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살은 좌파 아니면 우파…권력 획득 위한 정치공학에 불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에 서 있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정치적 '사상'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중도'를 표방하면 균형을 유지하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지만, 자유시장경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시장경제도 좋고 사회주의·전체주의도 좋다는 식의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 '중도'는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중도'라는 이름으로 무임승차 하려는 세력들을 경계해야 한다. 뚜렷한 사상이 아닌 우파와 좌파의 이념을 체계 없이 섞어놓아 세상을 망칠 뿐이기 때문이다. 자유경제원은 7일 리버티홀에서 생각의 틀 깨기 7차 세미나 ‘애매한 중도가 세상을 망친다: 중도는 없다’를 열고 '중도'의 의미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극단적인 생각이나 극단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좋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 걸로 각인 되어 있다”며 “이러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ㆍ경제적 이념에서도 ‘중도’를 표방하게 한 원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중도도 ‘중’이나 ‘중용’과 같이 좋은 의미를 갖게 되었으나 정치·경제적 이념에서 ‘중도’는 존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신 교수는 “그럼에도 우파, 좌파, 중도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당들이 유권자 표를 획득하기 위해 우파와 좌파의 정책을 혼합하기 때문”이라며 “정당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이런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와 관련 “유권자 환심을 사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공학이 횡행하는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이런 선택이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신중섭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중도는 없다

한 일간지는 “세계 정치, 중도가 사라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1) 이 신문은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의 대약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져 온 중도 정치의 사망선고다.”라는 외국 신문 기사를 인용하였다. 이 기사는 지난 5월에 있었던 오스트리아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이런 말을 사용하였다. 반이민, 반유럽연합의 기치를 내건 극우 정당인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득표율 49.7%를 얻은 것을 두고 그렇게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극우의 부상과 중도의 추락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라고도 하였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무슬림 추방’ 등 막말을 많이 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되고, 자칭 사회주의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부자 증세 등 좌파 공약을 앞세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현상을 근거로 “중도파라 할 수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워싱턴의 기득권 정치인으로 여겨지며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패할 수 있다는 여론 조사들이 잇따라 나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극우가 힘을 얻고 중도가 추락한 원인으로 경제 부진으로 인하여 중산층이 몰락하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는 ‘반이민’, ‘반유럽연합’, ‘부자 증세’, ‘무슬림 추방’, ‘이민자 엄격 제한’, ‘자국제일주의’, ‘보호무역주의’ 등을 주장하는 것을 극우적 주장이라고 하면서, 이런 주장이 지지를 얻는 것과 ‘중도의 몰락’을 동일시한다. 마치 ‘이민’, ‘유럽연합’, ‘부자 감세’, ‘관대한 이민 정책’,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입장이 ‘중도’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모든 정책은 우파 정책이거나 좌파 정책이다. 

동양 전통에서 중(中)은 강한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이 발하지 않는 것을 ‘중’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을 ‘和’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大本이고, ‘화’라는 것은 천하의 達道다. 중과 화에 이르게 되면 천지가 자리를 잡아 만물이 化育한다.”고 했다. ‘중’은 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근본이라는 것이다. 치우침이나 지나침을 경계하여 ‘중’을 숭상한 것이다. 

