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북한 대남선동용 책 짜깁기
이렇게 5월을 보낼 순 없다. 지난 달 내내 쟁점이었던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제창 논란과 법제화 문제가 어정쩡한 봉합상태로 남은 상황에서 사고까지 터졌다. 성역화된 5.18에 이의를 제기해온 논객 지만원 박사가 5.18유족 수십 명으로부터 19일 집단폭행을 당한 것이다. 현대사 갈등이 테러행위로 번진 중차대한 사건인데, 누가 하나 잘잘못을 가리는 이 드문 게 현실이다. 마침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사했던 논란 속의 인물 소설가 황석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짧은 밑천을 드러내는 망발을 했는데, 그 바람에 새롭게 짚어볼 쟁점이 몇 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미디어펜은 3부작 칼럼 '광주5.18의 진실을 찾아서'를 연재한다. 5.18이 한국현대사의 축복이었던가, 악의 꽃인가를 점검하는 작업인데, 1)지식인에 대한 테러는 결코 안 된다, 2)반역 소설가 황석영은 자중하라, 3)5.18의 진실, 지역 자존심 걸고 광주가 규명하라 등의 순서로 싣는다.  <편집자>
                         
 3부작 칼럼 ‘광주5.18의 진실을 찾아서- 제2회

   
▲ 조우석 주필
  광주5.18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된 게 2007년이다. 대선이 있던 그 해를 노린 고도의 전략적 문화상품이었는데, 이게 삽시간에 700만 관객을 세뇌시키는데 성공했다. 관객의 피를 마구 끓어오르게 했고, 대한민국 공권력에 적개심을 뇌리 깊숙이 심었다.
 
악명 높은 집단 발포장면부터 참담했다. 도청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던 시민을 향해 공수부대가 무릎쏴 자세로 일제사격을 하는 장면…. 대한민국 군대란 게 유대인을 집단학살한 독일 나치만도 못하다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이다. 영화는 자막으로 이 작품이 사실에 기초했다고 버젓히 전하고 있지 않던가?
 
이후 정부 대응도 문제가 있었다. 일테면 국방장관이 나서서 "1980년 5월 광주에서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영화제작자를 향해 따끔하게 경고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렇게 못하면서 5.18의 진실은 자꾸만 왜곡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 사실을 제대로 밝히자면 그날 공격을 먼저 감행한 건 시민군 쪽이다.
 
황석영 책은 '5.18 바이블'이 아니다

정확하게 5월21일 낮1시 시민군이 모는 장갑차와 버스, 트럭 등을 도청 앞의 계엄군 수 백 명을 향해 작심을 한 듯 지그재그 운행과 함께 달려들었다. 그런 공격의 결과 계엄군 병사 1명이 즉사했고, 또 다른 병사 하나가 크게 다쳤다. 당시까지 계엄군은 발포도 못하며 허둥댔던 것도 사실이며, 겨우 장갑차-버스를 세우기 위해 응사를 해야 했던 수세적 대응이 전부다.
 
이 대목에서 물어봐야 한다. 이렇게 완전히 뒤바뀐 정보를 전해줬던 게 누구이던가? 세상이 알 듯 1985년 단행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 넘어>)를 쓴 소설가 황석영이다. 지금도 그 책은 뭘 모르는 이들에게 '5.18의 바이블'로 통한다.
 
하지만 더 이상 대세는 그 쪽이 아니다. 일테면 2년 전 개정증보판 출간을 광주 측에서 5.18사업으로 추진했다가 끝내 포기했는데, 왜 그랬을까? 이 책의 숨겨진 정체가 드러났던 게 가장 큰 이유다. 우선 황석영은 당시까지 전혀 확인된 바 없던 유언비어를 실로 무책임하게 짜깁기한 죄가 실로 크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려고 한다", "공수부대원들이 광주 시민 70%를 죽여도 좋다고 하더라." "부녀자 국부를 찌르고 유방을 칼로 도려내…."
 
   
▲ 황석영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기망해 광주5.18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심은 장본인이자, 평양에 부역질을 했던 좌익 작가나 다름 아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문제는 그게 5월18일 사태 첫날부터 조직적으로 유포되던 불순한 목적의 유언비어였고, 그런 걸 긁어모은 최악의 책이 <넘어 넘어>였다. 결정적으로 이 책의 원전(原典)이 따로 있으며, 그게 대남선동용으로 평양이 펴냈던 책이다.
 
불과 6~7년 전부터 서서히 밝혀진 얘기이기 때문인데,  원전은 두 권만 기억하면 된다. <넘어 넘어>가 나오던 1985년 당시 평양에 등장했던 <광주의 분노>(조선로동당출판사), 그 3년 전에 나왔던 더 무시무시한 책인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조국통일사)….
 
이 셋 사이는 완전히 판박이다. 황석영은 평양의 책을 두루두루 베껴서 조합했을 뿐이다. 때문에 지금껏 광주5.18에 관한 대중들 사이의 최악의 나쁜 이미지와 정보란 90% 이상이 황석영 탓이다. 실제로 황석영의 북한 책 표절문제는 2010년 신동아 12월 호가 의혹을 제기한 바 있으며, 그 이전 지만원 박사가 이걸 증명하기 위한 관련자료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럼 황석영만의 대담한 표절행각이었던가? 아니다. 파렴치 행위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즉 악성 유언비어에 거꾸로 된 광주5.18에 관한 정보를 담은 원자료를 누군가 쥐고 있었고, 그걸 근거로 평양 측과 황석영 등이 자기 스타일을 가미한 뒤 출간 타이밍까지 살펴가며 재주껏 남과 북에서 펴냈다.

