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계로 열린 탈유교가 한강의 기적과 대한민국 번영의 토대
우리나라는 해양 교통로를 활용하여 활발하게 세계 여러나라와 교역하면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 해양문명의 필수조건인 개방과 통상 등 자유시장경제, 외국과의 교류와 민주주의가 한반도에 꽃피운 것이다. 백년 전 이 땅에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젊은 시절부터 한반도의 개방과 통상을 외치던 선각자 이승만이 있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한반도를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던 우남 이승만. 자유경제원은 지난 3일 ‘이승만은 산타였다’ 연속세미나를 열고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의 대전환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날 패널로 나선 미디어펜 조우석 주필은 "우리나라의 뒤틀린 좌파가 갖고 있는 퇴행적이고 자폐적인 에토스는 국제사회의 논리와 따로 논다"며 "보편적 좌파의 국제주의와 개방성, 인권과는 무관하게 철지난 민족주의 정서에 갇혀있다"고 지적했다. 조 주필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식의 헛된 위로와 자기만족을 반복하는 정신구조"라며 "남북문제도 우리민족끼리 해결하자는 민족해방(NL)정서가 넓고 깊게 뿌리 내렸다"고 밝혔다. 통상과 개방을 거부하는 완고한 농경사회, 숨막히는 대륙문명이었다는 설명이다.

조 주필은 "이와 반대인 대한민국 우파의 뿌리는 실학-개화파에 있다"며 "외부세계로 열린 탈유교, 기독교 입국이 20세기 한국인, 대한민국 우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의 성공이란 반(半)대륙 농경문명권에서 해양상업문명권으로의 전환을 알린 것이며 이러한 창조적 개방주의가 폐쇄주의의 껍질을 벗은 20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지적이다. 조 주필은 이와 관련 "이런 대전환을 명백하게 인식했던 인물이 이승만"이라며 "우남은 전통 유교로는 더 이상 안되며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걸 가능하게 만든 세계관인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실을 깨우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고 언급했다. 아래 글은 조우석 주필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우석 주필
이승만의 또 다른 선물, 기독교 立國

외부세계로 열린 脫유교가 20세기 한국인을 만들었다

한국사회에서의 좌우 진영 구분의 잣대는 세계 차원의 보편적인 좌파-우파 구도와 사뭇 다르다는 건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뒤틀린 좌파’가 갖고 있는 퇴행적이고 자폐적인 에토스 때문인데, 그래서 국제사회의 논리와 따로 논다. 일테면 저들은 보편적 좌파의 국제주의와 개방성, 인권과 전혀 무관하게 움직인다. 철지난 민족주의 정서에 갇혀있으며, 때문에 북한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의제를 한사코 거부한다. 그런 행태는 ‘민족 나르시즘’의 폐쇄성으로 요약된다.

민족 나르시즘은 외부세계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숨긴 채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한국)‘세상에 부러움 없어라’(북한)라는 식의 헛된 위로와 자기만족을 반복하는 괴이쩍은 정신구조다. 최악의 경우 수령절대주의에 대한 승복으로도 표현된다. 남북문제도 ‘우리민족끼리’해결해야 한다고 믿으며 때론 음습한 친북-종북주의를 숨기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런 집단정서가 1980년대 말 이래로 한국사회의 대세이며, 이른바 NL(민족해방)정서로 넓고 깊게 뿌리 내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한사코 거부하는 국사학계 인적자원의 90% 이상이 그쪽이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논리야 갖다 붙이면 되는데, 내재적 발전론이 그 하나다. 그 허구의 논리에 붙들리게 되면 문명변화에 핵심인 외부세계로부터의 창조적 자극을 수용하지 못하는 청맹과니로 변질되며,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외세(外勢) 대 자주(自主)의 이분법으로만 바라본다. 자폐적인, 너무도 자폐적인 집단정서가 문제인데, 그것의 역사문화적 뿌리가 중세 조선왕조라는 것도 분명하다.

그 사회의 핵심 메카니즘이 통상과 개방을 거부하는 완고한 농경사회, 바다를 두려워하는 반(半)대륙문명 지향형이다. 변화와 혁신을 거부한 조선왕조가 끝내 비극적으로 몰락했음에도, 다수의 미술사학자와 국사학자들은 실체가 없던 조선후기 진경시대를 무한 찬양하고, 영-정조 시절의 문화르네상스를 부풀리는데 여념없다. 어이없다. 실제론 그게 얼마나 숨 막히는 사회였던가?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지성이 등장할 수 없는 구조, 정체(停滯)에 갇힌 사회풍토를 거부했던 게 조선후기 실학파다.

