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내세운 이명박의 실패…중도는 허상, 이념적 혼란 빠뜨리는 정치공학
자유경제원은 7일 리버티홀에서 생각의 틀 깨기 7차 세미나 ‘애매한 중도가 세상을 망친다: 중도는 없다’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이념에는 중도가 없다”며 “사상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좌-우를 잡탕으로 섞어 ‘중도’라 칭하는 것은 무소신(無所信)을 감추기 위한 철학 없는 정치인들의 변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안철수의 ‘새정치’는 잡탕정책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며 “경제는 좌파, 안보는 우파라는 이념적 이종교배(異種交配) 또는 부정합을 대단한 사상이나 정책인양 내세우며 선거에서 중간층 표를 끌어 모아 승리하려는 정치공학”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은 최악의 실패를 가져온 정책”이라며 “포퓰리즘 정책과 동반성장이라는 명분쌓기로 끝났다”고 언급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좌우 이념은 없고 중간 투표 성향의 유권자만 규합하려 한다”며 “무이념·무소신의 기회주의가 잠시 국민을 속이고 표를 얻을 수는 있으나 중도(?)라는 무소신 이념으로 국가를 개혁하고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협치에 관해 김 교수는 “지난 4·13 20대 총선의 결과를 두고 더민주 등 진보좌파 및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협치를 넘어 연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4·13 총선은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궁극적으로 국회의 세력관계를 결정하는 총선이었지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운영을 결정한 대선이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국민이 국회를 3당 체제로 운영하라고 한 것이지 대통령직 수행을 야당과 협의하여 하거나 또는 야당의 동의를 근거로 통치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보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아래 글은 김인영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중도(中道)는 허상(虛像)이다

I. 무이념·무소신의 이념 잡탕의 정치 

최근 한국정치에서 중도(中道)의 가면을 쓰고 무이념·무소신으로 국민을 이념적 혼란에 빠뜨리는 문제가 심각하다. 경제는 진보(좌), 안보는 보수(우)라고 자칭하는 정치인이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를 맡았었고, 더민주의 회의실 배경막에는 ‘살피는 민생, 지키는 안보’라는 문구가 걸렸다.1) 국민의당 공동대표이자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안철수의 ‘새정치’는 잡탕정책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 경제는 좌파, 안보는 우파라는 이념적 이종교배(異種交配) 또는 부정합을 대단한 사상이나 정책인양 자랑스레 내세우며 선거에서 중간층 표를 끌어 모아 승리할 수 있는 전략으로 주장하고 있다.2) 

사상의 자유가 존재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좌-우를 잡탕으로 섞는 것은 무이념(無理念)과 무소신(無所信)을 감추기 위한 철학 없는 정치인들의 변명일 뿐이다. 이념에는 중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는 한편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음을 칭찬하고 중간의 길, 즉 중도(中道)를 택하는 것을 미덕으로 보는 문화적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무이념이나 무소신을 대단한 사상 내지는 양쪽을 초월한 사상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4·13 총선에서 김무성, 유승민, 이동관 후보는 ‘따듯한 보수’를 천명했다. 과거에는 이회창씨가 “포퓰리즘을 배제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우파정책”의 의미로 따뜻한 보수를 주장했었다. ‘따뜻한 보수’에는 보수는 차갑다는, 냉정하다는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 좌파적 복지정책을 보수우파에 끼워 넣기 위해 만든 용어로 정체성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경제는 좌파, 안보는 우파라는 반대의 이념 조합이 지속가능한 것인가이다. 반대 이념의 조합이 진정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경제를 사회적 경제라는 이름으로 ‘좌클릭’을 하게 되면 선거를 치를 때마다 더욱 좌편향 정책으로 나아갈 것이며 또한 경쟁하는 정당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정책 경쟁이 붙게 되면 더욱 좌편향 정책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안보 관련 이유도 함께 좌편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설립한 ‘새한국의 비전’의 박형준 원장은 ‘중도보수’, ‘개혁보수’를 대변할 정치세력을 만들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약 55%는 보수 지형에 속해 있는데, 이 가운데 20~25%는 중도보수 혹은 개혁보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3) 보수-진보 또는 좌우라는 이념은 안중에 없고 투표 성향이 중도쯤에 있는 세력을 대변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서양의 정당들은 좌·우에 튼튼한 정치적 기반을 두고 중간으로 이념을 확장하여 선거에 승리하는 것인데 이를 거꾸로 좌우 이념은 없고 중간 투표 성향의 유권자만을 규합하는 노력은 뿌리가 없는 확장이다. 종국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던 경제는 좌파, 안보는 우파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정책들은 이념적 혼란을 겪다가 결국 안보가 좌로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좌파 경제정책은 우파 안보정책과 조화될 수 없고, 또 좌파세력이 우파 안보정책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적 중도라는 것조차 구체적으로 ‘중간’이 어디인지 명확하지 않아 기회주의적이고 이념 없음을 감출 목적으로 애매한 중도라는 명칭을 사용할 뿐이다. 한국정치에서 이념잡탕 또는 무이념·무소신의 기회주의가 잠시 국민을 속이고 표를 얻을 수는 있으나 중도 이념으로 국가를 개혁하고 정치적으로 성공한 사례는 없다. 

