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황지우 해체시의 反대한민국 정서도 김수영이 원조
예로부터 한 시대의 문제를 꼬집고 비판하는 문학작품은 대중의 환영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소시민적 슬픔이 담긴 시를 쓰던 김수영은 1960년 본격적으로 사회참여시를 쓰기 시작하여 이름을 알린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졌지만 그의 작품은 문단의 지지를 받으며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김수영의 사회참여시는 대중의 분노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전락했다. 자유경제원은 1일 리버티홀에서 '김수영 가짜 신화'가 만들어진 배경 및 문단권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열린 ‘사회를 흔드는 참여시, 누가 김수영을 이용하나’ 김수영 비판 4차 연속세미나에서 패널로 나선 미디어펜 조우석 주필은 “재확인하지만 시인 김수영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민중시인 하나로 분류할 수 없다”며 “난해한 작품을 쏟아낸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분류돼야 옳다”고 지적했다. 조 주필은 이와 관련 “좌편향된 문학판은 그런 그를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처지를 괴로워했던 민중시인’으로 둔갑시켰다”며 “김수영을 본 따 대한민국을 향해 분노하고 욕설을 던지라고 대중을 부추겼다”고 밝혔다.

조 주필은 “시의 외연을 넓힌 공로보다 한국문단을 황페화시킨 해악이 더 큰 김수영의 파괴적 영향력은 이걸로 그치지 않는다”며 “1980년대 이후 등장한 황지우, 박남철 등 한국적 해체시 계열이 강렬한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품고 있으며, 이 역시 김수영의 영향”이라고 강조했다. 조 주필은 이어 “김수영이 남긴 시의 유산은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파괴적”이라고 언급했다. 아래 글은 조우석 주필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우석 주필
민중시만 아니라 해체시도 김수영이 망가뜨렸다

80년대 황지우 해체시의 反대한민국 정서도 김수영이 원조

재확인하지만 시인 김수영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민중시인 하나로 분류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는 난해한 작품을 쏟아낸 모더니스트 시인으로 분류돼야 옳다는 걸 저번 발제 때 강조했다. 유감스럽게도 좌편향된 문학판은 그런 그를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처지를 괴로워했던 민중시인”으로 둔갑시켰고, 김수영을 본 따 대한민국을 향해 분노하고 욕설을 던지라고 대중을 부추겨왔다.

그래서 민중문학에 줄을 선 평론가들은 극단의 시적 자유를 강조한 김수영의 미발표 시‘김일성 만세’를 사례의 하나로 들먹이고, 기성 시와 질서를 깡그리 무시하자는 외침의 반(反)이승만 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등을 예로 들곤 한다. 그런 김수영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더 무시무시한 김남주(1946~1994)란 도깨비가 나왔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전투적 서정미”라는 헛소리 수식어가 따라붙는 김남주의 등장도 김수영이 앞장 서 길을 닦아놓지 않았더라면 결코 쉽지 않았으리라. 김수영과 김남주 사이의 거리는 분노와 저항이 보다 구조화되고, 계급투쟁으로 내달았다는 차이 뿐이다. 요즘 문제가 된,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군가(軍歌)격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시 ‘묏비나리’를 쓴 백기완이란 글쟁이 등장도 그 맥락이다. 시의 외연을 넓힌 공로보다 한국문단을 황페화시킨 해악이 더 큰 김수영의 파괴적 영향력은 그걸로 그치는 게 아니다.

김수영의 파괴적 영향력이란 지적은 결코 악의적인 게 아니며, 충분한 근거가 있다. 황지우 등 이른반 해체시(解體詩) 계열로 분류되는 무리가 남긴 공과 과가 그걸 보여줄 텐데, 해체시도 김수영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문단의 상식에 속한다. 그들은 주로 김수영의 모더니스트 측면과 탯줄로 연결됐다. 해체시란 기성 시가 갖는 정형화된 틀을 깬 미학을 추구하는데, 1차 대전 이후 국내외 현대시 흐름의 하나다. 주로 기성질서에 대한 풍자-조롱-야유 내지 달관을 담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유독 정치색이 강하다.

