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불러오는 재능? 팔릴 물건 나와야 자본 투입 대박 터지는 '예술시장'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자본', '자본주의'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여기고 있다. 자본을 착취, 약탈, 소외, 부익부 빈익빈 등 부정적인 이미지와 결합시켜 악의 축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예술 분야에서의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예술인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자본'을 미워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이처럼 숱한 오해를 받고 있는 자본은 정말로 나쁜 것일까. 자유경제원은 '자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논해보려는 취지로 지난 3일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이근미 소설가는 “재능은 질투를 불러온다”며 “연예기획사 JYP 수장이자 가수인 박진영이 ‘K팝 스타’ 심사를 하면서 재능 있는 출연자를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소설가는 “문제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지만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서 발생한다”며 “예술도 엄연히 시장경제 속에서 움직이고, 자본이 뒷받침되면서 출판사와 작가가 엄청난 소득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 소설가는 최근 맨부커 상을 받은 작가 한강 씨와 관련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자 ‘언론’이 연일 뉴스를 쏟아냈고, ‘팔릴 물건’이 나오자 온오프라인 매체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중”이라며 “시장의 물결이 움직인다 싶으면 자본이 대거 투하되고,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설가는 “자본이 예술시장을 탄탄하게 지지한다”며 “결국 대중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모두가 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시장은 냉정한 데다 무수한 변수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소설가는 “뛰어난 작품과 시장의 결합에서 배제되었다고 하여 ‘나의 예술을 몰라보는 더러운 세상’ 운운과 ‘더러운 세상에 보상을 요구하는 일’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이근미 소설가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이근미 소설가
자본이 예술시장을 탄탄하게 지지한다

질투를 불러오는 재능 

발제자의 “예술은 공부와 비슷하다. 노력해서 잘하게 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간단한 실질 통계로 입증해볼까 한다.

나는 4년제 전기 대학에 단 1개 밖에 없는 학과에 ‘실기 30%’의 관문을 뚫고 입학했다. 40명의 동기생들은 고교 문예반에서 이름을 날리고 대단한 공모전에 입상한 친구들이었다. 졸업 25년 만인 2014년, 대한민국 대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학과 역사책’을 발간할 때 우리 학번 집필을 맡은 내가 조사해본 결과 40명 가운데 9명이 기성 문단에 데뷔했고, 1권 이상 책을 낸 동기가 5명이었으며, 꾸준히 책을 내는 친구는 단 3명이었다.

그 3명 중 1명은 대한민국 문학상을 휩쓴 유명소설가가 되었는데 그 친구는 대학 때 소설이 아닌 시를 전공했고, 더욱이 수업 시간에 노상 빠지는 ‘문제적 인간’이었다. 유명 소설가가 된 후 언론 인터뷰에서 “고교 때 꼴찌였다”라고 말해 동기생들로부터 “그 말 하지 마라. 우리 학과가 똥통이냐. 실기 배점이 높았다는 걸 부각시키든가…”라는 원망을 들어야 했다. 그 친구는 광고회사, 잡지사 등지에서 일하다가 30대 중반에 처음 쓴 장편소설 두 편을 연달아 당선시키면서 일약 무서운 신예로 떠올라 동기들은 물론 많은 문학지망생들의 기를 죽였다. 예술은 노력이 아닌 재능이라는 걸 증명한 인간 샘플, 소설만 써서 먹고 사는 몇 안 되는 작가, 질투를 불러오는 인간이 바로 ‘그 녀석’이다. 

연예기획사 JYP 수장이자 가수인 박진영이 ‘K팝 스타’ 심사를 하면서 “재능과 열정 중에서 먼저 재능을 찾아라. 재능이 있는 사람을 못 이긴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열정이 없으면 안 된다.” 라고 말했는데, 제작자들이 찾는 인재가 바로 재능 있는 친구들이다. 박진영은 재능있는 후보가 나와서 노래를 하면 그루브를 타며 애정을 팍팍 표해 네티즌들로부터 “심사 결과를 눈치채게 만든다. 짜증난다”는 질타를 듣곤 한다. 그럼에도 박진영은 “저런 애를 누가 이겨. 어디서 저런 애가 나왔지. 정말 부러운 재능이다”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 사진은 JYP 댄스가수 박진영이 작년 4월 17일 방영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당시 발표곡 ‘어머님이 누구니’를 열창하고 있는 모습. 댄스가수 박진영은 열광하는 객석의 관중들에게 뜨거운 퍼포먼스로 보답했다./사진=KBS 유희열의 스케치북 영상캡처


모두가 작가라는 환상

발제자의 “재능도 없는 사람들이 대거 예술에 진출하게 된 것은 근대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일부는 자기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진짜 모른다(이게 사는 데는 오히려 편하다). 대부분은 자신에게는 재능이 콩나물 대가리만큼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는 지적에도 공감한다.  

특히 재능 없는 사람들이 몰리기 쉬운 분야가 ‘글쓰기’ 쪽이다. SNS를 통해 매일 자신을 표출하다보니 모두가 ‘작가’라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 기대에 충족하기 위해서인지 내가 입학할 때 단 1개였던 문예창작학과가 지금은 50여개에 이른다. 

