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51조에 따라 재상정 협의 무시하고 "20대 국회에서 재의결" 엄포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가 27일 상시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면서 야당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른바 상시청문회법에 대해 헌법에서 보장된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것인데도 야 3당은 “이번 총선에서 협치 하라는 민의를 거스르고 있다”며 “20대 국회에서 재의결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엄포를 놓았다.

대통령의 거부권도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고, 특히 법제처가 심사 결과 3권분립에 위배되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 배경이 됐다. 이럴 경우 여야는 국회로 돌아온 법안에 대해 절차에 따라 20대 국회에서 재상정해 협의를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지금 야 3당은 헌법 51조에 명시된 ‘국회 임기가 끝났다면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법률안은 폐기된다’는 조항도 무시한 채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재의결로 법안을 밀어붙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은 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하필 19대 국회 임기 마지막 날인 29일을 사흘을 남기고 이뤄진 것은 ‘꼼수’”라면서 “일정상 국회법을 처리하지 못한 귀책사유가 19대 국회에 있지 않기 때문에 20대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정부는 27일 서울청사에서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안(거부권)을 의결했다./자료사진=미디어펜


하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19일 열린 19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상정해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의 처리 과정이야말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시청문회법은 지난 2014년 7월 구성된 국회의장 직속 국회개혁자문위원회에서 도출돼 ‘정의화법’으로 불린다. 여당이 오랫동안 반대해 처리되지 못했던 법안을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기습 처리한 것이다.

이렇게 처리된 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했다고 해서 ‘협치’를 깨뜨렸다고 주장하는 야당의 엄포가 정당해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이날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의결을 대통령께 건의하기로 의결했다”면서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 소지가 있고 권력분립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앞서 법제처가 이 법안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사한 결과를 근거로 한 것이다. 법제처가 밝힌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첫 번째 재의요구 사유는 “현안조사 청문회 신설은 행정부에 대한 통제수단을 벗어나 새로운 수단을 신설한 것”이다. 법제처는 “국회와 정부, 법원에 귀속된 권한을 상호 견제하는 것을 넘어서서 헌법에 근거없이 국회가 행정·문화·사법부 등에 대한 통제 권한을 강화한 것”으로 국회법 개정안을 해석했다.

실제로 국회법 개정 제안이유서에 ‘국회의 국정통제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고, 이에 대해 법제처는 권력분립에 위배돼 위헌성이 있다고 봤다. 

현행 국회법에 따라 그동안 국회는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국정조사, 입법청문회를 열 권한을 가져왔다. 국회법 개정안은 여기에 소관 현안에 대한 ‘조사청문회’를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최근 현안에 대해 여야가 의결하면 언제든지 청문회를 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이 조항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야당이 ‘현안’이라는 이유로 마구잡이 청문회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야당은 걸핏하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우겨온 사실이 있고, 이럴 경우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의 권력을 침해해 위헌이 맞다. 

이런데도 3개의 야당은 여소야대의 20대 국회에서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을 밀어붙인다면 또다시 위헌성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것은 뻔하고, 개원 초부터 정국은 경색 국면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야당은 이번에도 “청와대가 여당이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모른다. 협치의 키는 대통령과 정부가 쥐고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협치를 위헌성 있는 사안에까지 적용해 대통령의 정치소신을 꺾는데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협치 만능주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사무처가 밝혔듯이 19대 국회 임기 내 국회법 개정안이 공포되지 못하면 자동폐기 수순을 밟고, 20대 국회에 재상정해서 논의하는 원칙이 있다. 그런데도 야당이 이를 무시한다면 도를 넘는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임을 위한 행진곡’ 파문이 국가정체성을 흔드는 것이었다면 이번 상시청문회법 강행은 권력분립에 도전하는 것이다. 야당이 협치를 내세워 헌법을 흔드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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