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과 금융경쟁력이 경쟁력 원천, 제도가 주요인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 연구위원
매년 1월, 이맘때면 세계의 이목은 스위스의 동쪽 끝 알프스 산맥의 자락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다보스로 쏠린다.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정·관·재계 인사들이 한데 모여 지구적 관심사를 논의하는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 Forum) 연차총회가 이맘때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다보스 포럼으로 이름이 더 알려진 금년도 44차 총회에서는 ‘세계의 재편: 정치, 기업, 사회에 대한 영향’을 논의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개막연설을 하면서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 뉴스가 더욱 넘쳐났다.

다보스 포럼에 대한 방송·언론의 소식을 접하며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WEF는 다보스 포럼과 별개로 매년 세계경쟁력지수(global competitive index)를 측정하여 국가별로 점수와 순위를 발표해왔다. 그러면 WEF는 자신의 본거지인 스위스의 국가경쟁력을 어찌 평가했을까? 우리와 비교할 때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일 외투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투자 관련 규제를 백지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여 한국을 투자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 하였고, 다보스 현지에서도 같은 취지의 투자유치 IR에 나섰다 하기에 한국과 스위스의 투자환경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진 것이다.

먼저 스위스의 개략적인 상황을 보자. 스위스 국토면적은 남한의 약 2/5, 인구는 약 9백만 명 정도로 우리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리적으로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소박하게 어울리는 목가적 풍경의 나라이다. 역사·정치·외교적으로는 작곡가 롯시니(Gioacchino Rossini)의 마지막 오페라 작품으로 많이 알려진 ‘윌리암 텔’의 서사적 영웅담이 딱 어울릴 만큼 유럽의 강대국에 둘러싸인 소국이다. 그러나 경제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위스 1인당 국민소득은 근 8만 불로 우리의 3.5배나 많다. 스위스 인구규모는 세계 82위이나 국가 GDP는 세계 20위로서 한국의 15위와 큰 차이가 없다. 사회보장기여금을 포함한 국민조세부담율은 28.3%…, 우리의 25.9%와 엇비슷한 수준이다.

무엇이 스위스를 경제부국으로 만들었을까?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겠지만 WEF 관점에서 보면 스위스 국민들의 열심히 경제 하려는 의지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WEF의 GCI 지수는 제도 부문에서부터 인프라, 거시환경, 교육, 시장효율성, 혁신에 이르기까지 총 12개의 축으로 나누어 평가하는데 이중 우리와 비교할 때 스위스가 눈에 띄게 앞서는 부문이 노동시장 효율성(labor market efficiency: 한국 78위 vs. 스위스 2위), 금융시장발전(financial market development: 81위 vs. 11위) 그리고 제도부문(institutions: 74위 vs. 7위)이다. 시장규율 및 경제규제를 아우르는 제도 경쟁력 면에서 스위스는 한국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앞서 있음이다.

   
▲ 다보스 포럼을 개최중인 스위스는 인구 900만명의 소국으로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도 안된다. 영토도 우리의 5분의 2에 불과하다. 유럽강국에 둘러싸인 스위스가 국민소득 8만달러(한국의 3.5배), GDP규모는 한국과 비슷한 정도의 세계최고 부국으로 도약한데는 노동생산성과 금융시장 경쟁력이 주된 요인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과 기업에 대한 지원이 경제성장의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투명하고 공정한 제도가 경제적 성과와 국가간 빈부격차의 주된 요인이 된다는 경제학계의 주장을 입증해주는 사례다. 박근혜대통령이 다보스포럼에서 개막연설후 찰스 슈밥 다보스포럼 회장과 토론을 벌이고 있다.

제도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 기회와 유인 체계를 결정하는 게임법칙(rules of the game)이다. 제도야말로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과와 국가 간의 빈부 차이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임을 강조하는 노벨 경제학자인 노스(Douglas North)의 주장에 필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 때문에 필자는 한국을 투자하기 좋은 나라, 경제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려면 시장제도와 규제 경쟁력을 대폭 개선해야 함을 늘 강조해왔다. GCI 지수에서 보듯이 한국의 제도 경쟁력은 경제발전 단계에 비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제도 경쟁력 향상 없이는 국민 행복과 1인당 소득 4만 불 달성은 무망(無望)이고, 국민 불편·불만·불신만 키울 뿐이다. 한국의 노동시장 제도와 관행은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으니 더 말하면 지면만 축낼 일이다.

한국의 금융시장? 금융회사는 안방에서 담보 위주 영업에 안주하고 감독당국은 금융회사 돈에 기대니 고객정보가 함부로 빈번하게 유출되는 사건에서 보듯이 금융시장 제도의 문제 또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알아도 안 고치는 병이 있고 몰라서 못 고치는 병이 있다. 노동과 금융시장의 문제는 확실히 전자의 부류에 속한다. 하나씩 얘기하면 후자의 범주에 속할 일이 있겠는가.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한국은 제도와 규제의 생성, 집행 및 적용, 분쟁 및 갈등 조정과 제3자 개입의 모든 과정에서 병증이 심각한 ‘제도 실패국가’라는 점이다. 이 또한 설명하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터이니 한국과 스위스의 공적 제도 16개 지표에 대한 GCI 평가 결과를 아래에 첨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 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미국의 포춘(Fortune)지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500대기업에 스위스는 한국과 똑같이 14개이다. 한국에서 하듯이 이들 글로벌 기업의 매출액을 그 기업이 속한 나라의 GDP로 나눈 값을 경제력집중의 척도로 보면 어디가 더 높을까? 스위스의 최대 기업(Glencore Xstrata) 매출액이 그 나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0%이다. 한국의 최대 기업(삼성전자) 매출액 비중은 15.8%이다. 10대 기업 매출액 비중은 한국이 59.3%, 스위스가 107.9%이다. 한국적 논리라면 스위스의 경제력집중은 한국보다 두 배 가량 심각한 셈이다.

그러나 아래의 제도 내용을 얼핏 봐도 스위스 대기업들은 경제력집중이나 경제민주화와 같은 규제와는 무관해 보인다. 최근 3년간 총 세수에서 법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스위스가 10.3%로 오히려 한국의 14.7% 보다 낮다.

후기: 다보스 포럼의 주관자인 WEF의 GCI를 중심으로 비교하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WEF의 GCI라는 게 또 다른 스위스 작품인 IMD 국가경쟁력지수와 마찬가지로 주관적인 요소가 많아서 객관성, 신뢰성, 대표성에 한계가 있다. 그대로 곧이들을 것은 아니다. 그래도 ‘백지 상태에서의 규제 전면 재검토’ 또는 ‘제도 경쟁력 복원’이 ‘한국 경제 혁신’의 화두가 될 듯하여 다보스 포럼을 계기 삼아 스위스의 제도경쟁력을 타산지석(他山之石) 사례로 한번 살펴보았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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