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과실 판단, 비전문가 손에…잠재적 범죄자 전락·방어진료 만연할 것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신해철법,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의료분쟁 '강제 조정' 제도

19대 국회 마지막 법사위에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 일명 신해철법이 통과됐다. 조정절차 자동개시 등을 골자로 삼는 신해철법 개정에 따라 사망 또는 중상해 의료사고에서 환자들의 권리 보호가 대폭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비전문적 조정협의체라는 독소조항, 의사의 소신진료 기피 및 일부 과에 대한 기피 현상 심화, 영장 없는 병원 압수수색, 요양병원 퇴조 등에 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19대 국회에서 통과될 신해철법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한국의료분쟁조정원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의료인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조정을 시작한다. 다만 자동개시 요건인 사망 또는 중상해 의료사고에서 중상해의 범위를 ‘1개월 이상의 의식불명, 장애인복지법상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로 축소하는 수정의결을 했다.

이처럼 환자 측의 조정 신청 남발을 막기 위해 신해철법은 조정 신청에 관해 '사망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상해'에 해당하는 경우로 제한했으나, 의료분쟁을 국가가 강제로 조정하게 하는 제도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는 점에서 향후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신해철법에 따르면 환자 측이 수수료를 내고 인터넷으로 분쟁신청을 하면 현직검사가 포함된 중재원 5인 감정부가 구성되고, 여기에 의료전문가는 2명 포함된다. 의료과실 유무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중재원 감정부에서 의사를 못 믿겠다는 이유로 과반수 3표는 의료 비전문가에게 돌아갔다. 과학적 전문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감정부에서 비전문가들이 의료과실을 결정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 현장에 대한 강제조사를 시행할 수 있다. 의사가 강제조사를 방해하거나 거부할 경우 벌금 3000만원의 형벌이 부과된다.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의사는 형사 전과자로 전락한다.

조사에 협조해도 앞서의 중재원 감정부에서 투표를 통해 의료과실이 있다고 결정되면 환자 측은 민형사 소송을 갈 수 있다.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는 중재원 감정부 결정이라면, 의사는 환자 측과의 합의 없이는 형사처벌을 받고 민사소송은 패소할 수밖에 없게 된다.

   
▲ 검찰은 고(故) 신해철씨가 의료 과실로 숨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은 가수 고 신해철 씨 생전의 모습./자료사진=KCA엔터테인먼트


신해철법 통과…교도소 담장 위 걷게 된 의사들

신해철법 개정에 따른 효과는 환자 측의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입법 취지와는 달리 법제도는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충분히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료사고 은폐, 사고과실에 대한 의료진의 책임 기피가 문제였다면 앞으로는 환자 측의 위자료 뜯어내기나 병원 측의 방어진료, 의료사고의 음성화가 만연할 것으로 여겨진다.

신해철법, 의료분쟁에 대한 '강제 조정' 제도는 정당해 보인다. 지난 2014년 1월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지 7시간 만에 사망한 초등학교 3학년 전예강 양의 경우나 같은 해 10월 가수 신해철 씨가 병원에서 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후 의료사고로 사망한 사건처럼 환자의 억울함이 명백한 경우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의료사고 피해자는 소송에서 진실을 밝히기 쉽지 않았다. 조정 의료사고를 다수 맡아왔던 성빈 변호사(행복한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는 “피해자와 변호사, 검사 모두 비전문가이기에 형사 고소 후 기소까지 가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성 변호사는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들과 책임 규명에 대한 불만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 이번 신해철법 개정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며 “신해철법 이후 의료계에 어떤 악영향이 발생하고 일반시민들이 이를 어떻게 볼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환자 측의 악한 의도를 신해철법이 조장한다는 점이다. 무상이나 다름없는 의료건강보험의 맹점으로 의료쇼핑이 만연한 현실처럼 말이다. 이제 의사들은 사망 또는 중상해 의료사고에서 과실을 짓지 않았더라도 환자 측이 조금이라도 치료에 불만을 품게 되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되었다. 신해철법은 사망에 따른 위자료를 뜯어내기 위한 환자 가족들의 조정 신청 남발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산부인과 신경외과 쪽의 개인병원이나 중형병원은 짐을 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위험 산모에 대해서는 전국 모든 개인병원 산부인과가 분만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노환 자연사나 연명치료가 비일비재한 요양병원 및 호스피스 병동, 중증 환자 수술이 빈번한 대학병원 응급실 및 중환자실의 경우는 더하다. 시골 요양병원일수록 노인 입원환자가 많아 수시로 환자가 사망하는데 앞으로는 환자 측이 분쟁신청만 하면 강제조사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에 따라 병원 운영이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신해철법 개정에 따른 효과는 환자 측의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입법 취지와는 달리 법제도는 사람들의 선호에 따라 충분히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자료사진=대구 달성경찰서 제공


신해철법으로 환자 보호될까…몸 사리는 의료

의사들은 “이제 어려운 수술은 접어야 한다”고 항변하고 있다. 중환자를 볼 의사의 씨가 마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는 “고위험군은 앞으로 치료 기회조차 받지 못하겠지만 정작 환자 당사자들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이와 관련 “신해철법이 통과되면서 위험도가 높거나 고난이도 수술로 환자를 다뤄야만 하는 과의 지원율이 점점 낮아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향후 과의 지원현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과 환자의 자율적 논의가 기본임에도 의료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신해철법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의료사고 분쟁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나 환자와 의사간의 계약은 완전한 치료가 아닌 최선의 치료다. 생명은 위중하며 환자의 권리는 보호받아 마땅하나 그 판단은 당사자들 간의 합의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합의가 불발로 끝날 경우 형사고소가 이어질 것이고 정부의 역할은 이에 대해 공정히 수사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환자 측이 신청하면 강제적으로 조사와 조정이 시작되고 그 과실 유무를 비전문가들이 정한다’는 신해철법은 의사들이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수술을 아예 시도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이제 의사들은 중증 환자들을 무리해서 살리지 않을 것이다. 잠재적 범죄자로 전락한 의사는 환자를 돕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에게만 가혹한 책임을 묻는 신해철법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 문제는 환자 측의 악한 의도를 신해철법이 조장한다는 점이다. 이제 의사들은 사망 또는 중상해 의료사고에서 과실을 짓지 않았더라도 환자 측이 조금이라도 치료에 불만을 품게 되면 교도소 담장 위를 걷게 되었다./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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