   
▲ 시인 김수영의 유명한 말대로 문화는 본디 불온한 것이라서 비판적 상상력을 기본으로 한다. 문제는 그게 도를 넘어 괴물이자 공룡으로 진화했다는 것이 문제다./자료사진=SBS카드뉴스 '스브스뉴스'


1980년대 이후 등장한 황지우, 박남철 등이 그러했다. 특히 때문에 한국적 해체시 계열이 강렬한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품고 있으며, 그 역시 김수영의 영향이다. 놀랍게도 요즘 고등학교의 문학 교과서에서 황지우의 대표 시로 분류되는‘새들도 하늘을 뜨는구나’등을 가르치면서, 반대한민국 정서를 증폭시키는 중이다. ‘새들도 하늘을 뜨는구나’는 아주 고약한 작품으로 1970~80년대 영화관람 직전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를 듣도록 규정했던 풍경을 소재로 하지만, 노골적인 반국가주의를 부추긴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인 황지우는 1973년에 유신 반대 시위에 연루되어 강제 입영된 경력이 있고, 1980년 광주사태에 가담하여 구속된 전력이 있다. 형태 면에서 크게 해체시 냄새를 풍기지 않는 듯보이며, 내용 역시 얌전한 듯 보이나 이 작품의 정치적 함의는 썩 고약하다. 이 시의 화자(話者) 즉 주인공은 애국가를 경청하거나 나라사랑 정신에 공감하기는커녕 삐딱해도 엄청 삐딱하다. 애국가가 울려 나올 때 화면에 비춰지는 아름답고 장려한 자연경관에 대한 몰입이나, 국가에 대한 존중의 자세는 전혀 없다. 

그 반대다. 새떼들이 낄룩대듯“우리도 우리들끼리/낄낄대면서/깔쭉대면서/우리의 대열을 이루며/한 세상 떼어 메고/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 심정으로 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다며 조롱하기에 바쁘다. 그것도 대한민국과 자기는 전혀 남남이라는 냉소 내지 방관자의 자세로 일관한다. 그러다가 애국가 말미에 “대한 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가 나오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영화관 객석에 쭈그리고 앉았을 뿐, 불만과 냉소는 여전하다는 걸 강조한다.

황지우의 이 작품을 싣고 있는 현행 국어 문학교육은 한 술 더 뜬다. “고등학교의 문학 교과서에서는 예전에 극장에서 애국가를 들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던 것을 ‘강요된 조국애’라고 가르치고 있다.”(지난해 말 미디어펜에 실린 황인희 칼럼 ‘애국가·태극기가 우민화?…IS테러 프랑스를 보라’. 이 글의 원출처는 자유경제원 ‘교육고발’.)

일테면 현행 11종의 문학 교과서에 실린 현대시들을 풀이해놓은 <해법문학-현대시>(천재교육)의 경우 “애국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는 관객들은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맹목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당시의 민중들을 의미한다”라고 억지춘향식으로 해설한다.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의 서정적이고 화려한 영상은 어리석은 국민들을 지배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임을 고발하고 있다”는 실로 황당한 해설도 곁들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떤 얼간이 평론가는 “1980년이라는 통제된 사회에서 자유로운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의 무력함과 현실적 삶의 불가항력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이 시를 평가했다. 그건 풍자도 문학도 아니고, 현실에 대한 저주일뿐인데, 황지우의 또 다른 대표시로 꼽히는 ‘徐伐, 셔블, 서울, SEOUL’역시 그러하다. 앞서의 그 모자란 평론가는 이 작품을“억압체계를 특징으로 하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인간의 타락과 가치붕괴, 지리멸렬한 삶을 감싸고 있는 불안의식을 코믹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장황하게 쓰고 있다.

이 자리에서 중요한 것은 이 시는 김수영의 영향력 아래 탄생했다는 점이다. 김수영이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성>)며 잔뜩 떠벌이는 시를 쓴 바 있다. 황지우도 그런 식이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 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 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 주물러주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곡으로 하겠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백기완 원시 '묏비나리'를 읽어보길 권한다. 그건 김수영의 분노와 저항이라는 스파크가 일으킨 무서운 작품이다./자료사진=연합뉴스


張萬燮氏(34세, 普聖物産株式會社 종로 지점 근무)는 1983년 2월 24일 18:52 #26, 7,8,9......, 화신 앞 17번 좌석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귀에 꽂은 산요 레시바는 엠비시에프엠 "빌보드 탑텐"이 잠시 쉬고, "중간에 전해드리는 말씀," 시엠을 그의 귀에 퍼붓기 시작한다.
쪼옥 빠라서 씨버 주세요. 해태 보봉 오렌지 쥬스 삼배권!
더욱 커졌씁니다. 롯데 아이스콘 배권임다! (중략)

보성물산주식회사 종로 지점 근무, 34세의 장만섭 씨는 산요 레시바를 벗는다. 최근 그는 머리가 벗겨진다. 배가 나오고, 그리고 최근 그는 피혁 의류 수출부 차장이 되었다. 간밤에도 그는 외국 바이어들을 만났고, "그년"들을 대주고 그도 "그년들 중의 한년"의 그것을 주물럭거리고 집으로 와서 또 아내의 그것을 더욱 힘차게, 더욱 전투적이고 더욱 야만적으로, 주물러 주었다. 이것은 그의 수법이다.(중략)아내의 배 위에서, "그년"과 놀아난 "표"를 지우려 하면 할수록, 보성물산주식회사 차장 장만섭 씨는 영동의 룸쌀롱 "겨울바다"(제목이 참 고상하지. 시적이야. 그니?)의 미스 쵠가 챈가 하는 "그년"을 더욱 더 실감으로 만지고 있는 것이다. 

