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해당 기업의 상장채권의 가격은 오히려 치솟거나 유지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구조조정의 결과, 해당 기업이 법정관리로 들어가거나 파산하게 된다면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발행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 ‘현대상선186’은 이날 보합세인 53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 20일 현대상선의 법정관리 우려에 투매현상이 일어나면서 장중 3532원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50%이상 가격이 뛴 것이다.

현대상선의 또 다른 상장 채권인 ‘현대상선180’과 ‘현대상선180’과 ‘현대상선179-2’, ‘현대상선177-2’의 가격 변동성도 이와 비슷하다. 현대상선180 역시 1월 20일 장중 3600원까지 떨어졌지만 23일 521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는 최근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법정관리에 대한 공포가 커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이미 지난달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업체가 현대상선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채무불이행(디폴트) 등급인 ‘D’로 낮췄지만 채권 가격은 오히려 오름세를 보인 것.

현대상선 주식이 지난달 18일 상장폐지를 막기 위해 7대1 감자를 단행했음에도 부진한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과도 대조된다.

현대상선은 이달 31일 사채권자 집회가 열리기 때문에 하루 전인 이달 30일까지 해외선주들과의 용선료 인하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갈 것이 유력하다.

조선 3사 중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의 상장 채권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지난해 3월 발행한 ‘대우조선해양7’은 23일 전거래일 대비 1.26% 내린 77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 4일 8610원보다는 떨어진 가격이지만 역시 법정관리 가능성이 잔존한다는 점에 비해서는 평탄한 움직임이다.

이처럼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채권에 대한 투자수요가 줄지 않자 지난 18일 금융위원회는 증권사 홈페이지에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상장채권에 대한 투자주의가 요구된다는 투자자 유의사항을 공지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채권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고 거래량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상선186의 거래량은 지난달 29일 5만4000(천원)에서 이달 19일 120만9199(천원)으로 폭증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법정관리로 가면 채권 회수율은 20%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해외 정기선을 운영하는 컨테이너 선사인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로 가면 파산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우조선해양도 법정관리 시 해외선주의 발주 해지가 잇따르면서 파산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법정관리로 간다고 곧바로 파산하지는 했겠지만 해외 선주가 발주계약을 해지하면서 은행권 등 채권단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기업의 회생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는 만 회사채 투자자들이 ‘폭탄 돌리기’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해당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정부가 채권투자자에 손실을 보전해 줄 것이라는 기대에 개인 투자자들이 회사채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거래소에 따르면 현대상선186은 지난 20일까지 최근 한 달 동안 개인 투자자들이 5억2500만원 규모를 사들였다. 이에 비해 기관은 4억3000만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김용건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실장은 “법정관리 위험 기업 회사채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정상적 상황으로 볼 수 없다”며 “손실을 그대로 떠안는 기관투자자와는 달리, 과거 대우그룹 해체 때처럼 개인투자자에는 만기연장, 이자감면 등 특별한 구제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일부 반영돼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 같은 사실을 일축했다. 과거 STX 등의 법정관리 기업 회사채 보유자들이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원금의 일부를 회수한 것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동양사태 때 일부 투자자가 원금을 돌려받았지만 당시에는 불완전판매가 문제가 됐었다는 지적이다.

귄민수 금융감독원 기업공시3팀장은 “회사채의 가격은 주식과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기업이 파산하면 세금으로 회사채 손실을 보전해 주는 일은 절대 없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