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선' 불지펴…입신양명과 오월동주 요지경
   
▲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말이 있다.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말로, 제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도 혼자서는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같은 뜻의 영어로 "탱고도 짝이 있어야 (춤)춘다"(It takes two to tango)라는 말도 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협치(協治)' 운운하면서도 야3당은 "청와대와 새누리에 확실히 보여주겠다"며 서슬이 퍼렇다. 그러면서 제20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야당이 제일 먼저 내놓겠다는 법안이 고작 5.18왜곡금지법이고 세월호특조위 연장과 청문회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일엽장목(一葉障目)의 안목으로 국회가 어디로 갈 것인지!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던 대통령 앞에 주석지신(柱石之臣)이 줄 선들 이런 일국삼공(一國三公)의 여리박빙(如履薄氷)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의문이다.
 
밥상다리 하나가 길면 밥상은 뒤뚱거리고 기울어지기 마련이다. 말이 3권분립이지 국회의 무소불위의 권한이 나라를 멋대로 흔들어대고 있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며 벌이는 여야 계파간 기(氣) 싸움이나 야랑자대(夜郞自大)하는 당·청간 불협화음은 결국 정부를 무력하게 만들고 민생을 도탄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제19대 국회가 '식물 국회'라고 비난 받더니 제20대 국회는 앞으로 정부를 '미라 정부'로 만들지 않을까 참으로 염려스럽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 반기문 UN사무총장의 방한 기간 중 언론들의 반기문 총장의 대선 출마 의중에 관한 입방아가 예사롭지 않다. 매체에 따라서는 반 총장을 대선후보로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있을 테고 이와 반대의 의도도 있을 것이다. 반 총장은 미국에 귀임해서도 언론의 과잉반응이라고 해명했지만, 한국에서의 그의 발언들이나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방문하고 서애(西厓) 류성룡 선생 고택을 찾아 정치인들을 만난 그의 속 뜻은 알 길이 없다.
 
한국에서 반 총장은 북한문제에 있어서 "남북 고위급 간에 대화채널을 열고 있다"며 "남북간 대화채널을 유지해 온 사람은 제가 유일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언론이 반 총장의 출마 의사 설을 보도하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반 총장을 내년 대선후보로 기대하고 있는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경솔한 발언이다. 반 총장의 대선출마 여부에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반 총장이 마치 자신만이 개인적으로 남북간 대화채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방한일정을 마치고 지난달 27일 출국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 대기중인 취재진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 총장이 북한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건 한국의 고위급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UN사무총장의 직위로 UN회원국인 북한과 교신하는 대화채널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반 총장의 현재의 북한과의 대화채널은 "남북 고위급간 대화채널"이 아니라 "UN과 북한 고위급간 대화채널"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대선 출마 의사가 엿보이는 반 총장의 발언으로 국내 정치권이 잔뜩 긴장하는 듯하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일 수도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공교롭게도 반 총장의 안동 방문을 이틀 앞두고 안동을 찾았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반 총장 문제에 관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최근 여권 인사들과의 접촉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선 낙선으로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나 대권 꿈을 품고 있는 다른 여권 인사들도 반 총장의 행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정치에 나서는 사람들의 행보를 보면 득롱망촉(得朧望蜀)이란 중국 고사성어(故事成語)가 떠오른다. 우리 속담에도 "말 타면 경마(말고삐) 잡히고 싶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는 등의 말이 있다. 범인(凡人)들은 득롱망촉의 욕심을 버리기 쉽지 않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의당 정대철 고문을 만난 자리에서 대선(大選) 도전 의사를 밝히며 "기회가 된다면 대선 후보에 도전해보려고 하는데 도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식물 국회'의 반식재상(伴食宰相) 또는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고 빈축 살만큼 국민을 실망시켰던 정 전 의장이 제19대 국회 막판에 '상시 청문회법' 상정에 앞장선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법안에 대해서는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조차도 "이 법은 우리가 해 달라고 한 법도 아니다. '정의화 법'이다. 왜 목숨을 거느냐"며 한발 물러섰다. 그래서 정 전 의장이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정 전 의장의 입지는 편치 않게 되었다
 
