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경제적 차등화로 모두가 발전하도록 동기부여하는 장치

   
▲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KDI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좌승희회장의 차별화경제 강의 2부-세계 경제위기의 진실, 자본주의의 문제인가? (2)

 1.이념에서 자유로운 시장경제는 없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 하에서는 이념에서 자유로운 시장경제는 없다. 민주주의 정당들은 이념을 중심으로 조직화되며, 다수당의 이념성향이 바로 입법과정을 통해 시장의 경기규칙, 다른 말로 시장의 경제제도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구체적 경제정책 형성 과정에서 기술적인 측면에서 경제이론의 역할이 없지 않으나 경제운영패러다임의 큰 틀은 집권 정당의 이념성향에 의해 좌우된다.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이 제도를 사상한, 즉 제도가 없는 경제학 (institution-free economics)이기 때문에 시장제도정책은 절대적으로 이념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거시 재정, 금융정책의 경우는 정책파급 효과를 예상하는데 경제이론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경제이론의 영향이 클 수 있다. 이 경우마저도 정책의 큰 방향은 이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이와 같이 이념, 나아가 정치가 시장제도를 결정하고, 나아가 경제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주류경제학은 경제정책 결정에 있어 기술적 조언자 역할을 못 벗어나고 있다.  필자는 경제학이 정치철학의 하위학문으로 전락하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좌승희, <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 서울대 출판문화원, 참조)

이념은 인생관, 세계관, 혹은 우주관이다. 세상을 보는 관점을 의미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이념을 가지고 산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들의 이념이 모여 집단적인 이념이 된다. 사회의 이념은 그냥 그 사회의 집단적 정서일수도 있고 더 고상하게는 문화일 수도 있다. 그냥 그 사회의 분위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집단화되는 이념은 민주정치 과정을 통해 실제 그 사회의 공식적 법, 규칙 혹은 제약으로 전환되게 된다. 공식적 법규로 전환되지 않더라도 이념은 계속해서 그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제약한다. 실생활 혹은 시장의 경기 규칙은 그래서 그 사회의 다수의 집단적 이념의 표출인 셈이다.
 

경제주체들의 경제행태는 시장의 경기규칙인 경제제도에 의해 규율된다. 따라서 개인은 물론 국민경제의 경제 성과는 경제제도의 내용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예컨대 경제 성과를 잘 낼 수 있도록 조직화된 제도, 즉 경기규칙은 성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경제성과를 억제하게 된다. 이념이 정치과정을 통해 일국의 법제도를 만들어낸다. 이런 법제도는 국민경제의 경기규칙으로 작용하여,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제발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념은 일국 경제의 발전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경제변수 역할을 하게 된다. 나아가 어떤 이념과 경제제도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가하는 보다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경제발전이론의 핵심과제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념과 제도 변수가 사상된 기존의 주류경제학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념과 제도의 경제발전 친화성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경제발전 이론을 새로이 구축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이념과 경제제도 나아가 경제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제발전의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경제발전원리와 이에 기초한 이념과 제도의 발전친화성여부를 규명할 수 있는 분석틀을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 시장은 경제적 차별화, 차등화, 경제력 집중을 통해 모두가 발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도 결국은 경제적 차별화가 없이는 실현될 수 없다.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휼륭한 기업에 돈(구매력)으로 매일 매일 투표한다. 경제적 발전은 경제적 차별과 불평등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흥하는 이웃을 폄하하거나 박멸하려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발전역행적이며,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없는 체제이다. 세계전자시장의 선점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삼성전자가 최첨단 UHD제품분야에서도 북미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다. 한국은 삼성전자 같은 흥하는 이웃, 발전하는 기업을 많이 둬야 역동적인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

2. 신 경제발전원리: 시장은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동기부여장치이다.
 

경제의 발전은 어디서 오는가? 동태적 경제발전 과정은 앞선 자의 “성공노하우”를 주로 무임승차하여 따라 배우고 혁신하며 선발자를 추격하고 추월하는 과정이다. 문화 진화적으로 표현하면 발전의 성공유전자인“성공노하우”가 사회전체에 복제, 전파되어, 성공하는 주체들의 수가 증폭되는 과정이 발전의 과정이다. 이를 일컬어 경제발전의 트리클다운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은 바로 이러한 발전의 과정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주류 신고전파 배분경제학(allocation economics)은 시장을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장으로 본다. 반면  발전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적 입장에서는 시장을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경제발전의 동기부여 장치로 본다.

