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후려치기·하청업체…반시장정책으로 이어지는 '잘못된' 사회적 담론
시장논리에 따른 경쟁이 가장 공정하다

언어는 기표장치와 기의장치로 구성된다. 기표장치는 음성이나 문자 등으로 표현되는 형태를 의미하고, 기의장치는 개념이나 뜻을 지칭한다. 즉, 기표장치는 기호이고 기의장치는 개념이다. 언어학자들에 따라 시그니피앙과 시그니피에 혹은 랑그와 파롤이라는 단어로 이를 표현하기도 한다.

가장 이상적인 소통은 하나의 기표장치가 하나의 기의를 지닐 때 나타난다. 반면 내가 '자유’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A라는 뜻을 전달하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자유’라는 기표장치를 B의 개념으로 수용한다면 소통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행복’, ‘정의’라는 기표는 개인마다 저마다의 기의를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추상적인 용어를 통해 소통을 하면, 표면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는 합의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행복하게 살자’거나 ‘정의롭게 살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 불일치와 갈등이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어떠한 행동이 정의로운 지에 대해서는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없다. 따라서 추상적이고 다의미적인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분명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때, 사회적인 오해가 생긴다. 이렇게 형성된 오해는 잘못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결국 잘못된 정책으로까지 이어진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는 분명하지 않은 용어 사용으로 그 의미가 곡해되고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그 결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반자유적, 반시장적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대기업과 하청업체간의 ‘불공정’ 경쟁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이다. 이는 소위 원가 후려치기 등의 기법을 통해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을 지나치게 쥐어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하청업체가 지나친 가격 압박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현실을 '불공정’ 경쟁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불공정’을 해소할 대책으로 이들은 하청업체들에게 적정 수준의 마진을 보장하는 ‘공정 가격’을 설정할 것을 주장한다.

   
▲ 과거 대형마트는 가격경쟁력이 높은 업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선택했지만 정부가 공정경쟁을 명분으로 소위 '공정가격'을 정한다면 소비자 이익은 줄어들고 거래 성사에 연고주의가 개입할 여지가 크다./사진=미디어펜


대기업에 납품하는 A라는 하청업체의 경쟁상대는 누구인가? 대기업과 아직 거래를 하고 있지는 않으나 호시탐탐 납품권을 따낼 기회를 엿보고 있는 B와 C라는 하청업체들이다. 이들의 경쟁 수단은 무엇인가? 가격경쟁력과 품질이다. 여기서 대기업과 하청업체의 '상생’ 혹은 '공정’라는 기치를 내걸고 대기업이 기존의 하청업체에게 이윤을 더 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편의를 위해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낸다고 가정하자. A 하청업체는 한 제품을 500원에 납품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이 있다. 반면 B 업체는 600원에, C 업체는 700원에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시장경쟁의 논리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A가 거래를 하게 되며, B와 C는 가격을 낮추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하지만 하청업체의 마진이 너무 적다며 정부가 700원이라는 '공정가격’을 정해주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분명 기존 거래상대인 A는 이득을 볼 것이다. 하지만 B와 C는 비록 그들이 400원에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가격 혁신을 이루어내더라도 납품권을 따낼 수 없다. 이것은 불공정 경쟁이다. 잠재적 경쟁자들이 경쟁에서 승리할 가장 객관적인 방법을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A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됐을 시를 생각해보자. 가격은 700원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A,B,C 모두 응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입장에서는 갑자기 해당 부품의 수요가 증가하지 않는 이상, 셋 중 누구와 거래를 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질 것이다. 과거에는 응당 가격경쟁력이 높은 업체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필시 연고주의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학연, 지연 등과 같은 개인적인 연줄이나 정부의 입김이 거세질 것이다. 비가격적인 요소가 중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사라진다. 

이처럼 잘못된 개념으로 덧씌워진 사회적 용어의 오해를 바로잡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말해도, 모두가 어떠한 형태로든 마음속으로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른바 프레이밍 효과이다. 쉽게 말해 아무리 ‘불공정 경쟁’이 아니라고 떠들어 봤자, ‘불공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공정’이라는 단어만 기억한다. 과거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닉슨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항변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국민들이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했다.

상대방의 용어를 사용하는 순간, 상대방이 설정해 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불공정 경쟁’ 담론을 ‘열린 경쟁’ 등의 용어를 사용해 반박하자. 새로운 용어를 통해 새로운 프레이밍을 만들어내면, 훨씬 사람들을 설득하기 쉬워질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내공을 쌓는 것과 더불어 이러한 전략적인 측면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인혁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 형성된 오해는 잘못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결국 잘못된 정책으로까지 이어진다. 시장경제는 그 대표적 영역이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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