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쓴 소셜테이터 판치는 한국연예계, 갈등만 유발

   
▲ 정구영 미디어펜 논설실장
일반적으로 영화와 방송 같은 영상매체는 사람의 눈과 똑같은 메커니즘을 가진 카메라를 통해 현실을 연속된 이미지로 잡아낸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을 마치 자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 같은 착각 일으킨다.

영상매체의 이 같은 ‘현실 유사성’은 현대 예술 장르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게 만드는 동인이 된다. 특히 영화감독이나 방송PD는 카메라로 잡은 영상을 나누고, 도치시키는 과정에서 편향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성해 낼 수 있다.

한마디로 영상매체는 ‘의도’ 여하에 따라 특정 메시지에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집단으로 동조를 이끌어내는데 더 할 수 없이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대표적 인물이 독일 제3제국의 선전상 괴벨스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의 전당대회를 기록한 영화 ‘의지의 승리’를 통해 괴벨스는 히틀러를 독일 민족의 구세주이자 영웅으로 만들어 냈다.

이 영화는 다소 심하게 말해 1%의 진실과 99%의 선전·선동으로 만들어졌지만 진실과 선전·선동의 교묘한 배합, 다시 말해 편향적인 편집으로 독일 국민에게서 100%의 감동을 훔쳐냈다.

세월을 건너 뛰어 21세기의 한국으로 장소를 옮겨보자. 서석구 변호사는 최근 영화 ‘변호인’에 대해 “사실과 허구를 혼합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림(釜林)사건 피고인들을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절대 선(善)으로 우상화하고, 정권·사법부·수사기관은 절대 악(惡)으로 구분한 정치적 영화”라고 말했다.

부림사건은 1981년 부산 지역 학생·교사·회사원 22명을 ‘이적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죄’로 구속한 것을 말하며, 서 변호사는 이듬해 대구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의 재판장으로 무죄 판결을 내린 주역이다.

서 변호사는 판결 당시 리영희 교수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을 정도로 좌편향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동조해 그런 판결을 내렸지만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재판장이었던 그의 고백도 영상매체 특유의 속성, 즉 영화 ‘변호인’이 제시하는 극단적인 이분법적 논리와 편향된 메시지의 위력 앞에서는 말발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영화 ‘변호인’은 사실관계도 맞지 않을뿐더러 신파극의 냄새가 짙다. 잘 나가던 세무 변호사가 단지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처벌받는 국밥집 아들을 변호한다는 진부한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것은 무엇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는 점, 그리고 배우 송강호의 연기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지 그것 뿐일까.

   
▲ 80년대초 반체제 국가전복을 꾀했던 부림사건을 소재로 한 '변호인'이 관객동원 1000만명을 넘었다. 송강호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을 방문해 방명록에 서명하는 등 좌파진영의 전위대역할을 자처하는 듯 했다. 개념연예인 행세를 한 것. 한국 연예인들이 광우병촛불시위, 희망버스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소셜테이너로 나서고 있다. 소셜테이너들은 편향된 시각으로 갈등만 부추기는 등 부정적인 행태로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영화 ‘변호인’이 흥행하면서 여당은 물론 민주당, 안철수 신당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적인 경쟁 국면에 들어간 상태에서 이 영화가 미칠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입장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중첩된 야권의 표밭을 놓고 민주당과 경쟁해야 하는 안철수 신당 역시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민주당은 다소 사정이 복잡한 편이다. 정당 지지율 10% 안팎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흥행은 분명 호재임에도 친노(親盧)만 환호작약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면 영화 ‘변호인’은 특정 정치세력, 그 중에서도 친노와 이해관계가 맞물려있다는 의혹을 떨쳐내기 어렵다.

최근 안철수 신당의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의 이계안 공동위원장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영화는 ‘아트(예술)’이지 ‘프로파간다(선전·선동)’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로마의 가톨릭 교황청이 지난 1599년 설립한 포교성(Congregatio de Propaganda Fide)에서 유래된 것이다. 라틴어에서 프로파간다는 ‘확장’을 의미하는데, 포교성에서는 이를 ‘신앙의 확장’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지금처럼 사실의 조작을 통해 대중의 생각을 조종한다는 개념은 바로 괴벨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서 변호사의 말처럼 영화 ‘변호인’이 사실과 허구를 혼합해 만들어진 정치적 영화라면 ‘한국판 프로파간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영화 ‘변호인’의 주역을 맡았던 배우 송강호는 김해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후 방명록에 ‘영광이였습니다’라는 짧지만 다분히 함축적인 메시지를 남겼다.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에서 그의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는 감동 그 이상의 행보가 됐고, 방명록에 남긴 메시지는 어려운 시대의 소신발언이 됐다. 한마디로 소신발언을 한 개념 연예인이 된 셈이다.

소신발언과 개념 연예인이라는 말은 진보진영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한국의 예술문화 풍토에서 곧잘 소셜테이너(Socialtainer)와 동의어로 쓰인다. 사회 이슈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직접 참여하는 연예인이라는 것이다.

사실 소셜테이너란 말은 광우병 파동이 한창이던 지난 2008년 5월 한국 언론이 폴리테이너를 빗대 만들어 낸 신조어일 뿐이다. 폴리테이너는 미국의 정치학자가 정치인(Politician)과 연예인(Entertainer)을 합성해 만든 학술 용어.

미국에서는 폴리테이너란 말이 그닥 부정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지지하는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연예인이 많으며, 이를 떳떳하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특정 정치세력 지원에 나서는 것을 감추기 위해 소셜테이너라는 개념을 이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실제 광우병 파동, 반값등록금 시위, 제주 해군기지 반대 등 진보진영이 정치적 목적으로 기획한 각종 집회에 참여한 연예인 대부분은 특정 정치세력과는 관계없는 소셜테이너로 포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가면’을 쓴 폴리테이너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팩트’가 아닌 ‘감성’을 무기로 삼는다.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20대와 30대는 좋은 타깃이다. 정치적 스탠스가 모호한 부동층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노골적 편향성으로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전문성 부재와 대안없는 반대로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얼마나 학습이 이루어졌다고 반대 집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지 의문이다. 핵문제 및 3대 세습 독재와 맞물리면서 전문가 내에서도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마당에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을 촉구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심지어는 한진중공업 파업사태처럼 노사현장에도 개입한다. 경영진과 노동조합 간 자체 해결해야 할 문제에 끼어들어 상황을 더욱 꼬이게 하는 것은 물론 노동시장의 경직성만 강화시키는 것. 노사현장에 대한 제3자 개입은 한국경제의 독버섯이다.

물론 연예인도 사회 이슈에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항변’은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거나 최소한 탤런트 차인표와 가수 김장훈처럼 비정파적 행보에 국한돼야 한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 특정 정치세력과 연계된 폴리테이너임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

지금 보수진영은 물론 안철수 신당에게도 영화 ‘변호인’은 프로파간다로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전위대(前衛隊)의 존재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배우 송강호를 염두에 둬야 할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소셜테이너가 각종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슈에 전방위로 개입해 프로파간다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미디어펜 =정구영 논설실장 gychung@mediap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