주류 배분경제학은 주어진 자원으로 주어진 종류의 재화를 얼마나, 어떤 구성으로 생산할 것이냐 하는 문제인 효율적 자원배분의 문제를 다룬다. 반면, 발전경제학은 주어진 자원과 재화를 넘어, 없는 자원과 재화를 어떻게 새롭게 창출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전자는 10개의 마차를 만들던 사회가 생산성을 높여 100개의 마차를 만드는 문제를 고민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후자는 마차를 만들던 사회가 기차,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과정을 고민한다고 할 수 있다.

경제의 차원이 비선형적으로 고차원으로 전환되어 경제의 복잡성이 증가되는 과정이 발전과정이다. 60여 년 전 농업이 80%이상을 차지하던 한국경제가 이제 농업비중이 5%미만으로 낮아져 그 차원이 마차경제에서 비행기경제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자원배분의 과정을 넘어 한국경제의 복잡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 주류 경제학은 이러한 복잡경제의 창발 과정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 (이에 대한 보다 상세한 논의는 졸저, <발전경제학의 새 패러다임>( 2012)과 <경제발전의 철학적 기초>(2012) 참조.)

발전경제학적 시각에서 보면 경제발전은 앞선 자의 성공노하우를 복제함으로써 성공문화 유전자인 성공노하우가 사회전체로 퍼져나가는 복잡경제의 진화과정이다. 여기서 시장은 성공노하우가 사회전체로 퍼져나가는 촉매역할을 하며 그 수단은 경제주체들을 시장 성과에 따라 차별적으로 대접하는 경제적 차별화이다. 시장은 항상 스스로 돕는 자를 차별적으로 도움으로써 이를 통해 모두를 앞 선자의 “성공노하우”를 따라 배워 스스로 돕는 자로 태어나도록 동기 부여하는 장치이다.

그래서 시장은 경제적 차이, 차등과 차별을 만들어내고, 경제력집중을 조장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경제발전의 동기를 부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시장은 경제적 차별화를 통해 경제발전의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이다.
 

