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휴대폰 가격과 통신요금’은 허상, 소탐대실 정책 철회해야

   
▲ 정구영 미디어펜 논설실장
휴대폰 보조금의 역사는 의외로 뿌리가 깊다. 후발 이동통신사업자인 KTF, LGT, 신세기통신, 한솔PCS 등이 이미 수 백 만명의 가입자를 갖고 있던 한국이동통신(현재의 SKT)과 경쟁하기 위한 과정에서 출현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도 휴대폰 보조금 규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보조금 경쟁이 과열되면서 휴대폰 단말기의 판매가 급속히 늘어났지만 이는 국가 차원의 낭비라는 의견이 제기됐던 것. 또한 해외 로열티 지급이나 부품 수입에 따른 무역적자 우려도 한 몫 했다.

하지만 휴대폰 보조금은 단기간에 이동통신 시장을 키웠고,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제조업체의 휴대폰 기술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과(過)를 능가할 만큼 공(功)이 컸다는 얘기다.

정부가 이용약관에 보조금 지급 금지 조치를 신설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휴대폰 보조금이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조금 관행이 계속되자 지난 2002년 12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보조금 지급 금지를 법제화했고, 이듬해 3월부터 시행했다. 다만 가입자 증가나 휴대폰 기술발전 같은 보조금의 ‘순기능’도 있었기 때문에 일단 법 조문에 ‘한시적’이란 단서를 붙여두었다.

한시적 보조금 지급 금지법은 3년이 지난 2006년에 일몰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규제의 끈을 놓기가 불안했던지 특정 이동통신사에서 18개월 이상 서비스를 이용한 가입자에 한해 2008년까지 보조금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달며 연장됐다. 그리고 2008년이 되자 마침내 보조금 지급 금지법은 일몰됐다.

휴대폰 보조금이 재차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1년 11월. 이동통신사들이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을 서비스하면서 과다한 보조금 지급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 4세대 LTE 휴대폰은 첨단기능을 탑재한 고사양 제품이었던 탓에 단말기의 가격도 높고, 이에 따라 보조금 지급 규모도 비례해 커질 수 밖에 없었다.

휴대폰 보조금이 나쁘다고 지적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휴대폰 출고가를 부풀린 다음 부풀린 만큼의 돈을 보조금 형식으로 지급한다는 것이 첫 번째고, 왜곡된 이용자 상호보조(cross-subsidy)가 두 번째다.

일반적으로 보조금은 휴대폰 개통 때의 시장환경과 판매조건에 따라 지급되는 규모가 다르다. 이처럼 가입자마다 받는 보조금이 다르다보니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평균적으로 똑같은 액수의 보조금을 썼다 해도 적게 받은 사람이 오히려 많게 받은 사람을 도와주는 상황도 연출되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휴대폰 보조금에 대해 칼을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의 이 같은 매커니즘보다는 가계에서 차지하는 통신비 지출 비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가계 통신비 지출 비중은 수위를 다투고 있다. 또한 통신비 지출 비중 가운데 부담이 가장 큰 것은 휴대폰 단말기 구입비로 데이터 요금과 음성통화 요금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정치권이 놓아 둘리 없다. 국민의 불만 해소는 곧 표(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여야는 지난 2012년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앞 다퉈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놨다. 그리고 이 같은 공약은 대선 공약으로까지 이어져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제정의 배경이 됐다.

   
▲ 미래창조과학부가 단말기 보조금을 규제하는 단말기유통법안의 국회 통과를 추진중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단말기법안은 휴대폰 제조사의 원가를 공개하고, 보조금 내역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업체들의 영업비밀과 경영전략이 고스란히 노출시킬 위험이 있다. 해외 이통사들이 이를 근거로 보조금 추가지원을 요구할 수 있다. 보조금 규제는 소비자들의 이용후생을 저해한다. 이 법안은 결국 소비자와 휴대폰산업, 시장을 모두 위축시킬 수 있다. 방통위 이경재위원장이 지난해말 이통3사의 보조금지급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소비자 후생’이라는 명분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는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휴대폰 보조금을 규제하면 고가의 휴대폰 구매가 줄어들고, 이는 낮은 가격의 제품 생산과 소비를 유도하는 동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낮은 가격의 휴대폰이 시장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 그동안 지급하던 보조금을 데이터나 음성통화 요금 인하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 정부는 이를 위해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외에 제조업체의 판매장려금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다.