   
▲ 안철수의 '새정치'는 잡탕정책으로 정체성이 모호하다.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경제는 좌파 안보는 우파'라는 이념적 이종교배(異種交配)를 대단한 정책인양 내세우며 중간층 표를 끌어 모아 승리하려는 정치공학을 선보였다./사진=연합뉴스


II. 무이념·무소신의 ‘중도’ 정치는 성공하지 못한다4)

보수주의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정당(政黨, party)을 ‘합치된 노력으로 국가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모두가 동의하는 어떤 특정의 원칙에 근거해서 뭉친 사람들의 집합체’로 정의했다. ‘특정의 원칙’이란 정당의 이념과 정강정책(政綱政策)을 의미하며, 정당의 정체성(identity) 확립에 필수적인 항목이다. 따라서 ‘일정한 원칙을 가지고 정권 획득을 위해 뭉친 집단’은 정당이고, ‘특정 인사를 중심으로 무원칙하게 모인 집단’은 도당(徒黨)이 된다. 

한국의 대부분의 정당이 그러하듯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역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뭉친 도당이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서 공천 파동을 겪으며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쉬지 않고 싸움질만 하다가 분당하자는 말까지 나오는 것 역시 정당이 이념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 모인 도당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나아가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여 국민의당을 창당한 것은 정치 이념과 정책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당권과 공천권, 정당 운영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한국의 정당은 실제적으로는 인물 중심의 도당에 머물러 있기에 인물이 합류하고 탈퇴함에 따라 정당 명칭이 바뀌고 또 새로운 정당이 태어나는 불안정한 정당체계(party system)를 보이고 있다. 정당이 쉽게 이합집산 하는 이유는 정당이 근거하고 있는 이념적 정체성이 불문명하기 때문에 생기는 한국 정당의 고질화된 특징이다.

하지만 우파든 좌파든 자신의 이념을 감추기 위해 중도라고 어정쩡하게 표현하려 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것이고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선거 전략으로서의 중도와 통합은 있을 수 있지만 이념의 중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차 세계 대전 후 유럽에서 이데올로기가 쇠퇴함에 따라 유럽 각국의 중요 정당들이 포괄지지정당(catch-all party) 형태로 변화한다고 오토 키르크하이머(Otto Kichheimer)가 주장했지만 이 현상은 투표자를 폭넓게 잡겠다는 선거 전략(catch-all strategy)으로 좌-우 진영의 굳건한 정당 지지기반 위에서 일어난다. 

한국에서 일부 정당은 좌파적 성향을 감추기 위해 ‘진보’ 정당으로 포장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자신들의 정책이 좌파적이 아니고 진보적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은 변화하는 세계를 외면한 채 가장 완고하게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정당일 뿐이다. 그리고 실패한 사회주의를 “사회주의를 한 적이 없으니 사회주의는 실패한 적이 없다”고 강변하는 이념적 역사적 퇴보 집단일 뿐이다. 허구적인 이념에 바탕을 둔 중도뿐만 아니라 ‘진보’ 또는 ‘진보정치인’이라는 규정도 바른 명칭이 아닌 거짓된 명칭이다. 

