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찬란한 갈치 25kg 조과, 서울서 회 구이 조림 국 포식

   
▲ 하응백 휴먼앤북스 대표, <나는 낚시다> 저자
문향과 스토리가 있는 하응백의 낚시여행(2)-제주도 성산항 갈치낚시

기분좋게도 1월 1일 가자미 낚시에서 대박이 났다. 여세를 몰아 친구와 나는 1월 4일 또 낚시를 계획한다. 좀 심하다 싶지만, 바다낚시는 갈 수 있을 때 가야 한다. 풍랑이 심해 몇 주 출조를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에, 날씨가 좋을 때는, 고기가 나온다면, 그리고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무조건 가야한다. 좀 황당한 원칙이지만, 거의 지켜진다. 그래서 나는 가지 않을 수 없는 결혼식과 같은 주말 초대장이나 청첩장이 싫다. 자식을 결혼시켜려는 나의 지인들이여. 혹시라도 내가 주말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지 못하더라도 용서해주세요. 대신 축의금은 보낼게요.

갈치 낚시는 1월이 되면 끝물에 가깝다. 갈치낚시는 제주에서는 대개 여름에 시작하여 남해안으로 서서히 올라온다. 추석을 지나면 본격적인 시즌이다. 10월이 지나면 목포나 진해의 근해 갈치낚시도 피크를 이루고 멀리 출조하는 여수나 통영 등의 배들도 파시를 이룬다. 서울에서 갈치낚시를 가려면 여수나 통영까지 가서 배를 타거나 제주로 가서 배를 타면 된다. 물론 경비가 만만찮다. 하지만 그 수확물은 그 경비를 상쇄하고도 남을 때가 있다. 낚시꾼은 팔지 않기에 금전적으로야 부담이 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싱싱한 은빛 갈치를 선물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타인에게 맛있는 갈치를 먹이겠다는 이 눈부신 이타성. 이것이야말로 휴머니즘의 정수다, 라고 말하면 ‘미친 놈, 제가 좋아서 하면서’ 할 것이다.

12월이 지나면서 여수, 통영의 갈치 낚시는 마감 되고, 제주에서는 성산항에서 동남방 쪽으로 내려가 낚시가 이루어진다. 시즌 마지막 갈치를 가기로 하고 서둘러 배를 예약한다. 제주 은갈치 2호. 1월 4일 토요일 12시 55분 비행기를 김포에서 탄다. 제주 공항에 은갈치 버스가 픽업이 나와 있다. 낚시를 다녀보면 이때가 가장 즐겁다. 막 출조를 앞두고 같은 성향의 미친 사람들 20여 명이 모여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전번 출조 때는 8지 짜리를 몇 마리 잡았느니, 몇 kg을 잡아 항공화물로 부쳤느니, 등등 ‘뻥’들을 치기 시작한다.(낚시꾼들은 갈치의 크기를 손가락 굵기로 표현한다. 5지 짜리면 손가락 다섯 개 너비다. 그러니 8지라니!)
이때는 한라산 정상이 눈을 이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아니한다. 이국적 풍광의 가로수들과 빨간 동백꽃도, 그 신선한 제주의 공기도 느끼지 못한다. 낚시에만 미친 사람들. 그러니 눈뜬 장님이고 귀뚫린 귀머거리다.

버스는 성산항으로 이동한다. 성산항에서 옥돔구이 백반으로 이른 저녁을 먹는다. 참 재미있는 것이 이 옥돔의 원산지 표기법이다. 옥돔은 제주도 남쪽부터 동지나해에서 잡히건만, 한국 배가 잡으면 한국산, 중국배가 잡으면 중국산이다. 중국산을 수입해서 소금물에 간을 잘 하면 전문가가 아니면 그 맛을 구별해내기가 힘들다. 공항 주변에서 비싼 옥돔을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제주 동문 시장에 가서 저렴한 중국산을 사는 경우가 더 많다. 한반도 해역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주 근해에서도 옥돔 낚시가 최근에는 이루어지는데, 한 번 시도해 보리라 마음먹는다.

 
   
▲ 성산항에서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성산항이 출항하려는 낚싯배들로 분주하다. 버스의 일행들은 은갈치 1호와 2호로 나누어 탄다. 대구 출신 선주 최성훈씨가 분주히 오가며 자리 배정을 한다. 사실 갈치 배낚시는 자리 다툼이 심하다. 맨 앞자리가 조황이 좋지만, 출렁거림도 심해 초보자들은 피해야 한다. 베테랑 이 앞자리에 타야 전체 배의 조과를 좌우한다고 한다. 문제는 베테랑이 많다는 것, 때문에 어절 수 없이 추첨을 한다. 나와 친구는 뒷자리를 선호한다. 조과보다는 좀 덜 잡더라도 편안한 낚시, 줄이 덜 엉키는 낚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았는지 9번을 뽑아 뒷자리에 배정된다.