일반적으로 휴대폰 가격 부풀리기의 유형은 출고가 부풀리기와 공급가 부풀리기 등 크게 2가지 유형이 있다.

출고가 부풀리기는 이동통신사가 대리점에 제공하는 가격인 출고가를 제조업체가 이동통신사에 공급하는 가격인 공급가에 비해 현저히 높게 책정하고, 이 차액을 보조금 지급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또한 공급가 부풀리기는 향후 지급할 보조금을 감안해 실제보다 공급가를 높게 책정하고,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판매장려금 명목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이 같은 매커니즘을 차단해 ‘낮은 휴대폰 가격, 낮은 통신요금’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실현된다면 이보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없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면 그 만큼 현실성이 없다는 얘기와 같다.

우선 소비자에게 실익이 돌아갈 것인지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제조업체의 판매장려금을 포함한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덕분에 그나마 싸게 구입했던 휴대폰 단말기를 제값 주고 사려니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정부가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자급제 단말기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탓에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자급제 단말기란 이동통신사를 통하지 않고 제조업체나 유통업체에서 직접 구입할 수 있는 휴대폰 단말기를 말하는데, 현재 가입자 수는 25만명 수준으로 전체 휴대폰 가입자의 0.4%에도 미치지 못한다.

당초 정부에 동조하던 시민단체들의 입장도 바뀌고 있다. 단순히 휴대폰 보조금 규제로 소비자들의 휴대폰 단말기 비용 부담과 가계 통신비 절감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휴대폰 제조업체의 입장은 더욱 절박하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은 판매장려금 규모는 물론 휴대폰 판매량 등을 제출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영업비밀 공개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등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가 판매장려금 공개를 강제하는 곳은 없다.

특히 판매장려금과 판매량 공개는 애플 등 외국의 경쟁업체에 영업전략을 그대로 알려주는 꼴이 되는 것은 물론 해외 이동통신사들이 국내에서와 같은 판매장려금을 요구할 수 있어 수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국 경제의 한 축을 떠 받치고 있는 휴대폰 산업에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다.

휴대폰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다를 바 없다. 스마트폰 중심의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상태를 맞으면서 성장세 역시 둔화되고 있는데, 휴대폰 보조금 규제마저 강력 시행되면 성장 모멘텀조차 사라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온갖 규제에도 이동통신사가 보조금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것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투입해서 가입자를 더 데려오면 2년 간 꾸준한 수익원이 되지만 반대로 경쟁사에게 뺏기면 훨씬 많은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초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에 반대하던 이동통신사들이 최근 ‘관망’으로 돌아선 것은 휴대폰 보조금에 대한 비판 여론을 제조업체와 나누어 가지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 동안 휴대폰 보조금과 관련해 이동통신사만 ‘몰매’를 맞았는데, 법이 시행되면 제조업체도 책임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휴대폰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첨단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온 제조업체와 전국적 통신망 및 판매망을 갖추고 영업에 집중한 이동통신사, 그리고 첨단 스마트폰과 고급 요금제를 구매해 사용해온 소비자 등 3자가 절묘한 선순환 구조를 이뤘기 때문이다.

만일 대부분의 소비자가 첨단 스마트폰과 고급 요금제를 구매하지 않고, 그런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낮은 성능의 스마트폰과 수준 낮은 이동통신 서비스 제공에 머물렀다면 오늘의 휴대폰 시장은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휴대폰 제조업체와 이동통신사 등 관련 업계는 가계 통신비 지출 비중이 높은 이유를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 고사양의 휴대폰 단말기 선호, 그리고 많은 사용량 등에서 찾고 있다.

물론 모두 옳은 주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실익도 없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밀어붙일 경우 휴대폰 산업과 시장마저 위축시키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디어펜 = 정구영 논설실장 gychung@mediap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