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주의로 가는 민주주의…일자리·영세 자영업 몰락 불러
   
▲ 복거일 소설가
가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길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살기 시작한 뒤로, 가장 큰 사회적 문제는 늘 가난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려는 노력은 모든 사회들의 구조와 작동 원리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미래에도 가난에 대처하는 방안은 사회 철학과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남을 것입니다.

가난에 대한 대처와 같은 사회적 선택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뜻을 모야 이루어집니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지식은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런 지식이 사회에 퍼지는 데엔 긴 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사회적 선택은 새로운 지식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민중주의적 색채가 짙게 마련입니다.

민주주의는 이런 경향을 한층 깊게 만들었습니다. 민주적 선거들을 통해서 민중주의적 정책들이 점점 많아지는 경향은 모든 사회들에서 나타납니다. 사회가 원숙해지면, 작은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 집단들이 번창하게 되어, 사회적 선택의 수준은 점점 낮아집니다.

이번 총선거에서도 민중주의적 공약들은 두드러졌습니다. 민중주의적 경향이 비교적 덜했던 새누리당이 그저 표를 얻기 위해서 집권당에 걸맞지 않은 민중주의적 공약들을 내세운 것은 특히 걱정스럽습니다. 가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공약들에도 어쩔 수 없이 민중주의의 영향은 컸고, 결국 그것들은 가난에 대처한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런 공약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해로운 공약은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겠다는 공약일 것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이 6천원 가량인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 임기 안에 각기 9천원과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최저임금이 4년 안에 50% 넘게 오르면, 우리 경제에 전반적 충격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조만간 터질 시한폭탄인 셈입니다.

최저임금은 기업이 종업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의 최저 수준을 규정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이려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노동자들이 그 이하로는 자신들의 노동을 팔지 못하도록 막는 가격 바닥(price floor)과 등가적이기도 합니다.

   
▲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놓쳤다. 사진은 지난 4월 7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1차 전원회의./사진=연합뉴스


불행하게도, 선의에서 나온 최저임금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기보다는 한계적 일자리들을 아예 없애는 효과를 지녔습니다. 별다른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기꺼이 받을 임금을 주는 한계적 일자리들은 적지 않고 나름으로 사회에 공헌하는데, 최저임금이 시행되면, 그런 일자리들은 사라지거나 기계가 대신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당장 어려움을 겪고, 반면에, 일자리를 잃지 않은 사람들은 소득이 높아집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소득을 높이는 셈입니다.

무엇보다도, 최저임금은 철학적으로 문제적입니다. 일찍이 스티글러(George Stigler)가 지적한 대로, 최저임금은 명목적으로는 노동자들을 보호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자유를 아주 엄격하게 제약합니다.

고용주들이 법정 최소액보다 적게 지불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을 법정 최소액보다 적은 금액에 팔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등가적이다. 고용주들이 법정 임금보다 적게 지불하지 못한다는 법적 제약은 노동자들은 그 임금에 그들을 고용할 의사가 있는 고용주들을 찾지 못하면 그렇게 보호된 분야에서 일을 아예 하지 못한다는 법적 제약과 등가적이다. (Forbidding employers to pay less than a legal minimum is equivalent to forbidding workers to sell their labor for less than the minimum wage. The legal restriction that employers cannot pay less than a legislated wage is equivalent to the legal restriction that workers cannot work at all in the protected sector unless they can find employers willing to hire them at that wage.)

이처럼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노동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이 궁극적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놓쳤을 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존재들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을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경멸하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이 안은 이론적 문제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한 사회에 하나의 적절한 임금 기준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노동 시장은 하나의 동질적 시장이 아니라 사정이 서로 다른 하위 시장들로 잘게 나뉘어집니다. 따라서 단일 최저임금은 너무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주 수준의 최저임금은 고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연방 수준의 그것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뚜렷이 미칩니다. 지금 진행 중인 푸에르토리코의 극심한 불황과 파산에 연방 수준의 최저임금이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은 이 점을 잘 드러냅니다.

원래 현대적 최저임금은 열악한 작업장(sweatshop)들을 막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19세기 말엽부터 도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여성과 청년의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근년에 사람들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최저임금은 노인들의 취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은 생산성이 낮고 일하는 것 자체에 큰 가치를 두므로, 임금이 아주 낮은 일자리들도 반깁니다. 최저임금은 이런 일자리들을 아예 없애거나 기계가 대치하도록 만듭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아파트에 사는 인구가 많은 우리 나라에선 아파트 경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아파트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은 순수한 재앙입니다.

