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vs 자유주의" 치열한 전선…지식인의 '선동가' 역할 필요
대한민국의 수호신(守護神)과 미신(迷信)

수호신(守護神), 인류가 탄생한 이후부터 늘 존재해 왔던 미신(迷信)이 있다면 바로 이 수호신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개인에서 출발하여 사회, 민족, 더 나아가 국가를 지키는 이 신성한 역할을 그 진실성을 떠나 사뭇 진정성이라는 모양새를 갖추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미신이 만연하지 못하는 과학적 사고관념이 자리하고 있는 21세기이다. 원시사회의 추상적인 수호신 따위는 존재할 이유도, 필요도, 또 가치도 없다. 

그러나 원시사회의 추상적인 수호신에서 거듭난 현대사회에는 좀 더 구체화된 수호신이 그 역할을 대체하고 있다. 필자는 그 구체화된 수호신이 대한민국에서 자임하는 막중한 역할과 존재, 그리고 이를 지키는 일단의 사도들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바로 대한민국의 제도적 수호신인 정치체제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체제로서의 자유시장경제를 말이다. 이 쌍두마차가 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 둘을 마치 옛날 미신처럼 취급하고 망각한다. 또한 이 두 수호신을 수호하고자 하는 사도들을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미신을 신봉하는 사이비(似而非)로 매도해 버린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통화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89~1992)가 1988년의 한 인터뷰에서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반드시 선동가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현 시류를 돌려 세워야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사이버(Cyber)를 더 잘 활용하느냐를 놓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벌이는 사이버 전쟁에서나 누가 사이비(似而非)이냐를 놓고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는 사이비 전쟁에서나 그 어느 쪽에서 패배해도 현대사회에서의 전선은 밀리는 형세가 된다. 그렇기에 이 치열한 전선에서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사상적 선동가, 전사(戰士)가 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이미 안정적으로 안착이 되어 대한민국이라는,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할아버지를 지탱하고 있는 현대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라는 지팡이와 효자손을 내팽개치고,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라는 이미 낡고 부러져 버렸었던 지팡이와 효자손을 다시금 나이든 할아버지의 손에 쥐어주려고 하는 것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처사다. 이는 무의미하게도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하다. 한 번의 실패는 용인할 수 있지만, 두 번의 실패는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자들은 앞으로 치러질 역사전쟁(Historical War)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자료사진=미디어펜


공산주의 아버지인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는 명언을 그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Der achtzehnte Brumaire des Louis Bonaparte』(1852)에서 밝혔다. 어쩌면 "처음은 실패했지만, 이다음은 성공할 수 있다"라는 요지의 내용을 사회주의자들이 주창하는 것은 칼 마르크스의 아이들, 즉 그의 충실한 제자라는 것을 자신들이 스스로 자인하고 또 선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그들의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사고를 해야 하고 또 어떤 결단을 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의 망령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어떤 단호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념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사상적 딜레마(Dilemma)에 빠진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등불이 되어주어야 하며, 그러한 역할을 두려워하지 않을 현명한 인재가 필요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무작정 앞만 바라본 채 유토피아(Utopia)를 위해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가시밭길을 밟고 있는 외줄타기 상태와 진배없다.

그러므로 앞서 인용한 바와 같이 '선동가적 지식인'의 역할이 극도로 필요한 시점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념전쟁(Ideological war)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념적 전사(戰士)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누가 사이비(似而非)인지 명확히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수 있는 이 사이비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한다.

둘째, 당장 지금의 대한민국을 창조한 쌍두마차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더불어 이 쌍두마차의 조종타를 책임지고 도입한 선장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역할과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한 교육적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역사적 정립(正立)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 1863~1952)는 그의 저서 『이성의 삶 The Life of Reason』(1905)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수호신(守護神)을 토사구팽(兎死狗烹)하여 대한민국의 기틀과 방향타를 새로이 선정하여 이를 선점(先占)하도록 하는 처사를 마냥 두고 볼 수는 없다. 바로 백년간 치러질 역사전쟁(Historical War)에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념전쟁(Ideological War)과 역사전쟁(Historical War)의 거시적인 틀이 될 사이버(Cyber)에서의 사이버 전쟁(Cyber War)에 승리할 사이버 전사들 역시 전문적으로 더욱 폭넓게 양성할 필요가 있다. 이 전쟁의 구도는 비단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外部)에서도 북한과 중국이 개입할 우려가 큰 전장인 만큼, 어쩌면 다층적(Multi-Dimensional), 복합적(Complex) 전쟁으로 확장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나 민간 차원에서나 부대 차원에서나 민관군(民官軍)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등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호신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수호신이 미신이 되고 미신이 수호신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역변(逆變)의 불행한 역사가 다시금 써지는 날이 도래하게 할 것이냐. 승패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그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가? 바로 우리 청년들이다. 우리들은 이럴 때일수록 바싹 긴장하고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어 준비해야 한다.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울려 퍼지기 전에 말이다. /홍순기 한남대 역사학과

   
▲ 공산주의 아버지인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는 명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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