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코걸이 귀걸이식 애매한 법적용, 실적과 투자부진 위기

   
▲ 전삼현 숭실대 법대교수, 기업법률 포럼 대표
최근 재계 총수들의 구속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재계 총수들의 형사처벌 문제는 이미 우리 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진입한 70년대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그 중심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가 자리잡고 있다. 한 소비자연대가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0%가량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에 동의한다고 하니, 논란의 대상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유행어가 항상 대한민국 사회의 사법부와 검찰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법부 개혁의 일환으로 기업인 형사처벌 강화가 항상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종 진실은 대법원 판결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박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 주요그룹 중 SK,  한화, 효성, CJ, LIG, KT, 태광, 동양그룹의 총수가 배임 또는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거나 검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STX의 경우 오너가 경영 실패로 물러났다.
 

1990년 이후 10대 재벌 총수 중 7명이 2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났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를 감안할 때, 박근혜정부의 대기업 오너들에 대한 대규모 구속과 수사는  국민 80%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국정운영이라는 것이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흐른다면 우리나라의 법치주의 지수 하락은 물론이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데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지난 1년간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는데 실패한 것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처벌받는 당사자들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경우 “신뢰의 정치철학”이 오히려 “불통의 정치철학”으로 매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법심사의 대상인 총수들 대부분의 죄목인 “업무상 배임죄”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형사처벌 규정이라는 인식이 강한 점을 고려힐 필요가 있다.
업무상 배임죄는 배임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이나 피해 대상을 특정 짓기 어렵다는 근본적인 입법적 결함을 갖고 있다. 이는 일본이나 독일 등 일부 대륙법계 국가를 제외한 그 어느 나라도 업무상 배임죄라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는 점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일본이나 독일은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해석상 다른 범죄로 처벌할 수 있을 만큼의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경우에만 배임죄를 적용하여야 한다는 판례를 확고히 정립한 바 있다.

   
▲ 재계총수와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위주의 수사와 재판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사법부도 경제민주화와 유전중죄의 포퓰리즘영향을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근혜정부들어 9명의 총수가 수난을 당하고 있다. 출범첫해 역대 정권가운데 가장 많은 총수들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대통령은 다보스포럼에서 기업가정신을 강조했다. 일자리창출과 투자를 이끌어가는 것은 기업인들의 왕성한 기업가정신이라는 것이다. 총수가 어려움을 당하는 그룹들은 주요 인수합병이 무산되고, 투자도 확정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고 있다. 최태원 SK회장이 구속되기 전에 재판정에 들어가고 있다.

현재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총수들이 수사에 공감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향후 위험을 감수한 투자를 할 가능성은 점차 감소할 것임은 분명하다. 즉, 더 이상 이들이 창조경제의 주역이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경제현장에서는 SK 최태원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재계 총수들에 대한 구속수사 및 재판이 해당 그룹의 실적 부진은 물론이고 신사업 전면 보류, 조직 분위기 침체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실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지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구속된 총수들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위법성이 애매한 경영판단도 무조건 구속 수감이 가능한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기업법률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