지난 5월 26일 정 전 의장이 주도하는 싱크탱크 '새한국의 비전(새한국)'이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창립식을 갖고 출범했다. 과거 전직 국회의장들의 임기만료는 대체로 정계 은퇴 수순이었던 것에 반해 이날 '새한국' 창립식은 정 전 의장의 지역구인 부산의 지지자들이 버스까지 대절해 참석하는 등 정 전 의장의 대권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여권의 잠룡(濳龍)들이 이번 총선 결과로 빈사상태가 된 상황에서 노려봄직한 타이밍일 수도 있지만, 정 전 의장이 정대철 고문에게 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어쩐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함 아닌지 염려된다.
 
정 전 의장은 임기 내내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때문인지 의장임기 만료 후에도 지난 20년 동안 몸담았던 새누리당에 복당(復黨)을 거부했다. 이날 창립식에도 야권 인사들이 주축을 이뤘으며, 축사도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등 야권 인사들이 했다. 이번 '새한국'에는 새누리당 비박계나 무소속 의원들 외에 국민의당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고, 더민주로 당적을 옮긴 진영 의원,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 등도 참여했다고 한다.
 
'북한인권법안'이나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의 직권상정 거부 등 정부정책이나 국민정서에 반하는 고집을 부리며 '의회주의자'임을 자처했던 정 전 의장은 퇴임기자회견에서 "퇴임 후 정파를 넘어서는 중도세력의 '빅텐트'를 펼쳐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겠다"고 말했다. 자기 잣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정 전 의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나오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일화가 생각난다.

초(楚)나라 사람이 강을 건너다가 배 밖으로 칼을 떨어뜨리자 나중에 그 칼을 찾기 위해 배가 움직이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칼을 떨어뜨린 뱃전에다 표시를 했다는 뜻으로, 세태의 변화에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29일 오후 경북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 관광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자의 『논어(論語)』 계씨편제16(季氏篇第十六)에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라는 가르침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군자에게는 아홉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으니, 볼 때는 분명하게 볼 것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똑똑하게 들을 것을 생각하고, 안색은 온화할 것을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 말은 충실할 것을 생각하고, 일할 때는 신중할 것을 생각하고, 의심이 갈 때는 물을 것을 생각하고, 화가 날 때는 화낸 뒤에 어렵게 될 것을 생각하고, 이득을 보면 과연 의(義)로운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옥중에서 쓴 유묵 중에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이란 글이 있다. 견리사의는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 에 나오는 견득사의(見得思義)와 같은 의미로 "이득을 보면 과연 의(義)로운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뜻이다. 견위수명은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라는 뜻으로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에 나오는 말이다.
 
정치판에서 상가지구(喪家之狗)의 신세로 밀려났다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국민의 눈에서 멀어지면 수서양단(首鼠兩端)의 꾀로도 염량세태(炎凉世態)의 세상 인심을 헤쳐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파간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소훼난파(巢毁卵破)의 꼴이 된 새누리당의 모습에서 보듯이 오로지 의원직을 지키려고 같은 지역구에서 당적을 바꾸거나 탈당을 서슴지 않는다. 나라를 위한 대의멸친(大義滅親)의 애국심이나 정의감이 없는 사람들이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어부지리(漁父之利) 감투나 탐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구밀복검(口蜜腹劍)의 계책과 감탄고토(甘呑苦吐)의 배신이 판치는 정치판일지라도 정치에 나서려는 사람들이 오로지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욕심과 조바심만으로 오월동주(吳越同舟)한다면 백 번 선거를 한들 나라 꼴이 어찌될 것인가?  /이철영 굿소사이어티 이사·전 경희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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