   
▲ 이승만이 시동을 건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의 문명사적 전환,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 문명권으로의 대전환은 박정희 시절 만개하여 오늘의 번영의 토대를 다지게 되었다./사진=연합뉴스


실학-개화파로 올라가는 대한민국 우파의 족보

그게 소수의 지식인운동 차원에 그쳤다는 게 아쉬운 노릇이지만, 훗날 구한말 문명개화파로 연결되며 그게 지금 한국사회 우파의 뿌리다. 그건 폐쇄주의의 껍질을 깨고 나오려는 창조적 움직임이라서 외부세계에 열려있는 게 특징이다. 그런 창조적 개방주의를 온전히 이어받은 체제가 20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런 대한민국의 성공이란 반(半)대륙 농경문명권에서 해양상업문명권으로의 전환을 알린다. 산타 이승만의 선물 시리즈가 이것에 대한 조명으로 마무리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럽다. 발제문 역시 이점을 충실하게 조명했는데, 다음의 선언적 마무리도 만족스럽다.

“그것은 이승만이 암울했던 한성감옥 시절 집필한 『독립정신』, 미국 유학 시절 박사학위 논문인 『미국의 영향 하의 중립』, 하와이 망명시절 자신이 발간하던 『태평양잡지』에서 구상했던 개방과 통상의 나라 대한민국의 출발이었다. 이승만이 시동을 건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의 문명사적  전환은 박정희 시절 그 꽃을 만개하여 오늘의 번영의 토대를 다지게 되었다. 우리는 이승만, 박정희에 의해 토대가 다져진 해양문명을 보다 확대 심화 발전시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확실히 대한민국 건국이란 게 정치체제와 이념의 차원을 떠나 ‘문명의 계절 변화’를 알렸던 위대한 분수령인데, 일부 아쉬움이 없지 않다. 산타 이승만의 마지막 선물답게 좀 더 시야를 넓혔어도 좋았을텐데, 일테면 이승만의 결정적인 국가개조 비전이었던 기독교 입국론을 언급하는 것이 의미있지 않았을까?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 문명권으로의 대전환이야말로 20세기 한국인의 정신세계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이며, 그게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의 전환과 연계해 대한민국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해양문명-기독교문명 대전환은 위대한 축복

이런 대전환을 명백하게 인식했던 인물이 이승만이었다. 이 대목에 대한 언급은 현실종교와 연관돼 종교 편향이니 뭐니 하는 논란의 차원을 떠나 엄연히 역사와 정신사 그리고 문명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성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더듬어보자. 고대 이래로 한국사는 외부세계에서 들어온 고급종교의 유입을 허용하면서 비로소 거대한 변화가 가능했고, 그게 각각 고대-중세를 창출해낸 문명사적 동력이었다.

즉 한국사에서 고대 왕권국가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던 동력이 삼국시대 불교 유입이었고, 새로운 중세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조선왕조가 성리학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20세기 근현대사 성공의 문을 열어젖힌 근본적인 힘을 제공한 것은 기독교가 맞다. 이 대변화의 주역이 이승만이다. 상식이지만 이승만의 핵심저술인 <독립정신>은 문명개화를 통한 부국강병의 꿈을 개방과 통상의 방식으로 구현하려 했지만, 기독교 입국(立國)의 꿈이 전제가 됐다.

한 사회의 생활방식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종교인데, 전통 유교는 더 이상 안 된다는 판단이 이 책을 관류한다. 그게 우남이 견지했던 유교망국론이자, 대부분 개화파 세력의 판단이기도 했다. 우남만 그랬던 게 아니라 그건 시대정신이었다. 우남과 달리 성균관 박사 출신이던 단재 신채호의 경우도 “일찌감치 육경(六經)을 불 싸질러야 했다”며 탈 전통, 탈 유교를 외쳤던 게 그 상징이다. 그 맥락에서 혁명아 우남은 기독교 입국론을 외쳤다. 그건 한성감옥에 수감돼 있었을 때 체험했던 개인 차원의 강렬한 기독교 신앙고백이자, 크게 보아 근대 서구문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그걸 가능하게 만든 세계관인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문명사적 결단이었다.

   
▲ 이승만, 박정희에 의해 열린 해양문명, 기독교 입국의 2000년대 초반 오늘의 현주소를 재점검해볼 이유는 너무도 많다.