본래 한국에서 보수-진보라는 명칭은 우파-좌파의 이념적 명칭 대신 잘못 붙여져 시작되었음은 이미 밝혀졌다. 해방 이후 좌파 집단은 좌파 이데올로기를 탈색하여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고, 또 6·25 전쟁 이후에는 ‘반공(反共)’을 국시로 삼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좌파-우파 대신 진보-보수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극우를 보수로, 극좌를 진보로 표기한 일본식 용어 사용을 분별하게 도입하여 관행(慣行的)으로 정착시킨 한국사회 언론과 정치권에도 책임이 있다. 진보-보수로 정당의 이념을 지칭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해방 이후 좌파는 서구의 매력적인 개념을 도입한다는 의도 아래 전략적으로 ‘진보’와 ‘민주주의’를 선점하여 사용하며 자신들의 이념적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았다. 초기에는 대중에게 긍정적이고 쉽게 받아들여지는 서양식 용어를 차용하였고, 이후 국제적 냉전이 심화되자 ‘빨갱이’ 색깔공세를 피하려 했던 의도가 있었다. 나아가 보수라는 명칭도 좌파가 우파의 이념을 폄하하고 또 우파를 독재(우호)세력이라고 낙인찍기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렇게 진보좌파 세력이 좌파-우파 대신 진보-보수 용어 사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해방 이후 보수를 친일로 매도하고 없어져야 할 세력으로 몰아갈 수 있는 효용성 때문이다. 사실 ‘보수’는 억울하게 보수=친일=없어져야 할 세력으로 매도 당해왔다. 이렇게 기본적으로 ‘보수’는 ‘진보’보다 수세적 입장에 있어왔다. 하지만 ‘보수’에 대해 도덕적·윤리적 프리미엄을 가지고 출발한 자칭 ‘진보’는 ‘말 진보’, ‘입 진보’라는 일반 대중의 비아냥과 비판에서 보듯이 ‘대안 없는 비판’과, ‘대한민국에 대한 정체성 부정’, 그리고 역사적 퇴행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정치체제를 옹호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뭉치게 되었던 것이다. 

즉,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프레이밍(framing)에 매몰되어 역사와 현실태(現實態)에 대한 이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그리고 보수는 나쁘고 진보는 옳고 좋다는 주장을 하는 정당과 정치인의 독선주의(獨善主義)적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나아가 지난 2012년 18대 대선과 2016년 20대 총선에서 크게 유행하였던 경제민주화 역시 이념적 좌파이론인데 이는 우파 정권의 정책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당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당과 이념적 적합성이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 4·13 총선에서 김무성, 유승민, 이동관 후보는 '따듯한 보수'를 천명했다. 이는 좌파적 복지정책을 보수우파에 끼워 넣기 위해 만든 용어로 정체성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을 발의했던 유승민 의원이 더욱 그러하다./사진=연합뉴스


III. 무이념·무소신의 ‘중도’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은 최악의 실패를 가져온 정책이었다. ‘중도실용’과 함께 내세운 것이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철학이었는데 보수도 진보 못지않게 교육ㆍ빈곤ㆍ의료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지지 기반 확충을 노린 것이었다. 하지만 보수가 진보적 아젠다와 이슈를 채택한다고 해도 그것은 진보에 이길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정체 불명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론을 김동길 교수는 "우왕좌왕 기회주의"라고 평가했다. 해방 정국에 중간에서 어정대던 기회주의적인 세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은 1년도 지속하지 못하고 결국 친서민 (포퓰리즘) 정책, 동반성장론으로 이어졌다. 

정책으로서의 중도내지는 ‘제3의 길’이 존재하지 않음은 이미 영국 토니 블레어(Anthony Blair) 수상의 ‘제3의 길’(The Third Way) 전략이 보여준바 있다. 토니 블레어 시기의 앤소니 기든스(Anthony Giddens)를 포함하여 역사적으로 ‘제3의 길'은 좌-우의 통합을 결과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실패한 실험으로 끝났다. 

‘제3의 길’은 대단한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끝났다. ‘제3의 길’의 핵심은 사회주의 복지가 아니라 ‘생산적 복지’ 즉 복지에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주장했기 때문에 좌파로부터는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는 사상으로 나아가 좌파의 이탈로 비난을 받았으며 우파로부터는 시장의 핵심 개념인 효율성과 경쟁을 강조하려했다면 제3의 길이 아니라 결국은 자본주의의 길이니 명칭을 분명히 하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비슷한 일이 『조선일보』 등이 강조한 자본주의 4.0 또는 ‘따뜻한 보수’5)에 대한 강조였다. 결국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복지비용을 국가가 감당할 수 없으니 대기업이 부담하라는 일종의 ‘대기업 때리기’와 다음이 없었다. 이는 기업의 본질에 대한 언론의 이해 부족으로 시작된 것인데 기업의 본질적 기능은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을 통하여 저렴하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데 이를 간과한 좌-우 잡탕의 사고였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걸치기가 유권자의 지지를 일시적으로 끌어 모을 수 있으나 제3의 길도, 중간지대도 없음을 유권자가 곧 알아채기 때문이다. 

