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가리고 아웅은 안돼, 방만경영 개혁과 신뢰 회복부터 해야

 

   
▲ 황근 선문대교수
1970년대 말 필자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절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350원쯤 되었다. 자장면 가격이라는 것이 소비자물가지수에 직접 반영되고, 또 중국화교들이 주로 중국집을 운영한다고 해서 정부가 가격을 유난히 강하게 통제하던 시절이다. 때문에 다른 물가보다 짜장면 가격은 유난히 낮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앞 중국집(아마 이름이 홍콩(香港)이었던 것 같다. 하긴 이런 이름의 중국집은 당시어떤 동네든지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에서 자장면을 시키니, 못보던 계란후라이 하나가 얹혀 나오는 것이다. 항상 배가 고팠던 청춘시절이니 “이게 왠 횡재냐?” 하면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한국말이 유창한 화교아주머니 왈, “자장면 값 오늘부터 50원 올랐어. 그래서 계란 후라이를 서비스로 제공한거야” 그러는 것이다. 없는 돈에 자장면 값이 오른 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물론 그 계란 후라이 서비스도 아마 몇 달 뒤 슬그머니 없어졌던 것 같다.
 

또 택시요금 인상 때마다 항상 택시기사들이 붙이고 다녔던 스티커 기억하는 분들 많을 것이다. “앞으로 더욱 서비스를 강화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택시 값이 올랐다고 서비스가 좋아졌다고 느낀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냥 립 서비스려니 생각할 것이다. 하긴 요즘 들어 그나마 택시비가 올라도 짜장면 값이 올라도 그런 립 서비스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만들었다는 ‘방송광고균형발전(안)’을 두고 미디어업계가 소란스럽다. 여러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주요 골자는 지상파방송의 광고 규제를 완화해 광고수입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에게도 케이블TV나 IPTV처럼 중간광고와 광고총량제를 허용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지상파방송 광고수입을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외형적인 제도차원에서만 보면 균형발전이 맞다. 하지만 전체 방송시장에서 차지하는 지상파방송 광고 비중이 여전히 막강하다는 것을 보면, 이 용어는 맞지 않은 것 같다.
 

   
▲ 지상파방송사와 방통위가 수신료 인상과 중간광고 허용 등 광고규제 완화를 요청하고 있다. KBS의 방만한 경영이 해소되지 않고, 국민적 신뢰도 없는 상태에서 광고규제를 풀면 프로그램의 상업화와 선성성만 부채질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신문, 유료방송 등 지상파방송을 제외한 모든 매체들이 ‘광고균형발전이 아니라 지상파방송 광고 몰아주기’라면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지상파방송 광고규제를 완화하면 전체 광고시장 파이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들의 광고재원을 빼앗아가는 ‘제로 섬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최근 미디어 발달 추세나 이용자들의 미디어 행태변화를 감안하면, 그렇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급성장하고 있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광고와 같은 비방송매체들의 광고를 방송시장으로 끌어올 가능성을 별로 없다. 그저 같이 고전하고 있는 다른 전통 매체들의 광고물량만 뺏어 올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까지는 방송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지상파방송의 광고량을 늘려주는 것이 말 그대로 ‘균형발전’이라는 용어에 부합되는지도 의문이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균형이라는 말은 ‘힘 약한 놈을 밀어주어 힘 쎈 놈과 비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혹시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베를린'이라는 영화에서 남한 정보원 한석규가 북한 정보원 하정우에게 했던 “요즘 니들하고 우리하고 쓰는 말이 많이 다르냐?”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광고를 늘려달라고 하는 KBS를 비롯한 지상파방송사들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내거는 명분이 ‘요즘 돈이 쫄려서 좋은 콘텐츠를 못 만들고 있으니 광고라도 많이 하게 해 좋은 콘텐츠 좀 만들게 해 달라는 것’이다. 돈만 더 벌수 있게 해준다면 한류에도 앞장서고, 공익적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고, 공적 책무도 충실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상업광고 수익을 늘리려면 프로그램은 필연적으로 더욱 상업화되어야 하고, 특히 중간광고나 광고총량제는 오락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광고를 유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거기에 공익이나 공적 책무가 끼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혹시 상업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 광고수익을 늘려 다른 시간대에 공익적 프로그램을 늘리고 더 잘하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웃기는 일이다. 마치 ‘룸 싸롱에서 돈 벌어 공부 잘하는 남동생 고시합격시키겠다’는 신파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특히 국가기간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이런 비굴한 논리를 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이런 논리와 명분은 또 논란이 되고 있는 KBS 수신료 인상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얼마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한 수신료인상 공청회에서 많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지금처럼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경영구조를 우선 개혁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KBS 입장은 돈만 올려주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마치 ‘닭과 달걀 논쟁’ 같이 보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건 선후가 분명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광고규제 완화든 수신료 인상이든 이것들은 모두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것들이다. 하지만 올려주면 하겠다는 양질의 콘텐츠, 공익적 프로그램, 공적 책무 강화 등은 말로만 하는 구두약속일 뿐이다. 그냥 ‘택시요금 인상해주면 서비스 늘려주겠다’는 말과 별반 차이 없다. 또 잠시 얹혀 주다가 말았던 홍콩반점의 계란 후라이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잠시 욕을 먹을지는 모르지만, 자장면값이나 택시요금을 다시 낮출 수 는 없는 것이다.
물론 KBS를 비롯한 지상파방송들은 이렇게 강변할 지도 모른다. 우리가 제시한 약속들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 공영방송을 투명하고 철저히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 KBS이사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요즘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 공기업의 불투명한 경영실태가 그런 감시/규제 제도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방송은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국회나 정치권조차 함부로 건드리기도 힘든 영역이다.
 

공영방송의 이런 ‘미사여구’가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인 약속이 되려면 무엇보다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고 국민들의 믿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택시 요금인상’이나 ‘잠시 동안 계란후라이 얹은 짜장면’ 꼴이 되지 않을 것이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