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망칠 특별다수제 꼼수에도 잠자는 무능한 여권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20대 국회에서 다수 권력을 쥔 야당에서 나온 첫 일성은 공영방송사를 향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세 야당이 뜻을 뭉쳐 처음으로 개최한 토론회가 '공영언론,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였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또 야당 쪽 사람들은 이 토론회 뿐 아니라 여러 언론 인터뷰나 자리에서 소위 말하는 공영방송사 지배구조를 뜯어고칠 것이며 언론 청문회를 개최하겠다고 공언했다.

지금까지 해온 전력이나 어떤 면을 보더라도 야당 정치세력과 한 식구나 다름이 없는 언론노조 세력은 이런 야당 권력을 등에 업고 '부역자를 심판해야 한다'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우상호 더민주당 원내대표가 "납득할만한 개선이 없다면 방송국이 국회에 와서 여러 가지 답변을 해야 할 것"이라며 해직자 문제와 같은 것들은 미리미리 알아서 해결하라고 경고까지 했다. 말 잘 듣지 않으면 손봐주겠다는 뜻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현실이 어떤 꼴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당내 권력 다툼에나 날밤을 지새우던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자멸한 덕분에 KBS MBC와 같은 공영방송사는 이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야당은 9월 정기국회에서 성과를 내겠다며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언론 청문회를 추진해 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인사 문제와 정책들을 단두대에 올려 목을 따려하고 있다. KBS MBC 경영진들과 이사회 이사들은 청문회에 불려나가 온갖 망신과 추궁을 당할 것이고 뭘 모르는 새누리당은 야당이 벌인 굿판에서 떡이나 주워 먹으며 구경꾼 노릇을 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에 관해 야당은 무서우리만큼 집요하지만 새누리당은 남의 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언론판의 심각성을 알았더라면 인사와 정책을 이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YTN 사장에 언론문외한 은행장 출신 인사가 낙하산으로 안착한 꼴만 봐도 아는 것 아닌가.

과거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공영방송이 주도했던 언론의 보도 공작으로 난도질을 당하다시피 해서 낙마했던 꼴을 당하는 그런 경험을 하고도 새누리당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 그렇기에 야당이 똘똘 뭉쳐 언론청문회를 열든 방송법을 개정하든 무얼 지지고 볶든 여당은 알지도 못하면서 덥석 물고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TV조선이 "공영방송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해도 조용한 것이 새누리당이다. 당의 인식이 그 지경인데 국회선진화법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기 배만 부르고 자리만 안전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탐욕스런 가진 자들, 언론노조가 떠드는 대로 똑같이 떠들어야 멋있는 줄, 옳은 줄 아는 무식자들, 야당의 정체성과 별로 다르지 않은 오렌지 강남좌파들이 새누리당엔 즐비하다. 이런 마당에 국회 다수가 된 야당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어떻게 바꾸려 하던 야당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방도가 있나.

   
▲ 20대 국회에서 다수 권력을 쥔 야당에서 나온 첫 일성은 공영방송사를 향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위협이었다. 특별다수제와 같은 꼼수를 막을 수 있을지는 새누리당과 소위 보수우파들이 정신을 차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사진=연합뉴스

공영방송 정치독립을 위한다는 제도 현실 기능은 정반대

야당과 언론노조 세력이 바꾸겠다는 대략적인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방송법 방문진법과 같은 관련법을 개정해서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 이사수를 늘려 여야를 7대 6의 비율로 맞추고 소위 특별다수제를 실시할 것, 제작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사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강제할 것, 사장추천위원회를 도입하자는 것과 같은 내용이다.

필자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주장들이 노리는 목적과 부작용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공영방송을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시킨다는 명분을 외피로 썼지만 실상은 공영방송을 망치는 방법들이라고 경고했다. 왜 그런가. 이사수를 늘려 각 분야의 인사들을 이사회에 더 많이 집어넣게 된다면 공영방송은 과연 더 공정해질 수 있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 오히려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특별다수제는 말할 것도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19대 국회를 어떻게 마비시켰는지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사장 선임 뿐 아니라 이사회에서 안건마다 야당의 결제를 받아야 하는 식이 된다면 공영방송 이사회는 여야 대리전 정치공방으로 날밤을 지새우게 될 것이다. 이사회가 걸핏하면 발목을 잡을 텐데 사장의 책임 경영도 어렵다.

여야 이사회의 눈치, 내부 노조세력의 눈치, 이 눈치 저 눈치 잘 보는 처세의 달인이 사장으로 임명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소신 있는 책임경영을 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사장추천위원회랍시고 만들어 좌파세력의 참여까지 보장한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사장을 만드는 완벽한 구조를 짜는 꼴이다.

알다시피 우파의 단체들은 세력이 미약하기 짝이 없다. 언론노조 세력의 노림수를 잘 아는 이들이 배제된 채 보수우파에선 무의미한 인물들이 들어가고 좌파가 주도하는 사장추천위원회가 어떤 꼴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훤한 일이다.

특별다수제 꼼수 법안 막지 못하면 집권 포기하라

게다가 노사동수 편성위원회까지 강제하면 어떻게 되나. KBS 이승만 매도나 MBC 광우병 프로그램과 같은 선동 방송이 더 쉽게 만들어질 수 있게 된다. 국민을 기만하고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일으켜도 기자와 PD에 책임을 묻기도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말이 제작자율성이지 노조가 만드는 보도와 프로그램에 경영진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 노사동수 편성위원회 구성에 담긴 속셈 아닌가.

이런 꼼수가 담긴 방법들을 야당과 언론노조 세력은 공영방송의 정치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누가 정권을 잡든 한쪽이 주도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라고 우기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은 결국 경영진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공영방송에 외부세력을 끌어들여 더 많은 정치논란을 키울 뿐이다. 무능한 사장의 필연적인 무능 경영으로 인해 그 틈을 타 노조는 공영방송에 대한 지배력을 더 키우게 될 것이다. 공영방송의 노영방송화를 가속시킬 뿐이라는 얘기다.

이제 야당은 필자가 누누이 지적했던 특별다수제와 같은 꼼수들을 넣은 관련 법안들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뛸 것이다. 보수우파라는 사람들은 언론노조 세력이 이슈를 선점하고 여론전을 펼 때 뜨악하면 그때서야 뒷북이나 쳐댈 것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경종을 울렸지만 보수우파들은 언론판이 어떤 꼴로 돌아간다는 것에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그랬다면 이 지경에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특히 기회가 주어졌을 때 MBC 개혁을 위해 할 일을 다 했어야 했을 방문진 이사회는 아마도 그 직격탄을 맞을 지도 모른다.

자리가 주는 달콤함만 즐기던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들이 야당 권력이 힘으로 밀고 들어올 때 과연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하다. 어찌됐든 공영방송을 짓누를 야권의 압박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특별다수제와 같은 꼼수를 막을 수 있을지는 새누리당과 소위 보수우파들이 정신을 차리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각성하지 못하고 지금 이대로라면 집권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좋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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