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출입처 제도, 과연 최선인가

   
▲ 곽경수 고려대 언론학과 강사(언론학박사), 전 청와대 춘추관장
장면 #1 - 1월 6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실에 들러 ‘출입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 과정에서 MBN의 한 기자가 ‘너무 안고 싶었다’며 박대통령과 포옹했고 이 장면은 MBN은 물론 KBS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포옹을 한 기자는 새누리당 ‘출입기자’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일 때부터 박 후보를 전담 취재했으며 박 후보의 취임과 함께 청와대로 ‘출입처’를 옮겼다.

장면 #2 - 1월 13일. 서울시 경찰청 기자실
서울시 경찰청을 출입하는 기자(시경캡)들이 ‘출입기자단’ 회의를 열고 모 신문 시경캡에 대해 ‘출입금지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 기자는 1월 8일 저녁 만취한 상태에서 출입처인 서울시경 소속 경찰관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자. 2번 장면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철없는 기자가 있나’라며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1번 장면에 대해서는 ‘기자로서는 하지 않았어야 할 행동이다’라는 반응도, 혹은 ‘박대통령에 대한 ‘팬심’의 발로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 전문가들은 장면 #1이나 장면 #2 모두 기자의 철없는 행동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장면 #1에 대해, 기자는 권력에 대한 감시견(watch dog) 역할이 본업인데 공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감시 대상인 대통령과 저렇게 친밀감을 강조하면 어떻게 비판적인 기사를 쓰겠냐는 생각에서다.
 

그러면 ‘언론고시’라 불릴 정도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똑똑한’ 기자들이 왜 저런 안타까운 행동을 했을까? 저런 행동이 단지 기자의 개인적 일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기자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어떤 문제점이 자신도 모르게 저런 식으로 노출된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꼼꼼히 두 장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장면 #1과 장면 #2는 발생 시간도, 장소도, 행위도 상이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기자 모두 어떤 부처의 ‘출입기자’이며, 행위가 발생한 장소 또한 자신들의 ‘출입처‘라는 점이다. 결국 ’출입기자‘가 ’출입처’에서 벌인 행동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언론학자인 피쉬먼(Fishman)에 따르면 언론사는 매일 일정한 양의 뉴스를 생산해야 하기에 취재원을 네트워크화 할 필요가 있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적절한 정보를 받을 수가 있었다며 이처럼 제도화된 취재원의 네트워크를 출입처라고 설명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출입처란 기자가 상주하거나 또는 정기적으로 방문해 정보를 규칙적으로 얻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정례적으로 보도 자료를 내고 브리핑을 실시하는 각 행정부처와, 국회(정당), 검찰과 법원, 그리고 대기업 등이 출입처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출입처에는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기자실이 있다. 그리고 특정 출입처에 적을 두고 있는 기자들 중 일정 자격을 갖춘 기자들은 ‘기자단’이라는 조직에 가입할 수 있다. 취재의 편의, 출입처와의 관계 등을 위해 조직된 기자단은 친목단체 성격이면서 기자들이 취재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취재 수단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출입 기자들은 기자단의 이름으로 자료를 요청하고 브리핑이나 간담회를 요구하며, 취재원도 언론을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자단을 활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름 있는 언론사는 신문과 방송을 막론하고 모두 출입처 제도를 운용한다. 이들 언론사의 보도국이나 편집국 조직도 크게 보면 출입처를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사 입장에서 출입처 제도는, 넓은 취재 영역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정보를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신속하게 취득할 수 있는 제도이기에 선호해 왔다. 또 각 출입처 마다 기자들의 선호가 다르기에 출입처 배정을 통해 기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측면도 있다.

매일 기사를 써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기자의 입장에서도 출입처는 늘 가기 때문에 친숙한데다 출입처에서 생산되는 정보의 가치가 높고 게다가 공신력까지 있기에 출입처 제도가 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취재원인 출입처 입장에서도 대 언론 창구가 단일화되어 간편한데다 때로는 자신들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출입처 제도는 이해관계가 있는 3자가 모두 만족하는 시스템이기에 별다른 이론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물론 출입처제도에서 독자나 시청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 출입처 제도는 정부나 기업, 출입기자, 홍보실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 운영되고 있다. 언론사나 출입기자는 취재원이나 해당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게 본연의 역할이다. 하지만 출입기자들이 자칫 출입하는 청와대, 정부부처, 기업, 정당의 이해를 대변하는 심각한 부작용도 적지않다. 언론이나 출입기자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출입처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후 출입기자실인 춘추관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입처 제도는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을 안고 있다. 이 시스템에 젖어 있는 기자는 출입처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게 되면서 점차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감시견이라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기자가 취재원 선택에 있어 사건 관련성 보다는 취재 편의성에 더 중점을 두게 되면 출입처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더 커지고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더 커지면 출입 기자가 출입처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입장으로 발전하게 된다.

