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방자’와 ‘방약유인’이란 공세는 본질 호도한 대기업 때리기

삼성그룹이 올해부터 신입사원 채용 때 도입하려던 ‘대학총장추천제’를 전면 유보하기로 했다. 이 바람에 대학총장추천제뿐만 아니라 새로 도입하려는 모든 제도가  유보됐다. 삼성 고시(考試) 프레임을 깨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제도가 오해(誤解)의 풍랑으로 좌초한 셈이다.

일반적으로 오해가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수신자의 머리와 마음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선입견이 새로 들어오는 정보의 순수한 입력을 방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물론 전달자의 소통 기술이 부족해 명확히 취지를 전달하지 못한 탓도 있을 수 있지만 전달자가 제대로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수신자의 오해를 제거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일단 ‘판단’을 먼저하고, 그 판단에 비추어 후속 정보를 왜곡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1995년 ‘열린채용제도’를 도입하면서 입사지원서를 제출한 모든 사람에게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응시 기회를 부여해 왔다. 학점, 어학성적 등의 기본 조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기회 균등’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학 졸업자의 취업난이 심화되고, 이 와중에서도 삼성그룹 입사 희망자가 늘면서 SSAT 시험 응시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실제 지난해 10월 실시된 하반기 SSAT 시험에는 10만명이 넘는 응시자가 몰렸고, 상반기까지 합치면 지난 한 해 동안 무려 20만명이 넘는 대학 졸업자가 SSAT 시험에 응시한 것이다. 지난 2010년 7만명 수준이던 응시자가 3년 사이에 3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중 서점가에는 SSAT 수험서만 300종 넘게 나와 있는 상태고, SSAT 시험 준비를 위한 사설학원과 캠퍼스 특강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사교육 시장이 팽창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삼성그룹 취업 준비생이 지난해 SSAT 수험서 구입과 사설학원 및 캠퍼스 특강 등에 사용한 비용만 100억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삼성그룹이 SSAT 시험 대신 대학총장추천제를 채택하려고 했던 것은 인사 채용의 변별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 SSAT 시험을 위한 사설학원은 물론 기출 문제의 보급에 따라 인재 판별의 효력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사설학원 등에서 SSAT 시험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지원자에게 정답을 알려주다 보니 실력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처럼 막대한 사회적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삼성그룹의 행보를 ‘레토릭’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인재 판별의 효력을 높이려는 의도, 그리고 덤으로 낙방자들 사이의 반(反) 삼성 정서를 누그려 뜨리려는 의도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총장 추천이 곧 삼성 입사라는 등식으로 인식되면서 대학 서열화 논란이 불거지고, 특히 호남지역의 추천 인원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차별 논란까지 불거졌다. ‘대학 서열화’와 ‘지역차별’이 삼성그룹의 새로운 채용제도를 좌초시킨 키 워드가 된 셈이다.

사실 삼성그룹의 새로운 채용제도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는 있었다. 할당된 추천 인원이 대학별,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그룹이 재단으로 있는 성균관대학이 가장 많은 115명을 할당받고, 호남지역 대학들의 할당 인원은 영남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었다. 여자대학의 할당 인원도 적었다.

삼성그룹은 이공계 인력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을 구분했다고 한다. 경북대와 전남대를 비교했을 때 경북대는 100명, 전남대는 40명의 추천권이 배정된 것도 경북대는 전통적으로 전자공학과가 우수하고 인원도 많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전수조사(全數調査)를 해보면 알겠지만 전혀 근거없는 해명은 아닌 듯 하다. 삼성그룹과 산학협력을 통해 특성화 학과를 개설·운영하고 있는 한양대의 할당 인원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이 총장 추천 인원을 차등적으로 할당한 것은 대학별로 서열을 매기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입사 선호 순위 1위를 달리는 삼성그룹이 어느 대학에 몇 명을 추천해 달하고 했다는 것은 그 대학을 그 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총장의 추천을 받더라도 서류전형만 면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총장 추천이 곧 입사는 아니라는 말도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할 바에야 모든 입사 희망자를 대상으로 서류전형을 실시한 다음 삼성그룹이 원하는 인재상과 투명한 절차에 따라 SSAT 시험 응시자를 최소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총창 추천을 반드시 받고 싶으면 학점과 인성 등 기준을 제시하고 대학에 재량껏 추천하게 하되 대학이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을 추천하면 탈락시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서열화 논란은 ‘뜨거운 감자’다. 찬반 논리가 너무나도 극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학은 일반 상품과 다르다는 것이다.

상품은 품질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값이라면 좋은 품질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소비자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이에 따라 좋은 상품에는 사람이 많이 몰리고, 나쁜 상품에는 적게 몰린다. 누가 보더라도 자명한 시장의 이치다.

물론 좋은 상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에 비해 좋은 상품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이 그 권리를 향유할 수는 없다. 구매자 역시 시장의 원리에 지배받지 않을 수 없다. 불이익이야 당하겠지만 경쟁을 통한 발전의 필연적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은 이 같은 범주에 넣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대학은 교육이라는 숭고한 목적이 존립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목적이 없다면 대학이 매년 엄청난 액수의 혈세를 별다른 성과도 없이 가져다 쓰는 일은 용인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간 경쟁이 교육 및 연구 여건, 명망있는 교수진, 훌륭한 시설보다는 학벌에 의해 좌우된다. 학벌은 한 번 형성되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아래에 있는 대학이 상위로 올라오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계급적 위치의 재생산이라고 규정할 정도다.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대학 서열화는 언제나 민감한 주제며, 건드려서는 안될 일종의 성역(聖域)처럼 여겨지곤 한다.

삼성그룹이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다만 채용제도와 같은 민감한 사안은 이해의 범위를 최대한 넓히고, 오해의 범위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논란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삼성그룹은 전체 대졸 공채 합격자 가운데 35%를 지방대 출신에게 할당하고, 소외계층에서 합격자의 5%를 뽑는 등 인재 채용에 있어서도 기회 균등을 포함한 사회적 보편가치를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재차 언급하지만 오해의 소지는 있었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채용제도 개선 취지마저 반(反) 삼성그룹, 또는 대기업 때리기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조국 교수는 대학총장추천제 논란과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명문대의 서열이 삼섬 할당제 숫자로 바뀌고, 각 대학은 할당 숫자를 늘리기 위한 대(對) 삼성 로비에 나설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특히 “오만방자와 방약무인, 전 세계에 유례없는 일”이라는 말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언급에서는 마치 기업들이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 사회 모든 부문에 해악을 끼치는 괴물인 것처럼 인식시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도한 해석일까.

[미디어펜 = 정구영 논설시장 gychung@mediap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