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법‧자본시장법 개정안 결국 자동폐기 수순 맞아
[미디어펜=이원우 기자]"꽃이 지기 전에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한 말이다. "꽃구경을 가는 이유는 꽃이 잠시 피지 영원히 피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 박 대통령은 규제개혁에도 '때'가 있음을 강조했다. "신산업의 변화 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그냥 빼앗기는 것"이라고 우려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불합리한 규제혁파를 강조하고 있다./연합뉴스

비유는 좋았지만 현실은 암담하다. 19대 국회가 마지막 본회의에 돌입한 19일, 금융 산업의 '미래'에 대한 법들은 줄줄이 자동폐기 수순으로 넘어간 상태다. 현재 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1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132개 무쟁점법안으로 한정돼 있다. 여야 간 견해차가 적어 무리 없이 논의할 수 있는 법들만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가로등 밑에서만 안경을 찾는 격이다.

금융권에서는 자본시장법 개정안과 은행법 개정안이 결국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는 점에 대한 걱정이 깊다. 이 법안들은 이번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이견이 너무 크다 보니 본회의에 앞서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 법안이 전부 '지금 당장' 다뤄야만 할 정도로 시급성을 가진 법안들이라는 점이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의 경우 연내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핵심적인 전제조건이다. 

인터넷은행 업계를 비롯한 개정안 찬성 측은 "인터넷은행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소유규제를 완화하고 대기업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수차례 언급했지만 조금도 반대 측을 설득하지 못한 채 결국 개정안 통과에 실패했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연내 출범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출범을 한들 혁신적인 경영과 자본 출자에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게 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이 법안의 경우 한국거래소(KRX)에 대한 '지주사 전환'을 골자로 하고 있었으나 본회의 상정에 실패해 역시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코스닥‧코스피‧코넥스 등을 분리해 자회사로 만들고, 해외 주요 거래소와의 자본 제휴 폭을 넓혀 한국 시장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근접시키겠다는 구상도 당분간 실현이 어렵게 됐다.

은행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일관된 반대 의사를 밝혀 온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의원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19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활약한 그는 지난 18일 자신의 정무위 활동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내용 중에는 은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 개정안에 대한 비판 논리가 포함됐다.

특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서 그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주회사의 본사는 10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충분해진다"면서 "지주회사 본사를 부산에 둔다 한들 의미가 없고, 나머지 자회사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켜도 상장된 민간 기업을 정부가 규제할 길이 없어진다"면서 반대 의사를 재차 명확히 했다. 그의 관점에서 민간 기업 특유의 역동성과 도전정신은 '규제'의 대상인 듯하다.

김 의원의 의정 활동은 19대 국회로 끝나지만 금융권을 둘러싼 변화의 파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애초에 19대 국회에서 (은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추진한 것도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그리 빠른 게 아니었다"면서 "20대 국회에서라고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 보이는 데다, 협상과정에서 원안의 효력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퇴장하고 있는 19대 국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역대 최악의 식물 국회'라고 표현한다. 국민들은 국회가 지난 4년간 반드시 피워냈어야 할 '꽃구경' 대신 무기력한 '식물 구경'만 실컷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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