아저씨 아저씨 잇짜나요 내일 나제 아저씨 사무실 아프로 나갈께 나 마신는 거 사 줄래
커 죠티(보성물산주식회사 장만섭 차장은 '일간스포츠'의 고우영만화에 대한 지독한 팬이다)
잇짜나요, 그리구,
어쩌구 저쩌구 해서 오늘 장만섭 씨는 미스 쵠가 챈가 하는 여자를 낮에 만났고, 대낮에 여관으로 갔다. 그리고 1983년 2월 24일 19:08 #36, 7, 8, 8......, 그 장만섭 씨는 화신앞 17번 좌석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열의 맨 끝에 서 있다. 1983년 2월 24일 19:10 #51, 2, 3, 4...... 장만섭씨는 열의 중간쯤에 서 있다. 1983년 2월 24일 19:15 #27, 8,9...... 선진조국의 서울 시민들을 태운 17번 좌석버스는 안국동 방향으로 떠나고 장만섭 씨는 그 열의 맨 앞에 서 있다. 그의 손에는 아들, 장일석(6세)과 딸, 장혜란(4세)에게 줄 이.티 장난감이 들려져 있다. 보성물산주식회사 장만섭 차장은 무료했다. 그는 거리에까지 들려 나오는 전자 오락실의 우주 전쟁놀이 굉음을 무심히 듣고 있다. 

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숑
띠리릭 띠리릭 띠리리리리리리릭
피웅피웅 피웅피웅 피웅피웅피웅피웅
꽝!ㄲ ㅗ ㅏ ㅇ!
PLEASE DEPOSIT COIN
AND TRY THIS GAME! (중략)

그러나 정말로 갤러그 우주선들이 튀어 나와, 보성물산주식회사 장만섭 차장이 서 있는 버스 정류장을 기총 소사하고, 그 옆의 신문대를 폭파하고, 불쌍한 아줌마 꽥 쓰러지고, 그 뒤의 고구마 튀김 청년은 끓는 기름 속에 머리를 처박고 피흘리고, 종로 2가 지하철 입구의 戰警 버스도 폭삭, 안국동 화방 유리창은 와장창, 방사능이 지하 다방 "88올림픽"의 계단으로 흘러내려가고, 화신 일대가 정전되고, 화염에 휩싸인 채 사람들은 아비규환, 혼비백산, 조계사 쪽으로, 종로예식장쪽으로,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쪽으로, 우미관 뒷골목 쪽으로, 보신각 쪽으로 그러나 그 위로 다시 갤러그 3개 편대가 내려와 5천 메가톤급 고성능 핵미사일을 집중 투하, 집중 투하!

짜 자 잔
GAME OVER
한다면,

- ‘徐伐, 셔ᄇᆞᆯ, 셔블, 서울, SEOUL’ 발췌 

   
▲ 김수영이 한국사회에서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하게 된 이유는 미당 서정주를 누르고 김수영을 띄운 백낙청-염무웅 콤비 때문이다./자료사진=SBS카드뉴스 '스브스뉴스'


해체시의 특징이 고시란히 드러난 이 시는 1980년대 서울을 대상으로 한 도시 비판, 문명 비판이며, 그걸 랩 음악처럼 폭주하는 말로 수행한 ‘재담으로서의 시’이겠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새들도 하늘을 뜨는구나’에서 보여진 반대한민국 정서가 반 문명, 반 도시 정서로 일층 확대됐다는 혐의도 없지 않은데, 놀랍게도 그게 현대시사에서 해체시의 성취로 받아들여지는 게 한국문단의 풍토이고 체질이라는 점이다. 

이 모든 작업이 1970년대 이후 과대평가된 김수영의 문학적 영향력 아래서 이뤄졌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어쨌거나 김수영이 남긴 시의 유산은 부인 못한다. 문제는 그게 한국문단에 긍정적인가, 파괴적인가라는 점인데, 이제는 그걸 제대로 따져 물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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