   
▲ 우파, 좌파, 중도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당들이 유권자 표를 획득하기 위해 우파와 좌파의 정책을 혼합하기 때문이다. 유권자 환심을 사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공학이 횡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양도 예외는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인간은 ‘과도함이나 부족함에 의해서 파괴되는 본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과도함과 지나침이 없는 상태 곧 ‘적절한 상태’를 유지해야 강함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중용의 덕을 중시하여 ‘무모’와 ‘비겁’의 중용을 ‘용기’, ‘인색’과 ‘낭비’의 중용을 ‘절약’, ‘탐욕’과 ‘천박’의 중용을 ‘관용’, ‘비굴’과 ‘허영’의 중용은 ‘긍지’라고 하였다. 이때 중용은 각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른 상대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며 결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일정하게 고정된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윤리학에서 ‘중’을 중시하다 보니 ‘중’은 당연히 좋은 것이라는 통념이 굳어졌다. ‘그 사람은 극단적이다.’라는 말은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이 아니다. ‘극단적인 생각’이나 ‘극단적인 상태’는 도덕적으로 좋은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중’에 대한 이러한 편견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ㆍ경제적 이념에서도 ‘중도’를 표방하게 한 원인이 아닌가 한다. ‘중도’도 ‘중’이나 ‘중용’과 같이 좋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ㆍ경제적 이념에서 ‘중도’가 존재할 수 있는가. ‘인색’과 ‘낭비’의 중용으로 ‘절약’이 존재하듯이, 이념에서도 ‘중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이념적 지형을 좌우로 구분할 때 좌파와 우파가 만나는 중간의 입장을 흔히 ‘중도’라고 생각한다. 좌우가 있으면 중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머리에 그리는 사람들은 중간 곧 중도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인 좌파나 우파는 파괴적이라고 주장한다. 중간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A가 아니면 B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중간은 존재하며, 중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극단을 피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적 이념 지형에서 중간을 인정하는 것을 포용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제학자는 20대 국회 정당별 경제 성향을 분석하면서 여러 정당들이 내세운 경제 정책을 우파적 정책, 중도우파적 정책, 중도 정책, 중도 좌파적 정책, 좌파적 정책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새누리당이 내세운 ‘일자리 중심 성장’은 우파적 정책이고, ‘중견기업 연구개발 제도’는 중도우파 정책이고, ‘사회적 기업 활성화’는 중도 좌파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 방식에 따라 새누리 당의 ‘최저임금 인상’, ‘중소기업 공공구매 제도’, ‘자율상권법 제정’, ‘전통시장 육성’ 등을 중도좌파 정책으로, ‘노인교육 지원법’, ‘청년기본법’, ‘경력단절여성취업 확대’ 정책을 중도파 정책으로 분류하였다. 나아가 ‘면제점 규제 완화’, ‘벤처사업 활성화’, ‘청년국제인턴’ 정책 등은 ‘중도우파’ 정책으로, ‘규제 프리존’은 우파 정책으로 분류하였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제 정책 가운데 ‘미래 신성장동력산업 발굴’을 우파 정책으로, ‘출산육아 휴직확대’, ‘경력 단절 여성 취업 확대’, ‘어린이집 확대’, ‘매년 15만호 공공임대 주택’ 정책은 중도파 정책으로, ‘공공부분 일자리 34만8천 개 창출’,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노인 기초연금 인상’, ‘출산 휴직 확대’ 정책 등은 중도좌파정책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공공부문 청년 고용 할당 5%’, ‘민간부문 청년고용 의무할당 3%’, ‘국민연기금 활용’, ‘청년 구직활동지원금’ 정책 등을 좌파정책으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국민의당 경제 정책 가운데 ‘인수합병전문 중개기관 도입’, ‘벤처창업자 패자부할제 도입’ 정책 등을 중도우파 정책으로, ‘중소기업 벤처 업무 총괄’, ‘출산육아 휴직확대’, ‘초중고 창의학교 도입’ 등을 중도파 정책으로, ‘공정임금제 제정’, ‘중소기업 공공구매 제도’ ‘사회보장카드 도입’, ‘기회균등선발 확대’ 정책을 중도좌파 정책으로 분류하였다. ‘공공부분 청년고용 의무할당 5%’, ‘민간부분 청년고용 의무할당 5%’, ‘청년 구직수당 지급’, ‘공공의료서비스 확충’ 정책 등을 좌파정책으로 분류하였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경제 정책에서는 ‘최저임금인상’, ‘산별노조 강화’, ‘노점기본법 추진’, ‘반값임대’, 등은 중도 좌파의 정책으로, ‘공기업 청년고용 의무할당’, ‘누리과정 100% 국고 지원’, ‘외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사회복지세 도입’ 등의 정책은 좌파 정책으로 분류하였다.

이 경제학자는 우파, 중도우파, 중도, 중도좌파, 좌파 정책에 시장경제지수를 적용하면, 새누리당은 중도우파정당, 더불어민주당(더민주)과 국민의 당을 중도좌파정당, 정의당은 좌파정당이 된다고 하였다. 현실적으로 각각의 정당들에는 우파 정책과 좌파 정책이 섞여 있어, 특정 정당을 좌파 정당이나 우파 정당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정책에 각각의 점수를 부여하고 그것을 평균내서 우파ㆍ중도우파ㆍ중도좌파ㆍ좌파 정당으로 구분하지만 실체를 분석해 보면 그들의 정책 하나 하나는 우파 정책이 아니면 좌파 정책이다.

   
▲ 각 정당의 공약 및 정책에 시장경제지수를 적용하면, 더불어민주당(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중도좌파정당으로 분류된다./사진=연합뉴스


정당이 제시한 각각의 정책을 5가지 이념으로 분류하는 것은 자의적이고 근거가 약하다. 실제로 각각의 정책은 우파 정책이 아니면 좌파 정책이다. 국가가 개입하여 민간의 자유를 줄이는 정책 곧 경제적 자유를 축소하는 정책은 좌파 정책이고, 그 반대면 우파 정책이다. ‘최저임금 인상’, ‘전월세 상한제’ ‘법인세 인상’, ‘중소기업 벤처 업무 총괄’, ‘출산육아휴직 확대’, ‘초⋅중⋅고 창의학교 도입’ 정책은 좌파 정책이다. 정책의 강약에 따라 우파, 중도우파, 중도, 중도좌파, 좌파 정책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당의 정책 하나 하나는 우파 정책이 아니면 좌파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대해 ‘중도’라는 말을 사용하여 혼란을 초래한다. 우리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중도’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맥락에 따라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이념적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우파, 좌파, 중도파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표를 획득하기 위해 우파와 좌파의 정책을 혼합하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설정하고, 정체성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한다면 이런 혼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표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할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이런 선택이 어려울 것이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1) 2016년 5월 25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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