IV. 중도 협치와 연정은 성공하지 못한다

4·13 20대 총선의 결과를 두고 진보좌파 및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협치를 넘어 연정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보이는 ‘무소신·무이념’ 입법행태와 동일한 연장의 주장으로 보인다. 협치((協治)는 말 그대로 ‘협력 정치’의 줄임말로 법안 통과를 위해서 여당은 야당에 협조를 구하고, 야당은 여당에 협력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의 협치는 과거 국회에서도 지속적으로 해왔고, 19대 국회에서는 소위 ‘선진화법’으로 여야의 합의에 의한 법안 통과를 제도화하였다. 협치가 여야 협력의 문화를 의미한다면, 초다수결 원칙의 선진화법은 협치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이렇게 협치란 정당 간에 서로 협력하라는 정도의 의미인데 이를 ‘공동 통치’라는 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과도하게 연정을 주장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헌법 제70조(대통령의 임기)는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하여 중임할 수 없다.”고 못 박고 있다. 5년의 임기 동안에는 대통령 ‘소신껏’ 행정을 이끌어 가라는 ‘민의’의 표출이 201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시 말해 4·13 총선은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궁극적으로 국회의 세력관계를 결정하는 총선이었지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운영을 결정한 대선이 아니었다. 즉, 국회를 3당 체제로 운영하라고 한 것이지 대통령직 수행을 야당과 협의하여 하거나 또는 야당의 동의를 근거로 통치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해석하는 진보좌파 언론과 일부 이념 불명의 언론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결국 언론과 방송, 그리고 야당이 주장하는 협치는 ‘소신과 원칙’, 즉 이념이 맞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이념 부재의 국회를 넘어 정부까지 ‘무소신·무이념’으로 운영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파와 좌파의 연정은 성공의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정치에서 우파와 좌파가 연정을 한 유일한 예는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의 공동정권의 사례이다. 그러나 DJP 연합은 1997년 대선 승리 이후 연정으로 권력을 공유했지만,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문제, 즉 이념 문제 때문에 파탄에 이르게 된다. 이념이 다른 두 정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야합한 것이기에 내각제 개헌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DJP 연합이라는 중도 연정의 본질은 호남과 충청의 권력 나눠먹기였다. 그 권력 나눠먹기조차 이념이 다른 경우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된다.6)

   
▲ 4·13 총선은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궁극적으로 국회의 세력관계를 결정하는 총선이었지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의 운영을 결정한 대선이 아니었다. 국민잉 국회를 3당 체제로 운영하라고 한 것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


혹자는 2013년 4월의 이탈리아 중도 좌파 민주당(PD)과 중도 우파 자유국민당(PDL)의 연립정부를 예로 들어 좌우 연정이 가능함을 주장한다. 하지만 좌파 민주당과 우파 자유국민당의 연정은 9월 28일 자유국민당 소속 장관 5명이 부가가치세 추진에 반대해 전격 사퇴하면서 약 5개월 만에 붕괴되는 수준으로 갔었다. 단지 재신임 투표에서 레타총리가 승리한 이유는 자유국민당 소속 의원들이 이탈리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연립정부 유지에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7)

오스트리아의 경우 지난 5월 23일 끝난 대선 투표에서 무소속 알렉산더 판데어벨렌(72)가 득표율 50.3%로 득표율 49.7%의 자유당 노르베르트 호퍼(45) 후보에 승리하였다. 하지만 연정을 이끌고 있는 중도좌파성향의 사민당(SPO)과 중도우파성향의 국민당(OVP)이 대통령 선거 결선에 진출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대선 1위 후보를 낸 극우 자유당(난민 유입에 반대)과 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정도이다.

