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격차 없이 스크린 점유하려는 독립영화…'무상예술' 늪에서 벗어나야
자유경제원은 '자본'과 '예술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논해보려는 취지로 지난 3일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이용남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는 “다이나믹하게 변해가고 있는 중국 영화산업 변화의 중심은 바로 자본”이라며 “한국 영화산업 성장의 원동력도 자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 교수는 “한국 영화의 가능성에 할리우드가 몰려오면서 워너브라더스의 <밀정> 투자, 넷플릭스의 <옥자> 투자 및 폭스의 <곡성>(2016, 나홍진) 투자 등은 해외 자본이 한국영화 시장에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자본을 품어 흥행한 독립영화로 <워낭소리>(2008, 이충렬), <똥파리>(2008, 양익준), <피에타>(2012, 김기덕),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진모영) 등을 언급하면서 “성공의 이면에는 자본의 수혜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독립영화계 일각에서 ‘모든 독립영화가 경쟁과 격차 없이 균등하게 스크린을 확보해야한다’는 발상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아직도 예술이 자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하며 “자본이란 수단이며, 대가이며, 목적이고 예술가에게 자본은 창조성과 상상력의 원천이며 경제적 안정”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독립영화계가 피칭’(pitching)을 통한 제작지원,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한 배급과 유통 지원의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본의 필요성에 대한 반증”이라며 “자본을 비난하던 독립영화계의 실상은 자본을 희망하며, 자본 중에서도 개인자본이 아닌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본을 사랑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그들의 주장처럼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왜 공적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며, 그것을 위해 왜 영화관을 만들어주며, 상영을 확대해주어야 하는가”라며 “독립영화계는 이제 그만 무상예술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는 “독립영화계의 자구적 개선노력이야말로 독립영화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자립적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래 글은 이용남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예술은 자본을 희망한다

“예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가능한가?”라는 논제를 두고 최공재 영화감독과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가 발제를 한다. 최공재 감독은 「자본과 재능의 콜라보로 완성된 이름, 예술(ART)」이라는 발제를 통해 “예술이든, 자본이든 모두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수단”이기에 “그것(자본)에 증오를 보낸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 발전에 대한 반대 의견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본과 재능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별개의 존재가 아닌 콜라보를 이루어 같이 가야만 하는 목적지가 같은 가치들이며, 그걸 이해한다면 답은 나오게 된다.”라며 그 근거로 신소재인 ‘와블라(Worbla)’와 도시 ‘상해’를 근거로 제시한다.

이문원 평론가는 「문화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발제를 통해 <스타워즈 Star Wars>(1977, 조지 루카스) 시리즈를 근거로 미국과 한국의 상이한 독립영화의 개념을 설명한다. 한국의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공적자본에의 종속을 원하며”, “민간자본이 상징하는 시장에서의 자유가 아닌, 공적자본에의 종속을 통한 경쟁 회피. 그런 점에서 이 지극히 사회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종속 지향의 반자유적 집단이 추구하는 ‘독립영화’ 개념은, 엄밀히 말해, ‘종속영화’ 또는 ‘기생영화’라 불려야 마땅한 일이다.”라고 주장한다.

발제자들이 제기한 논의에 문제점은 없으며, 예술생태계에 만연한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왜곡된 진실을 직시하는 기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본 토론문은 발제자들의 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근거들을 보충하고자 한다. 

   
▲ 한국 영화의 가능성에 할리우드가 몰려오면서 워너브라더스가 <밀정>(2015, 김지운)에 100억 원, 폭스가 <곡성>(2016, 나홍진)에 100억 원, 넷플릭스가 <옥자>(2016, 봉준호)에 500억 원을 투자하였다./사진=영화 '곡성' 포스터


1. 자본, 변화를 가져오는 발전의 원동력

중국의 영화산업이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있다. 한양대 박정수 교수는 그의 저서 『중국영화산업』에서 “2012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영화 시장으로 올라선 중국은 매년 30% 안팎의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세계 1위인 미국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2002년 단 100편에 불과했던 중국 영화제작 편수는 2014년 618편으로 급증했다. 극장 수입은 10억 위안에서 296억 위안으로 30배 성장했다. 제작 편수에서는 이미 할리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한다.  