배는 성산항을 벗어나 우도와 성산 일출봉 사이를 지나 동남쪽으로 나아간다. 짧은 겨울 해가 한라산으로 지고 있다. 배낚시를 하면 일출과 일몰 장면을 자주 본다. 찬란하고도 절대적 광경이지만 자주 보니 감흥이 덜 하다. 이것이 낚시의 단점이기도 하다. 풍광에 무덤덤해지는 것. 오로지 낚시만 생각하는 것.

   
▲ 선상에서 보는 제주도 일몰, 멀리 한라산, 일출봉, 우도가 보인다

 

갈치 배낚시는 어부 채낚기 낚시다. 어부와 똑 같이 한다. 다만 어부는 숙련되어 있으므로 10개들이 이상의 바늘에 채비 두 벌을 운용하여, 즉 20개 이상의 바늘을 운용하여 미끼가 달린 바늘이 늘 바다에 머물게 해서 집어된 갈치를 흩어지지 않게 하여 효율을 높인다. 낚시군들은 베테랑이라 해도 그 정도로는 숙달되어 있지 않아 보통 10개 바늘 채비를 운용한다. 40분을 나아가자 배는 물풍을 바다에 내린다. 물풍은 낙하산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 바다에 가라 앉혀 놓아 배가 조류에 적당한 속도로 떠밀리도록 설계되어 있다. 물풍이 없으면 집어된 갈치가 배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즉 갈치낚시는 갈치의 습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집어등을 켜고, 물풍을 내려 다수확을 하는 것이 원리다. 갈치가 집어등 불빛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플랑크톤이 집어등 불빛을 좋아해 몰려들고, 그것을 먹기 위해 멸치와 같은 소형 어류가 모여들고, 또 그것을 먹기 위해 갈치나 방어, 삼치 같은 대형 어종이 몰려드는 것이다. 오징어도 마찬가지 원리다. 먹이 사슬을 이용해서 잡는 낚시가 바로 갈치 낚시인 것이다.

집어등 불빛이 들어오면서 냉동된 꽁치 몇 마리를 가져다가 예쁘게 포를 뜨고, 몇 어섯하게 썰어 미끼 준비를 한다. 갈치낚시에 숙련된 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미끼를 예쁘게 썰어야 갈치가 잘 문다고 한다. 너덜너덜하면 물지 않는다나. 경험적으로 보면 그 말이 맞다. 갈치는 깔끔한 미끼에 더 잘 반응하는 것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 꽁치 미끼는 예쁘게 썰어야!

막 해가 져서 어둑해진 바다로 봉돌을 던진다. 봉돌 무게는 1kg. 우리나라의 모든 낚시 장르 중 가장 무거운 봉돌을 사용한다. 바늘도 10개. 바늘 간격이 2m쯤이니 채비 길이만도 20여 m에 이른다. 때문에 초보자가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채비 관리다. 한번 엉키면 족히 30분은 끙끙거리며 채비를 풀거나 다시 달아야 한다. 겨울바다에서 시린 손으로 채비를 풀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법. 남들이 연신 갈치를 무더기로 올릴 때 채비를 풀고 있노라면 시쳇말로 ‘뚜껑’이 열린다. 때문에 바늘과 채비를 가지런히 잘 정리하고 잘 던져서 엉킴이 없도록 해야 한다. 채비관리와 미끼 썰기, 그리고 수심 맞추기가 갈치낚시의 관건이다.

   
▲밤새도록 배 주위를 나는 갈매기들. 꾼들이 버리는 짜투리 꽁치를 노린다

 

채비를 내리니 선장이 40미터에 수심을 맞추라고 방송을 한다. 전동릴 수심계를 보면서 40미터쯤을 내린다. 1분여가 지났을까. 초릿대에 까딱까딱하는 반응이 온다. 이 때 올리면 한 마리다. 수동으로 릴을 한 바퀴 감고 기다린다. 또 초릿대에 반응이 온다. 그러면 한 바퀴.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 릴을 감는다. 그러면 보통 3, 4마리의 은빛 갈치가 달려 있다. 씨알이 좀 잔게 흠이다. 부지런히 낚시를 한다. 미끼 갈고, 내리고, 어신이 오면 릴을 한 바퀴씩 감고, 전체 올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밤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갈치 낚시다. 그러니 이것은 낚시가 아니라 노동이다. 손맛도 없다. 오로지 많이 잡겠다는 일념, 그 집념으로 하는 낚시다. 물론 하기 싫으면 또는 힘들면 선실에 들어가 자도 된다. 하지만 배 멀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선실로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모두가 필사적으로 잠시도 쉬지 않고 낚시를 한다. 그게 갈치 낚시꾼들의 생리다. 욕심덩어리들. 낚시가 정신의 휴식이고 힐링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 생생 삶의 현장!
 