사실 연정이란 대통령제가 아니라 다당체제의 내각제 국가에서 과반을 넘는 정당이 없는 경우 정부를 구성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식이다. 양당체제를 가진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한국정치에서든 세계정치에서든 우파와 좌파는 대결의 상대이지 연정의 파트너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성공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남경필 경기도 지사가 실험하고 있는 연정이란 지방정부 차원에서 일부 인사권을 야보하고 예산을 나누는 정도이다. 따라서 여야의 소통과 협력이라는 정치적 이벤트이지 권력의 공유나 책임의 공유를 의미하는 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책임정치의 실종으로 앞으로의 선거에서 국민은 실정에 대하여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혼란스러울 것이다. 정당정치가 정착되어 있는 정당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면 연정은 제도적으로 의미를 가지기 어렵고 성공하기도 어렵다.

V. 중도 통일은 없다

일부 진보좌파 학자, 언론, 및 야당 세력은 남북한 통일 이후의 체제로 우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치 ‘제3의 이념’이나 ‘제3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이야기하고 또 가정(假定)하고 있다. 대한민국 내의 종북세력이 현재의 북한 주체사상 체제가 독재와 인권 탄압, 그리고 경제적 파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적 흐름이나 남북한 대결의 결과로 보았을 때 남북한의 통일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되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념적 흡수 통일을 일부 좌파 세력은 마치 남북한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로 반발하고 있지만 동서독 통일도 동독의 서독의 기본법에로의 편입에 의한 흡수통일이었음을 간과하고 있다. 동서독 통일은 동독이 서독체제로 편입된 통일이라서 평화적이었다.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평화 통일만 강조하는 ‘중도적’ 통일 교육과 통일 의식의 강조는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 김일성의 전체주의의 중간 노선은 중도도 아니고 통합도 아니어서 결국은 나뉘어져 대립으로 6· 25전쟁까지 치렀듯이, 궁극적으로 터지고 말 갈등의 일시적인 봉합일 뿐이었다. 정당인들이 주장하는 이념의 중도와 통합은 갈등의 봉합일 뿐이지 진정한 해결책으로 기능하지 않는 사례가 대부분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1)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6월 1일 해병대를 방문하여 “6·25 사변을 겪은 지 66년이 되는데도 아직 우리는 정상적 평화 체제를 구축하지 못하고, 북한은 계속 무력 증강에 혈안이 돼서 남북 관계의 진척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는 진보좌파적 경제민주화를, 안보는 북한의 무력 증강을 비판하는 보수우파적 이념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국방위원회를 지원한 더민주 의원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도 되었다. 안보 보수로 말은 하지만 사고와 행동은 변화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우상, “해병대 방문, 경제 TF… 더민주는 집권 연습중?,” 『조선일보』 2016년 6월 2일.

2) 국민의당은 ‘중도 빅텐트론’을 주장하며 ‘합리적 보수와 중도 진영’ 정치세력을 합류시키고 싶어 한다. 호남 편중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책이지만 ‘합리적 보수’와 ‘비합리적 보수’의 구분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5월 25일 퇴임기자 회견에서 “중도세력의 빅 텐트”를 위한 제4신당 창당을 언급했다. 정계의 ‘빅텐트론’ 역시 중도라는 이름하에 이념이 불분명한 정치인들을 모아 잡탕 정치세력화 하겠다는 것인데 이념이 부재하니 인물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고 선거 때만 되면 분당과 신당창당이라는 정치인 이합집산의 원인이 된다.

3) "박형준 ‘중도보수 대변 정치세력 필요...유승민 역할 가능’", 『연합뉴스』, 2016년 5월 31일. 

4) 김인영, “‘중도’와 ‘통합’은 없다,” 자유경제원 토론회 「20대 총선 - 속지말자 ‘정치용어’」 (2016년 1월 12일) 토론문에서 일부를 수정하여 전제함.

5) 4·13 총선에서 김무성, 유승민, 이동관 후보는 ‘따듯한 보수’를 천명하였다. 보수는 차갑다는, 냉정하다는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 과거에는 이회창씨가 “포퓰리즘을 배제한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우파정책”의 의미로 따뜻한 보수를 주장하였다. 

6) 김인영, “정치 용어일 뿐인 ‘協治’에 대한 迷妄(미망), 『문화일보』, 2016년 5월 18일.

7) 남민우, “伊총리 의회 신임 확보…'연정붕괴 위기 모면'.” 『조선일보』, 2013년 10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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