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최근 회계업계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27일 검찰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에게 한진해운 자율협약 신청에 관한 정보를 흘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최 회장이 안 회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난 직후 부하 직원에게 한진해운 보유주식을 전량 매도하라고 지시한 혐의를 포착하고 최 회장과 안 회장을 직접 불러 당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최 회장과 두 딸은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이 발표되기 전에 관련 정보를 얻어 지난달 6∼20일 보유 중이던 한진해운 주식을 수차례에 걸쳐 장내에서 모두 매각해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안 회장은 주변에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최 회장이 자신과 통화한 직후 주식을 처분한 것일 뿐이라며 미공개 정보를 유출한 적이 없다고 강한 어조로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 회장의 주식처분을 유도할 만한 미공개 정보를 유출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도 한진해운 실사를 맡은 회계법인 대표로서 민감한 시기에 최 회장과 통화해 경영 상태와 관련한 모종의 조언을 한 것이라면 매우 부적절한 행위였다는 비판까지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공인회계사는 "안 회장과 최 회장이 한가롭게 날씨 얘기나 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핵심 이해 관계자인 최 회장과 사적인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금융당국도 이번 논란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일 정보 유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공인회계사법상 업무상 취득한 비밀 엄수 조항을 어긴 것으로 보고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태세다.

회계업계의 권위와 도덕성은 이미 큰 상처를 받은 상태다.

작년에는 20∼30대 공인회계사 31명이 집단 가담한 전례 없는 대규모 미공개 정보 이용 사건이 터져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연루자 중에는 삼일회계법인 소속이 20여 명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실무 회계사부터 조직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국내 회계업계를 대표하는 삼일회계법인 구성원들의 도덕성 문제가 비판 여론의 한가운데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해 불거진 일부 회계사의 미공개 정보 이용 추문은 그들만의 일탈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당국이 1만여 명에 달하는 법인 소속 공인회계사의 주식 거래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20여 명의 공인회계사가 규정을 어기고 자기가 직접 외부감사를 하거나 본인 소속 법인이 외부감사를 진행한 회사의 주식을 사고판 사실이 적발됐다.

민감한 기업의 경영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공인회계사들이 공공연하게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고 있는 민낯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개인의 일탈 문제를 떠나 회계법인들이 시장 감시라는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수조 원대 분식 회계 의혹을 일으킨 대우조선해양 사건이 회계법인의 부실한 기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대우조선해양 감사를 담당해 온 안진회계법인은 매년 '적정' 감사의견을 내놓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3월 '지난해 추정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약 2조원을 2013년, 2014년 재무제표에 나눠 반영했어야 한다'는 사후약방문식 결론을 내리고 회사 측에 뒤늦게 정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대규모 분식 회계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회계법인은 으레 회사 측이 자료 제공을 숨겨 제대로 된 감사를 할 수 없었다면서 책임을 고객에게 떠넘기곤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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