정당을 출입하는 기자의 예를 들면 동일 사안에 대해 기사를 쓸 경우에도, 여당을 출입하는 기자는 여당의 입장을 반영한 기사를 쓰고, 야당을 출입하는 기자는 야당의 입장에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있다. 특히 대통령선거 때에는 그 입장차이가 첨예하게 드러나 정치부 기자끼리 기사를 두고 언쟁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다 자기가 전담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마치 자신의 노력 때문에 후보가 당선된 것과 같은 희열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있다. 기자의 이러한 희열은 현실적 이익과도 관련이 있다. 자기가 전담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그 기자는 후보를 따라 자연스럽게 청와대로 출입처를 옮길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자가 자신의 취재원과 일체감마저 느끼게 되면 둘 사이의 관계는 기자와 취재원이 아니라 동지라는 느낌이 들 것이고 취재원을 대하는 기자의 행동도 기자의 자격 보다는 동지의 자격이 더 우선되어 나오게 된다. 장면 #1에서 나온 기자의 행동이 이런 결과라 생각한다. 장면 #1은 결국 기자 개인의 일탈이기는 하지만 그 근저에는 출입처제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예전에 모 기자가 음주단속에 걸린 것이 뉴스를 통해 방영된 적이 있다. 당시 이 기자는 카메라가 촬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단속경찰에게 “같은 식구인데 한번 봐주라...” 라는 말을 했고 이 말은 뉴스를 통해 그대로 보도됐다. 당시 뉴스를 본 시청자들은 ‘아니 기자가 왜 경찰과 가족이야’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경찰과 동료 의식을 느끼는 기자들이 많다. 기자들은 수습 생활을 경찰서에서 하고 첫 출입처도 경찰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시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정부기관일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고, 경찰서에서 벌어지는 여러 종류의 사건 취재가 이후 기자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사가 초년 기자의 출입처로 경찰서를 배정하는 것이다. 특히 언론사의 ‘시경캡’이라는 자리는 10~20명가량 되는 경찰 기자를 통솔하는 자리로 '사건 취재의 야전사령관'으로 불기 때문에 대부분 경찰기자를 상당기간 한 뒤에 가는 자리다. 이처럼 ‘시경캡’들은 경찰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 경찰들과의 관계는 다른 어느 출입처 취재원보다 더 친밀하다고 할 수 있다.
 

장면 #2에서 경찰에게 행패를 부린 이 ‘시경캡’의 행위는 외부에서 보면 공권력에 대한 도전 혹은 공무집행 방해와 같은 무모한 행위이며 일종의 범법 행위로 비춰질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비록 조금 과도한 행위일 수는 있지만 이는 공권력을 상대로 한 범법 행위가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에게 한 행위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전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기자는 자신의 행위로 인해 기자단에서만 징계를 받았을 뿐 일반인이었으면 당연히 받아야 할 처벌을 받았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장면 #2의 경우와 직접적으로 관계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문제인 것은 기자와 출입처와의 친밀도가 지나쳐 기자가 출입처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나아가 기자가 출입처의 권력을 자신의 권력인 것처럼 오용하는 경향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장면#1과 장면 #2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발생 시간도, 장소도, 행위도 상이하지만 ‘출입처’에서 ‘출입기자’에 의한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그 근저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사가 취재 수단으로 채택하고 있는 출입처제도가 근저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무의식중에 기자의 행동까지 지배할 정도로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출입처제도가 왜 사라지지 않는가. 그 이유는 대안이 없어서이다. 1990년대에 한 언론사에서 출입처 제도를 폐지했다가 자신들만 출입처에서 ‘왕따’되는 경험을 한 뒤 다시 출입처제도로 복귀한 적이 있다. 2000년대 노무현대통령 시절 기자실 폐쇄도 일종의 출입처제도 개선안이었지만 출입처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개선책 제시 없이 단순히 기자실을 브리핑실로 바꾸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자들의 반발을 사 그 후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당장 출입처제도의 대안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안이 없다고 잘못된 제도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이번 문제제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언론사의 출입처제도에 대해 먼저 깊이 있게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제도 개선에는 먼저 그 제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는 언론의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권력화하는 언론 내부로 부터의 개혁이 필요하고 출입처제도의 개선은 그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말 필요한 개혁이라 하겠다. /곽경수 고려대 강사(언론학박사), 전 청와대 춘추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