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대기업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막상 개혁대상인 강성노조에는 입도 뻥끗 안 했으니 그는 당의 이념과 가치를, 아니 이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배신했던 장본인이다. 그런 배신자를‘의로운 피해자’로 띄워준 이 땅의 병든 언론이 안타까울 뿐이고, 그를 다시 뽑아준 그 지역 유권자들이 못내 유감스럽다.
 
어쨌거나 19대 국회 새누리 의원 152명 대부분은 ‘유승민 DNA’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서 자유로운 건 김영우, 나성린, 이현재, 여상규, 심재철 의원 등 불과 5명으로 지목된다. 이들만이 새누리당 중요법안 발의 네트워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이번 논문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다음은 류석춘 교수의 칼 같은 발언이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여야 협상이란 이름으로 공공연히 야당과의 야합을 자행했으며, 사회적경제기본법과 같은 보수적 가치와 전혀 관련 없는 법안을 두고 야당과 공조했다. 이러한 비정상적 입법 풍조를 새누리당의 다수 의원들은 동조하거나 묵인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보여준 새누리당의 입법 행태는 보수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권 여당의 노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 뿐더러, 심지어는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정부의 정책을 전혀 뒷받침해 주지 않는 무정견, 무소신, 무이념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정말 기막힌 대목은 따로 있다. 지난달 말 여당 내 개혁그룹을 자임한 채 좌익학자 최장집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던 하는 새누리당혁신모임의 실체말이다. 새혁모는 황영철·김세연·김영우·이학재·박인숙·오신환·하태경·주광덕 등 8명으로 구성됐는데, 이 논문에 따르면 황영철·박인숙 두 의원은 야당 중요법안에 열심히 동조했다.

왜 새누리는 체제수호를 등한시하나?

그리고 김세연 의원은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다수 올렸던 장본인이다. 그렇다면 새혁모를 구성한 상당수 의원들이야말로 이념적으로 보수 정당의 정체성이 없는 인물들이며, 이들이 새누리당 개혁의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자체가 당혹스러운 노릇이다.
 
새삼 지난 4년을 돌이켜 보자. 한국사회의 혼란과 퇴행을 막는 것도 역시 정치의 몫인데, 새누리식의 야합과 탈선의 정치는 그 혼란을 부추겨온 요인이다. 아니 집권세력과 체제수호 세력이 일치하지 않다는 게 이 사회 혼란의 핵심이다. 
 
이 아찔한 구조 때문에 대한민국 선진화라는 목표, 그리고 북핵 제거를 통한 한반도평화의 진짜 이슈는 언제가 가려진다. 그래서 역사교과서 문제 해결이 질질 끌고 눈앞의 노동-연금-공기업-역사교과서 등 개혁도 탄력을 받지 못해 왔다. 그저 ‘정부 있는 무정부상태’만이 반복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실은 뾰족한 수도 없다. 재창당 수준의 혁신만이 답이라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8월 전당대회까지 모색을 거듭해야 한다. 새로 뽑힌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임하고 당 쇄신을 위한 별도의 혁신위를 설하기로 했는데, 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큰 원칙은 당 정체성과 전혀 무관한 인물에 매달리거나, 최악의 경우 좌익 인사 최장집 같은 인물을 모시려는 좌파 코스프레는 독이 될 것이란 점이다. 새누리가 거듭 고민할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 무얼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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