주류 경제학 이론에 어긋나고 일상적 경험과도 대체로 맞지 않는 최저임금은 1993년 미국에서 나온 자료 덕분에 나름의 이론적 근거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뉴저지의 식당들이 최저임금의 상승에 반응해서 고용을 늘렸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것입니다. 그 뒤로 이 자료의 타당성을 두고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최저임금에 찬성하는 경제학자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대조실험이 어려운 사회과학에서 논쟁이 깔끔한 결론으로 낳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최저임금에 찬성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이 팽팽하게 맞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릅니다.

   
▲ 최저임금을 4년 동안에 50% 이상 올리는 것은 얘기가 전혀 다르다. 이미 많은 영세 서비스 기업들은 한계 상황으로 몰렸다. 일손들을 내보내고 자신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암묵적 임금(implicit wage)을 받지만, 당장 폐업할 수 없어서 버티는 경영자들이 많다./사진=미디어펜


원래 주류 경제학자들은 거의 다 최저임금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이론적으로 분석했고 도표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떠받쳤습니다. 그들은 최저임금이 높아질수록 고용과 경제 성장은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단기적으로 영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최저임금이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줄인다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반면에, 최저임금에 찬성하는 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이 고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때로는 고용을 늘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뚜렷한 이론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떠받치지 못합니다. 경제학이 늘 자랑하는 수학적 모형을 내놓지 못해서 도표를 통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실사해보니, 최저임금의 영향이 경제학의 상식과 다르게 나온다고 주장할 따름입니다. 최저임금에 관한 논쟁이 늘 자료의 신빙성에 머무는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엔 최저임금이 완만하게 높아진다는 전제 조건이 따릅니다. 최저임금이 상당히 빠르게 높아지면, 고용과 경제 성장이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그들은 적어도 침묵으로 인정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미심쩍은 부분입니다. 시장에서 작동하는 경제적 힘들은 하나 같이 모든 영역에서 일관된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경제학 이론들도 모두 보편적 이론입니다. 균형점 가까이에서만 작동하는 힘들도 없고 균형점 가까이에서만 이롭고 거기서 벗어날수록 해로워지는 힘은 더욱 없고 그런 이론도 당연히 없습니다.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들 가운데 최저임금의 영향만을 가려내는 것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는 작거나 불분명한데 그것의 부정적 영향은 분명하고 지속적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양쪽 다 최저임금이 명목적으로 완만하게 상승한다는 것을 상정합니다. 그 동안 미국에서 최저임금이 고용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은 최저임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작거나 비슷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저임금을 4년 동안에 50% 이상 올리는 것은 얘기가 전혀 다릅니다. 이미 많은 영세 서비스 기업들은 한계 상황으로 몰렸습니다. 일손들을 내보내고 자신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암묵적 임금(implicit wage)을 받지만, 당장 폐업할 수 없어서 버티는 경영자들이 많습니다.

아파트 경비는 점점 기계가 대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파른 최저임금의 상승은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전근대적 임금 구조 때문에 상당수 중소 기업들에도 최저임금이 적용되리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이래저래 가장 큰 피해를 볼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과 노후 대책도 없는 노인들입니다.

최저임금이 거칠고 폐해가 크므로, 경제학자들은 대안들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런 대안들은 혜택을 보다 많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나누어주고 실업을 초래하지 않으며 비용을 저임금 노동자들의 고용주들에게만 지우지 않고 널리 분담시킵니다. 자연히, 가난의 문제에 최저임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 지난 20대 총선 공약들 가운데 아마도 가장 해로운 공약은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겠다는 공약일 것이다. 20대 국회 임기 내에 새누리당은 9000원, 더민주는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다짐했다./사진=연합뉴스


최저임금의 대안들 가운데 하나는 단체 협약(collective bargaining)을 통한 조정입니다. 노동조합의 역사가 오래고 역할이 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및 덴마크)에선 최저임금이 없고 대신 단체 협약을 통해 각 분야들의 표준 임금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전통과 풍토가 다른 우리 사회에서 이 방안은 채택되기 어렵습니다.

이론적 대안들 가운데 가장 멋진 것은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입니다. 이것은 모든 시민들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마이너스 소득세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음소득세라 불립니다.) 이 제도는 세금과 복지를 하나의 과표 속에 통합해서 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합니다. 덕분에 정부 보조를 받는 사람들은 임금이 아주 낮은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게 되어, 보조금이 부르는 근로의욕저상(disincentive)도 없습니다.

적절한 최저임금 수준에 관한 논의와 함께 대안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 경제에 덜 부담이 되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 연구 사업을 기획할 때는 최저임금과 음소득세를 함께 다루려 했습니다. 그러나 두 제도의 정치적 영향과 시급성이 다르므로, 한데 묶어서 다루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되도록 빠른 시일에 음소득세에 대한 자료를 마련하겠습니다. /복거일 소설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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