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현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 부총재)가 “대우조선해양 지원이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의 일방적인 결정이었고 산은은 들러리역할만 했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단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대우조선 지원이 산은과 협의해 결정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산은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산은

홍 전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산업은행 계열사에 대한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인사개입이 도를 넘었다”며 “관료와 금융기관 간에는 지금도 ‘시키는 대로 하라는’ 군대식 서열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정부 측의 인사개입으로 산은이 정상적인 자회사에 대한 감독을 펼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홍 전 회장의 말은 어느 정도 공감을 얻고 있다. 산은의 지분 100%는 모두 금융위, 즉 정부가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인사와 자금지원 결정 등 업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재벌기업은 불과 몇 퍼센트의 지분으로도 인사권과 경영권을 맘대로 휘두르는 데 지분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니 산업은행은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법에 따라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정권에 순종적인 사람이 회장으로 올 수 밖에 없다. 홍 전 회장 자신도 박근혜 대통령 대선캠프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어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을 강하게 일으켰던 인물이다.

이동걸 현 산은 회장도 지난 대선때 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금융권의 박근혜 당시 후보 지지선언을 이끈 전력이 있다. 정책금융 경험도 전무해 내정 당시부터 산은 노조의 강한 반발을 샀다.

문제는 산은의 낙하산 관행이 자회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식 전 의원(19대)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임명된 대우조선 사외이사 18명 중 12명이 정피아·관피아 출신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대변인을 맡다가 성추행 파문을 일으켜 경질된 윤창중씨도 포함돼 있다. 윤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2년 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에 등재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검찰 출신인 조대환 법무법인 대오 고문변호사가 낙하산 논란에 사외이사 선임 사흘 만에 사퇴하기도 했다. 조 변호사는 대통령 인수위 법질서 및 사외안전 전문위원, 새누리당 추천 세월호 특위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인사다.

이처럼 대우조선해양과 조선업이 생사를 오가는 중대기로에 서 있는 가운데서도 조선업과 전혀 무관한 낙하산 사외이사가 득세하면서 대우조선의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또 홍 회장의 지적대로 부실기업 지원 여부를 정부와 금융위 등에서 일방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회수 가능성’ 등 시장 논리가 작용할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산은 입장에서는 정부에 등떠밀려 궂은일은 궂은일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산은은 조선·해운업의 업황 악화로 대우조선해양 사태 증이 불거지면서 지난해 1조895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적자폭이다. 정부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했다면 이처럼 큰 손실을 입지는 않았을 것이다.

   
▲ 사진=연합뉴스

산은 독립성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이에 따라 산은의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제는 국책은행으로의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구조조정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산은의 적절한 독립성 수준을 맞춰주느냐다.

하지만 금융위 측은 산은에 대해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홍 전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부실과 관련한 청문회와 검찰 조사 등을 앞두고 면피를 위해 언론플레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알려질 정도로 실세 중 실세인 홍 전 회장이 금융위 압력에 대우조선해양 지원을 결정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이어 “금융위는 산업은행에 대한 일상적 법정 관리·감독권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라며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상 산은의 지분을 금융위 민간 쪽에서 더 많이 갖더라도 금융위의 조정 역할은 필요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산은의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는 산은이 정부가 시켜서 자금을 지원하는 건지 아니면 자체적으로 판단해 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며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이런 환경에서는 모럴 헤저드가 조성될 수밖에 없고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와 산은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은의 계정을 일반계정과 특수계정으로 분리해 특수계정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특정 산업에 대해 자금 지원을 하고 그 책임은 정부가 지는 방식으로 계정을 따로 만드는 것이 해법이 될 수 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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