그런 비전을 보다 구체적으로 선포했던 게 우남의 명저 중의 명저인 <한국교회핍박>  (1913년 저술)인데, 한일합방 초기인 100여 년 전에 그는 “기독교를 배척하는 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한국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대예언을 했다. 그건 성경에 자유 평등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걸로 “한국혁명의 기초이자 장래 이 세상 문명의 기초를 잡자”는, 실로 담대한 비전의 선포였다.(청미디어 펴냄 <한국교회핍박> 180~181쪽)

당시 기독교 인구가 전체의 1%가 채 안되던 시절 나온 놀라운 비전인데,  그건 이후 이승만의 발언과 활동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뒷받침됐다. 그런 구상을 3.1운동 직후 임정 국무경 자격으로 미 언론과 인터뷰하면서도 밝혔지만, 이후에도 일관되게 움직였었다. 그래서 1948년 대한민국 첫 제헌의회가 열리던 날 의원 198명이‘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부터 올렸다. 당시 임시의장 이승만은 개회 선포 직후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부터 요청했는데, 그게 의미심장하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ㆍ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이(오늘의 역사가)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돌발 제안이었다. 제헌의원 중엔 50명 가까운 개신교인이 있었지만, 불교신자나 유교신자가 압도적이던 상황에서 “국회 공식 본회의에서 웬 기독교식의 기도나?”라고 따져 묻는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지명 받았던 제헌의원 이윤영은 이렇게 기도를 했다. “오랜 시일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이 기쁜 역사적 날을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인 것으로 저희는 믿나이다.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 환희에 넘치는 민족적 기쁨을 하나님께 감사 올리나이다. 아멘.”

그날 제헌국회에서 올려진 감사의 기도

그 훨씬 이전 나이 스물일곱 살에 신앙을 가졌던 늦깍이 신자 우남 이승만은 초기부터 전도에 큰 열성이었고, 그게 개신교 초기 역사를 만들어냈음을 잊으면 안된다. 고위관리 양반층인 이상재-신흥우 등을 신자로 만든 것도 우남이었는데, 그건 개신교 선교(1884년)이래 첫 양반층 전도 사례로 꼽힌다. 이 양반층 신자들이 YMCA(기독교청년회)의 주역이 됐다. 6.25전쟁이 일어나던 그 해 말 군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군목(軍牧)제도를 도입했던 것도 이승만이었다. 

재삼 밝히지만, 한국기독교는 신앙공동체를 넘어 이 나라 이 민족 근현대사의 뼈대다. 조선조의 유교질서를 기독교 문명으로 깨는 위대한 실험에 성공했던 건국 대통령 이승만,“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부국 대통령 박정희의 등장도 기독교의 정신혁명 속에서 가능했다. 실제로 이승만이 집권했던 1950년대 10년 동안에 기독교 인구(개신교+가톨릭)는 두 배(85만 명에서 160만 명으로 증가)로 증가했다. 그 흐름이 내내 이어졌다. 

   
▲ 박정희가 통치했던 1960년대 10년 동안 기독교인구는 160만 명에서 304만 명으로 2배가 됐고, 1970년대 말 신자 6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거의 두 배에 도달했다.


박정희가 통치했던 1960년대 10년 동안 기독교인구는 다시 두 배(160만 명이 304만 명으로)가 됐고, 1970년대에도 거의 두 배에 도달했다. 70년대 말 당시 벌써 신자 600만 명에 육박했던 것인데, 교회의 팽창과 한국경제의 폭발적 성장세는 함께 이뤄졌다는 게 포인트다. 물론 교회 팽창은 20세기 다른 나라에 거의 유례없는 데, 이웃 일본과도 대조적이다. 일본의 경우 미국 맥아더 점령군 사령관이 “일본의 기독교화가 나의 신념”이라고 밝히며 전일본을 대상으로 선교를 펼쳤으나 끝내 실패했다.

성경을 연 1000만 권으로 늘려 배포하고, 미 전용기로 모셔온 선교사들을 대대적으로 투입했으나 신자는 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일본의 신자는 1.5% 선에서 딱 멈춰있다. 마무리하자. 발제자의 말대로 이승만이 시동을 건 대륙문명에서 해양문명으로의 문명사적 전환, 유교문명권에서 기독교 문명권으로의 대전환은 박정희 시절 만개하여 오늘의 번영의 토대를 다지게 되었다. 이승만, 박정희에 의해 열린 해양문명, 기독교 입국의 2000년대 초반 오늘의 현주소를 재점검해볼 이유는 너무도 많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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