중국 영화산업에서 일어난 변화의 중심은 바로 자본이다. 10년 전만해도 자본이 부족해 불안했던 중국 영화산업이 최근에는 자본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반전의 모멘텀은 ‘체제 전환’과 ‘시장개방’이다. 영화 시장의 문이 열리면서 중국은 대대적인 산업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또한 중국에 부는 한류 열풍의 중심도 자본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 변화는 한류가 중국내에서 흥행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이처럼 자본과 예술은 공생의 관계이며, 자본은 예술과 사회의 혁신과 발전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한국 영화산업 성장의 원동력도 자본이다.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은 한국영화의 보호막을 걷고 체질을 강화시켰다. 생존을 위한 경쟁은 계속되었다. 그 결과 1000만 관객 영화 등장, 연간 2억 명이 넘는 영화관 관객 수 기록, 매년 50%를 넘어서는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을 만들며 수익성 측면에서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정받았다. 

한국 영화의 가능성에 할리우드가 몰려오면서 워너브라더스가 <밀정>(2015, 김지운)에 100억 원, 폭스가 <곡성>(2016, 나홍진)에 100억 원, 넷플릭스가 <옥자>(2016, 봉준호)에 500억 원을 투자하였다. 이는 막대한 제작비와 전 세계적 배급망, 해외 자본의 움직임이 한국영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2. 예술이여, 자본을 거부할 수 있는가?

자본을 품은 독립영화 <워낭소리>(2008, 이충렬), <똥파리>(2008, 양익준), <피에타>(2012, 김기덕), <한공주>(2013, 이수진),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진모영), <소셜포비아>(2014, 홍석재), <도희야>(2014, 정주리) 등 많은 한국의 독립영화들이 흥행을 했다. 그 이면에는 자본의 수혜가 있었다.

최초 6개관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영화시장에서 문화소비자(관객)들의 선택을 받아 최종 274개 스크린으로 상영이 확대되면서 관객 296만 명에 192억 원이라는 수익을 만들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총 806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면서 관객 480만 명에 흥행 수익 375억 원을 기록하면서 독립영화계의 신화를 만들었다. 이것은 일반 상업영화도 얻기 힘든 결과다. 

독립영화는 관객 1만 5천 명이 넘으면 대박이다. 그런데 <똥파리> 12만 명, <낮술>(2008, 노영석) 2만 5천 명, <피에타> 60만 명, <한공주> 22만 명, <족구왕>(2013, 우문기) 4만 6천 명, <뫼비우스>(2013, 김기덕) 3만 5천 명, <소녀>(2013, 최진성) 2만 명, <잉투기>(2013, 엄태화) 1만 7천 명,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장건재) 3만 6천 명, <소셜포비아> 25만 명, <도희야> 10만 명, <경주>(2014, 장률) 6만 3천 명, <파울볼>(2015, 조정래) 3만 1천 명,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홍상수) 8만 명 등 2009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흥행작품들이 등장하면서 독립영화의 제작과 산업 환경의 부흥을 만들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배급했던 ‘CGV 아트하우스’나 ‘인벤트디’를 통해 개봉한 <경주> 등 흥행을 기록한 독립영화 대부분은 자본의 전략을 통해 배급되었다. 즉 독립영화계가 비난하고 혐오한 자본을 통해 활성화를 도모한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본을 거부하고 부정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독립영화의 아름다운 흥행은 독립영화인에게 경쟁의 의미를 알려주었고, 성공의 동기부여를 일으켰다. 대형 배급사 자본의 배급 전략은 ‘관객 동원’과 독립영화계에서는 가능성이 희박했던 ‘제작비 회수’ 등 자생력의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이제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이며, 자본주의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독립영화계에서 그 수혜자는 소수에 불가하며, 하나의 독립영화가 많은 수의 스크린을 확보한다면 다른 독립영화가 확보할 수 있는 스크린 수가 줄어든다고 하소연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립영화가 경쟁과 격차 없이 균등하게 스크린을 확보해야한다는 발상 자체야말로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 

또한 독립영화 내부의 격차 문제도 거론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의 문제가 아닌 문화소비자인 관객의 선택 문제이다. 문화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것을 자본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독립영화 생산자들은 최소한의 대중성과 예술성을 인정받는 영화를 제작해야 한다.  