표절 대왕 황석영 북한책도 베꼈다

광주5.18 이후 선전전 대공세로 돌아선 북한의 노골적인 개입행위라고 봐야 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세 책은 거짓 팩트의 나열은 물론 어휘-표현까지 같다. 계엄군이 휘두른 곤봉은 "철심이 박힌 살상용"이라는 대목(36쪽), "시위 진압 출동 전 독한 술에 환각제를 마셨으며 수통에 빼갈을 담았다"는 거짓말(50쪽)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했다는 더 큰 거짓말(81쪽)….
 
이 모두 수차례 공식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바 없지만 북한 책에는 모두 등장하며, 황석영 책에도 반복해 등장한다. 의혹은 또 있다. <넘어 넘어>의 실제 저자는 따로 있으며 이재의란 인물, 소준섭이란 학생을 포함해 무려 서너 명이나 된다는 게 6년 전 다시 드러났는데, 이건 또 뭐지? 얼마 전 한겨레는 광주지역 청년들이 썼던 제각각의 기록이 모처의 캐비넷에 쌓여있었는데, 그걸 황석영이 모았다고 변명했지만, 그 또한 우습다.
 
당장 황석영이 꼬리 내렸다. <넘어 넘어>는 누가 썼는지도 잘 모르며, 거물의 이름으로 발간해야 많이 팔리고 체포도 면할 수 있다는 광주 사람들의 권유에 따랐을 이름을 빌려줬다는 자백이었다. 그렇다면 그 책은 유령의 책이 분명하고, 그동안 국민 모두가 선동당했다는 얘기다.
 
의혹은 거듭된다. 황석영에게는 표절대왕이란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평소 술자리에서 뱀장수 흉내를 낸다며 혁대를 끌러 한 잔 술에 우스갯소리나 하던 그는 몇해 전 펴낸 장편소설 <강남몽>이 한 신문기자의 책을 베꼈다는 지적을 들었다. 1980년 베스트셀러였던 <어둠의 자식들> 역시 전 국회의원 이철용의 기록을 가로챈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 2007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화려한 휴가' 스틸 컷.

평양에 부역질을 한 반역의 작가 황석영

뿐인가? 창비에서 펴낸 <황석영 삼국지> 역시 중국 옌벤대 교수 5명이 번역한 <삼국연의>를 조립각색했다는 주장도 있다. 황석영은 파렴치범이 아니라, 남과 북을 가리지 않는 스케일 큰 표절꾼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김일성과 교감해온 위험천만한 위인이다.
 
실제로 그는 1989년 밀입북, 광주5.18에 관한 첫 영화(남북을 통틀어서 그러하며, '화려한 휴가' 개봉을 몇 년 앞선다)인 '님을 위한 교향시' 시나리오를 써서 김일성에게 바쳤다. 당시 김일성으로부터 작곡가 윤이상과 함께 '재간둥이'란 말까지 들었던 위인이 황석영이다.
 
즉 황석영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기망해 광주5.18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심은 장본인이자, 평양에 부역(附逆)질을 했던 좌익 작가란 뜻이다. 그런 그는 대한민국을 갈아엎자는 백기완의 원시(原詩)를 간추려‘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사했으니 그야말로 광주5.18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한겨레 칼럼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래 한 곡이 그렇게 두려운가"에서 황당한 헛소리를 반복했다. "광주시민의 저항은 마땅히 정당방위였다"는 것,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며 민주적인 선진사회로 나아가자"는 말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대한민국을 갈아엎자고 선동했던 그가 하는 어떤 말도 믿기기 않는 건 필자 혼자뿐인가?
 
그런 그를 '삼포 가는 길' '한씨 연대기'의 작가로만 알아선 안 된다. 그는 백기완과 함께 1978년 만들어진 대한민국을 뒤엎자는 간첩조직인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민족전선)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인물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광주운동권의 핵심이라는 것도 기억해둘 일이다.
 
그가 1980년 초 극단 광대를 창단하고 동명동에 전용극장을 마련한 것도 광주운동권의 자금지원 덕인데, 단행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쓴 재미사학자 김대령은 그때부터 이미 황석영이 김일성 장학생이었을 가능성을 밝힌 바(같은 책 299쪽) 있는데, 이건 나중에 추가 규명될 문제다.
 
자 마무리다. 도청 앞 시위 얘기로 시작했으니 당시 민간 사망자 수를 밝히겠다. 그날 하루 광주에서 사망한 민간인은 61명이었다. 광주사태 기간 중 전 사망자의 3분의 1이니 적지 않은 수치다. 그러나 M16(계엄군 소총)으로 인한 도청 앞의 총상 사망자는 4명이 전부다. 이게 무얼 말해주는가? '도청 앞 집단발포'와, 양민 학살이란 완전 허구임을 증명해준다.
 
또 하나 그날 계엄군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지역에서 14명이 사망했는데, 이 점도 지금껏 미스터리다. 결정적으로 어느 장소에서 죽었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사망자가 그날만 35명 발생했다. 대혼란 중에 오인(誤認)사격을 포함한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는 뜻이며, 이 역시 이른바 '양민 학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걸 새삼 밝혀둔다. 다음 회는 광주5.18의 실체적 진실 찾기 편이다.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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