완정경쟁모형으로 대표되는 배분경제학은 차이, 차등, 차별을 이단으로 보지만 이것 없이 경제발전의 동기부여는 불가능하다. 경제주체로서 우리 모두는 최고의 재화와 서비스, 보상을 제공하는 경제주체만을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집합적으로 스스로 돕는 경제주체만을 돕는 하느님과 다르지 않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바로 경제적 성과와 보상을 일치시킴으로써 동기부여를 통해 모두 경제적 향상과 발전의 길로 나서도록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발전을 가져오는 시장의 동태적 차별화와 동기부여기능인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 제시하는 시장의 '아름다운' 자원배분 기능도 이러한 시장의 동태적 차별화 기능 없이는 무용지물이 된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이나 하이에크의 '자생적 시장질서'라는 자원배분 기능도 이러한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거치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다. 그래서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만을 강조하는 주류 '배분경제학'은 경제발전을 설명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평등주의 재분배 경제정책이 배분의 효율을 높여 복지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해온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의 재분배 사회정책은 주류 배분경제학의 지원 하에 보편화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 현대차도 세계 자동차시장의 글로벌 강자로 부상하기위해 품질과 서비스,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정몽구회장의 우직스런 품질경영과 마케팅경영이 성공을 거두면서 연간 800만여대를 판매하는 글로벌 톱5안에 들어서게 됐다. 경제발전은 현대차처럼 끊임없이 발전하고 흥하려는 기업과 개인에 의해 발전해왔다. 현대차가 지난해말에 선보인 최첨단 제네시스 발표회에서 정몽구회장과 정홍원 국무총리 등 주요인사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을 경제적 차별화 장치로 보는 '발전경제학'적 입장에서 보면 평등주의 재분배 경제정책은 그 사회정책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발전역행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류 신고전파경제학은 제도가 사상된 진공경제학이기 때문에 재분배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평등주의 정책체제가 새로운 제도로 정착될 때 경제주체들의 인센티브구조의 변화에 따른 행태 변화를 읽기 어렵다. 주류 경제학은 재분배 경제정책 하에서의 보상체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경제주체들이 과거와 동일한 행위 패턴을 보일 것이라 가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신제도학적 관점에서 보면 서로 다른 체제하에서는 같은 인간이라도 서로 다른 경제주체로 파악한다. 서로 다른 제도 하에서는 인센티브구조의 변화에 따라 동기부여 정도가 다르고 각 주체들의 경제발전의 의지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자들이 상대적으로 폄하되는데도 이들은 계속 열심히 일하고 그 수도 늘어날 것이며,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 지원하면서 열심히 하라하면 열심히 해서 부자가 될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 세상이치에 맞는다 할 수 있을 것인가? 공부 열심히 하나 안하나 꼭 같은 대접을 해도 모두가 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제도가 사람을 바꾸고 경제를 바꾸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시장의 현실을 살펴보면, 우선 소비자들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기업을 골라 이들에 열심히 구매력(돈)으로 투표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와 갤럭시 노트, TV, LG전자의 냉장고,  현대차의 쏘나타, 그랜저, 제네시스 등은 제품과 서비스가 좋기 때문에 국내외 고객들이 구매한 것이다. 돈으로 이둘 회사제품에 투표한 것이다. 그래서 시장은 경제적 차등을 만들어낸다. 중소기업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제품을 더 사랑하는 것이 시장의 현실이다. 이렇게 해서 훌륭한 기업에의 경제력집중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다음으로 은행은 돈을 잘 버는 기업과 개인에게만 더 싼 금리로 더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장치이다. 정치인이나 학자, NGO들은 돈을 잘 못 버는 어려운 기업과 개인에게 더 많은 대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경제현실은 은행이 이 일을 잘해야 예금자나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은행도 잘 하는 기업과 개인들을 더 선호함으로써 경제력 집중에 기여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증시의 투자자들은 항상 잘하는 기업의 주식만을 선호한다. 그래서 잘하는 기업에 더 많은 자금을 공급하여 경제력집중을 조장하는 셈이다. 또한 훌륭한 인재들은 좋은 기업만을 선호한다. 기업도 또한 차별적으로 좋은 인재와 제휴기업을 선택한다. 강한기업에 선택된 인재와 제휴기업은 미래를 보장받는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펙을 쌓느라 애를 먹기도 한다. 이래서 시장에서 우리 모두는 이성적으로 원하든 않든 결국은 훌륭한 경제주체를 선택하여 자원을 집중시킴으로써 경제력 집중과 더 나아가 경제적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경제발전은 바로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 즉 경제적 차등과 차별을 통해 모두를 동기부여 하여, 더 열심히 부의 창출에 나서도록 유인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시장이 바로 이런 기능을 하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아름답지는 않지만 시장의 변화를 지속시키는 필요조건이다. 그러니 경제적 불평등이 없이는 경제역동성도 부의 창출노력도 이끌어 낼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셈이다.
 

그래서 경제적 성과의 차이와 그에 따른 차등대접, 즉 시장의 경제적 차별화기능을 인정하고 적극 수용하는 사회는 발전하고 이런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억제하거나 부정하는 사회는 경제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경제적 차별화는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인 반면 이를 부정하는 경제평등주의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시장의 기능을 잘 살려, 열심히 노력하는 국민들이 더 잘할 수 있도록 경제적 여건을 마련하는 국가는 더 많은 흥하는 국민들을 양산함으로써 경제발전에 성공했다. 역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흥하는 국민들을 폄하하여 국민들의 일할 동기를 차단한 나라는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였다.

오늘날의 서구 선진국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바로 수정자본주의,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를 내걸고 지난 50여 년 동안 흥하는 이웃을 폄하하는 정책들을 남발한 결과이다. 흥하는 이웃을 청산하고자 했던 사회주의국가의 멸망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이란 바로 경제적으로 우수한 주체들이 양산될 수 있도록 시장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도우는 국민들을 도우는, 소위 경제적 차별화전략을 수행하는데 있는 것이다.
 

새로운 발전원리에 의하면, 시장은 경제적 차이와 차등을 만들어 냄으로써 경제적 차별화를 통해 경제발전의 역동성을 창출해낸다. 경제발전은 궁극적으로 경제적 불평등과 경제력의 집중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모두가 동반성장하는 과정이지만 결코 같아질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자본주의 사회를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모순된 사회라고 주장한 칼 마르크스는 경제적 차등을 없애 동기부여가 없어져야 모두 잘사는 행복한 사회가 된다고 한 셈이다. 이는 이 세상의 이치를 잘못 본 셈이다.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전 한국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