영화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경쟁과 격차는 독립영화인들이 자본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한국 독립영화의 다양성과 경쟁력도 확보될 것이다. 이는 한국영화의 제 4의 도약을 만드는 원천이 될 것이다. 이것이 자본이 지니고 있는 선순환구조의 힘이다. 

아직도 예술이 자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자본이란 수단이며, 대가이며, 목적이다. 예술가에게 자본은 창조성과 상상력의 원천이며, 경제적 안정이다. 야누스의 가면을 벗고 진중하게 물음에 답해보자. 예술이여, 진정 자본을 거부할 수 있는가?

   
▲ 이용남 교수는 "독립영화계 일각에서 '모든 독립영화가 경쟁과 격차 없이 균등하게 스크린을 확보해야한다'는 발상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자료사진=영화 '곡성' 스틸컷


3. 무상예술을 걷어차고, 당당하게 경쟁하라

독립영화계는 자본을 희망한다. 그들이 피칭’(pitching)을 통한 제작지원,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한 배급과 유통 지원의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자본의 필요성에 대한 반증이다. 자본을 비난하던 독립영화계의 실상은 자본을 희망하며, 자본 중에서도 개인자본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자본을 사랑한다. 그 요구의 수용과 미수용 사이에서 자본의 옹호와 비판의 시이소오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밀양 아리랑>(2014)의 박배일 감독은 “피칭 본선에 함께 올라온 이들이 가까운 동료들이었죠. 경쟁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붕괴>(2014)의 이원우 감독은 “저는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을 반대하고 불쾌하게 느끼거든요. 피칭 역시 영화판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느껴져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참가할 의향은 없습니다.” <무노조서비스>(2014)의 이병기 감독은 “피칭은 일종의 경쟁이고, 그 경쟁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 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발표에 큰 자신이 없거든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마음속에 답답함이 생겼죠.” 

<파티51>(2013)의 정용택 감독은 “영화진흥위원회가 현재 책정하고 있는 독립영화 제작, 배급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설사 흥행이 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제작비용을 보전 받고 다시 차기작을 제작할 수 있게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박배일 감독은 “공동체 상영으로 개봉하면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땐 홍보를 안 해도 사람들이 찾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영 공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박 감독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독립영화가 활발하게 생산될 수 있는 지원체계 확보”, “다양한 지역에서 독립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독립영화 전용관 확대”,  “멀티플렉스에 한국 독립영화 쿼터제 실시”, “극장이 아닌 상영시설을 통해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비상설극장 프로그램 확대”를 주장한다. 

-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이슈와 현장, 독립영화와 자본사이 93호, 94호, 95호 기사 중

이것이 이문원 평론가가 주장한 ‘종속영화’, ‘기생영화’의 실체이며, 속내이다. 그들은 자본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평가를 거부하는 것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경쟁이 두렵기 때문이며, 발생할 격차가 두렵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경쟁하지 못하고, 캥거루처럼 공적자본의 주머니 속에서 야누스의 두 얼굴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주제와 내용적 측면에서 자본의 비판은 감독의 가치관이나 시선의 문제가 아닌 작품의 배급과 유통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소재주의의 선택 사항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존재한다. 그러나 다수의 독립영화인들은 각자의 흥행을 위해 자본을 희망하면서, 자본을 비판하는 위선과 모순을 생산한다. 

   
▲ 최초 6개관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영화시장에서 문화소비자(관객)들의 선택을 받아 최종 274개 스크린으로 상영이 확대되면서 관객 296만 명에 192억 원이라는 수익을 만들었다./사진=영화 '워낭소리' 포스터


독립영화계는 자본을 절실히 염원한다. 하지만 자본의 사용에 있어 어떤 책임이나 평가도 거부한다. 그 이유는 예술의 공공성, 자율성, 독립성 때문이란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고,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것은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묻고 싶다. 그들의 주장처럼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 왜 공적자본의 투입이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며, 그것을 위해 왜 영화관을 만들어주며, 상영을 확대해주어야 하는가? 진지하게 그들이 답할 차례이다. 

이제 그만 무상예술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리고 솔직해져야하며, 경쟁해야 한다. 그것이 성장이고 발전이다. 그런 자구적 개선노력이야말로 독립영화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자립적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한국영화와 영화 시장을 발전시키는 다양성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은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 개선노력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용남 청주대 영화학과 교수
[이용남]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