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폐지…재산권과 생산성에 주목한 북부의 선택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자유화 10: 자유주의로 미국 남북 전쟁 '아주 아주 매우 쉽게' 읽기

미국 남북전쟁에 대해 초등학교 때 배웠던 내용은 이렇다. 노예제 폐지를 놓고 남북이 격돌한 전쟁. 그러니까 탐욕스럽고 악질적인 남부 농장주와 휴머니즘에 불타는 북부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투쟁이라는 얘기인데 선악 구분 외에 다른 쪽까지는 지능이 못 미치는 아동에게는 적당한 설명이겠다. 그러나 남쪽에도 착한 놈은 많았고 북쪽에도 악당은 수두룩했다.

중학교 쯤 올라가면 이게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에 관한 분쟁이었음을 알게 된다. 엄밀하게 말해 남북전쟁은 북부에 대한 남부의 '헌법위반 소송의 무력적 실현’이었다. 17세기부터 전원적이고 농업 위주의 남부와 도시적이고 공업 위주인 북부의 갈등이 시작된다. 우위를 점한 건 북부였다. 연방의회는 북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법령만을 통과시켰다. 철도의 대부분이 북부에 건설되었다.

돈과 기반 시설만 북부에 모인 게 아니다. 이민도 기반을 잡기가 비교적 수월한 북부에 집중되었다. 혈압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그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아예 노예제 폐지를 외치며 남부의 생활 기반을 송두리째 파괴하려드니 북부에 대한 남부의 반감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런 남부에게 1860년의 대통령 선거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의회는 이미 북부가 장악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라도 남부 출신이거나 최소한 남부에 호의적인 인물이 당선되어야 숨통이 트인다. 그러나 안 되는 집은 뭘 해도 계속 안 된다. 남부에 우호적인 민주당이 강온파로 나뉘어 서로 할퀴는 동안 공화당은 혜성처럼 등장한 링컨을 캐스팅하면서 전국적인 바람몰이를 시작한다. 결국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링컨이 당선됐고 반反연방주의의 선봉에 섰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연방에서 탈퇴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가 탈퇴의 변으로 남긴 선언문은 대략 이런 내용이다. 

“연방헌법 제 4조에 의하면 어떤 주에서 그 주의 법에 따라 사역이나 노동을 하는 자가 타주로 도망칠 경우 타주의 어떤 법이나 규정도 상기 사역이나 노동을 면제할 수 없으며 상기 사역이나 노동을 받을 권리가 있는 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즉시 그에게 인도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같은 헌법상의 계약은 비非 노예 소유주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위반되고 무시되어 왔다. 따라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당연히 그 의무로부터 해방된다. 비非 노예 소유주들은 수많은 우리의 노예들이 집을 떠나도록 부추기고 있으며 그들에게 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남아 있는 노예들에게는 반란을 일으키라고 선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주민들은 세계의 유식자들에게 우리 취지의 정당함을 호소하면서 지금까지 본 주와 북아메리카 다른 주들 사이에 존재해 온 연방은 해체되었고 본 주는 전쟁의 수행, 강화, 동맹체결, 통상 그리고 독립국이 정당하게 취할 수 있는 다른 모든 행동과 사무를 처리하는 완전한 권리를 가진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국가로서 세계의 국가들 가운데 그 지위를 되찾았음을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 남부에 우호적인 민주당이 강온파로 나뉘어 서로 할퀴는 동안 공화당은 혜성처럼 등장한 링컨을 캐스팅하면서 전국적인 바람몰이를 시작한다. 결국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링컨이 당선됐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법치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헌법 상 이들의 연방탈퇴와 독립선언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링컨은 취임 연설에서 남부의 연방 탈퇴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정부를 유지, 보호, 수호하기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전쟁이었다. 헌법 가치를 중시한 남부와 변호사이면서도 헌법을 무시한 링컨의 대결은 이렇게 시작된다. 북부가 정당하려면 절차를 거쳐 헌법을 개정하고 그때 반발하는 세력을 처벌하면 된다. 적어도 이때까지 서류상의 정당성은 북부에 있었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남북전쟁을 특유의 시각으로 유심히 관찰한 사람은 칼 맑스다. 그는 뉴욕 데일리 트리뷴 등에 30여 편의 칼럼을 기고하면서 사태를 해석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남북전쟁의 본질은 대항해 시대 이래 18세기까지 진행된 유럽 중상주의 정책의 역사적 산물인 근대 노예제 해체의 미국적 형태였다. 여기서 칼 맑스가 말하는 중상주의란 봉건제가 해체되고 있던 서유럽 열강들이 대항해 시대 이래 개발된 글로벌한 상거래를 장악하고 있던 산업자본의 형성에 필요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을 달성하고자 한 정책이었다. 다만 영국 산업혁명 후 자유주의 경제사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19세기 전반기에 다양한 형태로 해체되어 갔지만 합중국에서는 이와는 별도의 독자적인 형태(내전)를 취했다는 설명이다. 

대체 왜 이렇게 말을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다. 자유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는 쉽다 못해 하품이 날 정도로 단순하다. 이 내전은 1840년대에 취득된 새로운 영토를 '자유로운 노동’을 위한 토지로 할 것인지 '노예제’의 토지로 할 것인지를 둘러싼 문제였다. 자유로운 노동을 지지한 북부의 선택은 상식적이다. 노예는 시키는 일만 한다. 그나마 주인이 안 보면 농땡이다. 어차피 더 일해 봐야 주인 좋은 일만 시킨다. 해서 노예에게는 채찍질이 돌아오지 않을 만큼만 일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자유로운 노동은 다르다.

감시자가 있건 말건 죽자 살자 일한다. 취득한 소득이 온전히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인 사고는 물론이다. 북부는 이 생산성에 주목했을 뿐이다. 그럼 의문이 생긴다. 남부는 머리가 없어서 노예제를 선택했을까. 물론 죽어라 패면 생산량이 조금은 늘어날 수 있겠다. 그러나 자발적인, 자유노동과는 게임이 안 된다.

그럼 대체 왜? 고래古來로 내전은 이외로 자존심 싸움이 많다. 북부가 싫어서 그들이 반대하는 노예제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뿐이지 경제논리의 확장 끝에 남부가 노예제를 고른 게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적인 사고라면 노예를 몽땅 독립시키고(나중에 자유권까지 돈으로 갚게 하면 더더욱 좋다) 목화밭에 밀어 넣는 게 장기적으로는 훨씬 이득이다. 그러니까 전쟁 안 해도 됐다는 얘기다.

   
▲ 푸른색은 북부연방 주(Union), 붉은색은 남부맹방 주(Confederate)이다. 링컨은 취임 연설에서 남부의 연방 탈퇴를 '내란’으로 규정하고 정부를 유지, 보호, 수호하기 위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전쟁이었다./사진=위키백과 미국 남북 전쟁
           

맑스는 남북전쟁을 '근대 노예제 해체의 미국적 형태’로 봤지만 이것이야말로 그의 사고가 기계론적 유물론이라고 놀림감이 되는 이유다. 인간을 봐야 한다.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강력한 채찍도 사유재산의 증대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전쟁은 경제적 이익과 인권의 확대를 묶은 미국 자유주의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간섭과 통제가 아닌 자발적 자유노동에 힘이 실려야 하는 이유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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