문학 공모전도 셀 수 없이 많아 ‘작가’ 타이틀을 달지 못한 사람은 ‘게으른 인간’으로 치부될 정도이다. 상금을 주는 게 아니라 책값 수십 만 원을 받고 등단시키는 이상한 잡지에도 투고 작품이 산처럼 쌓여 있다. 재능도 열정도 없이 ‘등단 스펙’ 쌓기에 몰두한 사람들이 ‘책 안 팔리는 나쁜 세상’, ‘책 안 사는 무식한 인간’ 운운하며 잔뜩 골이 나있다 
  
문제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지만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서 발생한다. 그런가 하면 책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려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로 불리는 작가들도 있다. 그 바탕에는 냉정하게 시장을 살펴본 뒤 투하를 결심한 자본의 힘이 있었다. 예술도 엄연히 시장경제 속에서 움직이고, 자본이 뒷받침되면서 출판사와 작가가 엄청난 소득을 올린다. 

상품(작품)이 나오면 자본이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대중’(시장)의 움직임이다. 시장이 물결이 움직인다 싶으면 자본이 대거 투하되고,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것이다.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자 ‘언론’이 연일 뉴스를 쏟아냈고, ‘팔릴 물건’이 나오자 온오프라인 매체들이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중이다. 온라인서점들은 대문과 검색창에 연일 한강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각종 이벤트를 쏟아내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가장 좋은 자리에 평대를 마련하여 방문고객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대목을 맞은 출판사가 광고와 홍보로 전력투구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창작의 경우 초기에 작가의 역량, 수상 내역 등을 가늠해 투자를 결정한다면 비소설의 경우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하게 ‘판매’에 초점을 맞춰 움직인다. 치밀하게 기획했지만 시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자본은 바로 철수한다. 그런가하면 별 기대가 없었던 책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바로 지원 작전에 돌입한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어내면 전달은 자본이 담당한다. 작은 출판사에서 시작하여 점차 성장해가는 가운데 다양한 노하우를 쌓은 탄탄한 출판사들이 있어 작품이 빛을 보는 것이다.
  
특히 온라인서점이 활성화되면서 책과 독자와의 간격이 더욱 좁아졌다. 온라인서점들은 아침에 주문하면 저녁에 배달하는 신속한 시스템을 가동해 대형 오프라인 서점들의 매출을 상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통신의 발달로 인해 책을 알릴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졌다. 독자들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엄청난 정보를 접하게 되고, 어느 순간 ‘인정할만한 작품’과 접속이 되면 신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씨의 저서 '채식주의자'의 표지./사진=한강 『채식주의자』 표지


자본이 예술을 탄탄하게 만든다
  
재능이 뛰어나거나, 부족한 재능을 열정으로 보충했거나, 어찌됐든 출판사의 선택을 받은 작품들은 일정 정도 수준을 갖추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작가도 많고, 제작시스템도 완벽히 갖춰져 있고, 딜리버리 수단도 풍부하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독자의 마음이다.
  
결국 대중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모두가 내 작품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시장은 냉정한 데다 무수한 변수가 있다. 
   
‘뛰어난 작품과 시장의 결합’에서 배제되었다고 하여 ‘나의 예술을 몰라보는 더러운 세상’ 운운과 ‘더러운 세상에 보상을 요구하는 일’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예술 행위가 시장에서 평가받지 못하자 실제로 ‘보상’을 요구하여, 일부가 실질적인 혜택을 입은 일이 있다. 이어서 그 ‘보상’이 지속되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이 쏟아졌다.
  
서머싯 몸이 <인간의 굴레>에서 “작가이건 화가이건 자기의 작품에만 생활비를 의지하고 있는 예술가를 나는 진정으로 불쌍하게 생각하네”라며 “돈을 멸시하는 인간을 나는 경멸하네. 그런 녀석은 위선자가 아니면 바보일세. 돈이란 육감(六感)과도 같은 것이야. 그것이 없으면 다른 오감(五感)도 충분히 기능을 발휘할 수 없어. 충분한 수입이 없이는 인생의 가능성의 절반은 막혀버린다네.”라는 말에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예술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그 원인을 외부로 돌리기 전에 스스로 삶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여전히 예술가들이 쏟아지고, 대중은 예술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 출판계가 어렵다지만 크지 않은 시장에서 매년 밀러언셀러가 두세 권 나오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2000년 이후 소설<가시고기>(조창인),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비소설<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등 여러 책이 200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책 몇 권이 대박 나 사옥을 지은 출판사들도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그해 영국 GNP가 달라졌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이다. <해리포터 시리즈> 전권을 계약한 한국 출판사는 불황에도 끄덕 없어 여러 출판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전방위로 원망만 쏟아내면서, ‘돈 보기를 돌같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허위의식은 더 이상 예술가의 특권이 아니다. 재능있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고, 능력있는 출판사가 글로벌 시장으로 운반하는 탄탄한 자본 시스템이 예술을 발전시킨다. /이근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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