 

여기서는 모두 생생한 삶의 치열한 현장이다. 생계를 위해 낚시하는 어부와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어부와 낚시꾼이 다른 것이 있다면 잡은 갈치의 보관 방법이다. 당일 채낚기 어부는 보다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 잡은 갈치를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입항 후 크기 별로 선별하게 어판장으로 보낸다면, 낚시꾼들은 긴 쿨러에 미리 얼음을 넣어 두었다가 차곡차곡 갈치를 쌓는다. 한 20여 마리가 넘으면 바닷물을 쿨러에 부어 갈치가 바닷물에 약간 잠기도록 한다. 그러면 바닷물에 얼음이 녹아 찰랑찰랑해진다. 그것을 빙장이라고 한다. 꾼들은 밤새도록 잡은 고기를 얼음을 보충해가면서 빙장 상태를 유지시킨다. 낚시가 끝나고 항구로 철수할 때 쿨러에서 물을 완전히 빼고 비닐을 넓게 펴서 위에 얼음을 추가한다. 이때 얼음과 갈치가 직접 닿게 해서는 안 된다. 갈치의 은빛 분이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애지중지 보관을 잘해야 다음날 서울에서도 신선한 갈치회를 즐길 수 있다.

밤이 새도록 갈치는 드문드문 올라왔다. 괜찮은 조과다. 그리고 마지막 선장이 한 번만 더 담그고 철수하지고 한다. 고개를 드니 멀리서 동이 터고 있었다. 동이 떠는지도 모르게 12시간 이상을 낚시에만 열중했던 것이다. 그래 마지막이다. 꽁치 미끼가 다 떨어져 잡은 갈치 중 작은 녀석을 골라 급히 포를 떠 미끼를 갈고 채비를 입수한다(갈치는 동족끼리도 곧잘 잡아먹는다. 갈치 낚시 도중 채비를 천천히 올리면 바늘에 달린 갈치를 다른 갈치가 공격해 꼬리나 몸통이 잘린 갈치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갈치 이빨은 정말 날카로워 손가락이라도 스치면 바로 피가 난다. 갈치는 칼보다도 더 예리한 이빨로 동족을 삭둑 베어 먹기도 하는 것이다).

   
▲1줄에 6마리. 한 마리는 동족이 뎅강 잘라먹어 윗부분만 올라왔다. 삼치의 소행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큰 입질이 초릿대를 통해 전해진다. 전동릴을 전동에서 수동으로 전환하여 불규칙적으로 천천히 감아올린다. 한 5미터쯤 올렸을까. 또 큰 입질이 온다. 같은 방법으로 또 올렸더니 또 입질이 온다. 한 녀석이 계속 힘을 쓰는 것인가, 아니면 여러 마리가 달렸는가. 조마조마하다. 하지만 이 때가 낚시의 화룡점정이다. 무엇이 올라올 것인가, 어떤 크기의 녀석이 올라올 것인가. 올라오다가 혹 떨어져 나가진 않을까. 두근두근. 다 올렸더니, 대박이다. 찬란하게 옆 지느러미에서 은빛 광채를 반짝이면서 올라 온 것은 5지 짜리 갈치. 그것도 무려 비슷한 크기로 네 마리가 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선장이 보더니 20만원치 올라왔네, 한다.

   
▲밤샘 12시간 노동을 한 후  철수하려는 찰나에 5지짜리 4마리를 횡재한 필자.

돈이 문제가 아니다. 기분이다. 마지막 담금에서 대어 네 마리를 한꺼번에 올리다니. 횡재다, 횡재. 2014년 벽두부터 연속 대박 행진이다. 만세다. 만세.

해가 뜨고서야 배는 성산항으로 입항한다. 같이 출항해 더 멀리 나간 1호는 몰황이었다고 한다. 반면 2호는 활황이었다. 내가 우연히도 2호에 있었고, 또 우연히 마지막 대어를 잡은 것일 뿐이다. 낚시는 그렇게 우연에 기댈 때가 많다. 30년 이상을 낚싯배를 몬 선장도 정확히 예측하기 힘든 것이 바로 낚시다. 하기야 그 넓고 깊은 바다 속 일을 누가 알겠는가?
항구로 들어오면 바빠진다. 11시 15분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대개 아침을 먹고 사우나를 하고 공항에 가면 시간이 맞지만 이날은 1호가 늦게 입항하는 바람에 사우나에 갈 시간이 없다. 비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바로 공항으로 직행. 공항 화장실에서 대충 세면을 한다. 그러니 몰골이 말이 아니겠지. 항공사 직원들도 척 보면 아는지 낚시꾼들은 항상 맨 뒷자리로 배정해준다. 골프객들은 앞자리로 보내면서 말이다. 그래도 좋다. 골프보다 낚시가 백 번은 좋다. 비록 수화물비를 더 내기는 했지만 25kg의 싱싱한 전리품이 있으니까.

 

   
▲ 필자의 조과 총 25kg, 친구 백성목군은 30kg.

역시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과 월요일 회로, 구이로, 조림으로, 국으로 갈치를 포식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바다로 나를 떠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