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북한 김정은정권 집권 5년차를 맞고 있는 가운데 취임 직후부터 최근까지 여러명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숙청되고 처형된 사실은 기록적이다.

특히 김정은은 취임 3개월여만에 ‘김정일의 영구차 호위 8인’ 중 한명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전격 숙청시켰다. 당시 리영호의 숙청은 어린 나이의 후계자가 집권하자마자 벌인 일로 꽤 충격적이었다.

그런 만큼 최근에도 리영호 숙청과 관련한 NHK 보도가 또 한번 크게 회자됐다. 방송은 북한 군부대 산하 무역회사에서 간부로 일하던 익명의 소식통으로부터 1만2000쪽 분량의 조직 지도부 내부 문건이 담긴 USB를 입수해 그 내용을 지난 5일 보도했다.

방송은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던 리영호가 2012년 7월쯤 김정은 위원장의 허가없이 퍼레이드에 참가한 군부대를 마음대로 움직인 이유로 숙청됐다”고 전했다. 

NHK는 입수한 문건에 대해 “김정은으로 권력이 이양되던 시기인 2010년에서 2013년 7월까지 북한 권력의 중추인 총정치국장 산하의 조직부가 관리한 자료들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리영호가 총참모장이었으므로 추정가능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리영호는 2011년 12월17일 김정일 사망 이후 2012년 4월11일에 열린 4차 당대표자회 때 북한에서는 전례없는 반대표를 행사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0% 찬성만 있는 북한 노동당 행사에서 리영호가 실제로 반대표를 행사했고, 그 이유는 최룡해가 대장 군사칭호를 받게 된 것에 크게 반발한 때문이라고 한다. 4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김경희·최룡해·김경옥 4명이 새롭게 대장 군사칭호를 받았다. 

   
▲ 2012년 숙청되기 전 현역에 있을 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대화하는 리영호 전 인민군 총참모장(왼쪽)./사진=연합뉴스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당시 최룡해가 군사칭호를 받고 총정치국장에도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군부의 반발이 컸다”며 “군에서 잔뼈가 굵은 리영호 자신을 따르는 군부만 믿고 나이어린 권력승계자인 김정은을 만만하게 본 게 화근이었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당 행사에서 의결이 필요할 때 김정은을 위시해 주석단 간부들은 물론 방청석에 앉은 모든 참가자들이 동시에 빨간색으로 된 작은 수첩 크기의 ‘대표증’을 어깨 높이 위로 들어올리는 것으로 찬성표 행사를 한다.

반대표는 따로 없고, 이 빨간색 대표증을 들지 않으면 반대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대표증을 들고 찬성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반대의사를 드러낸 간부는 리영호 외에 전무후무 할 것이다.  

이 4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은 노동당 제1비서직에 올랐고, 이틀 뒤에 열린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직제를 신설하고 이 직위에도 올랐다. 4차 당대표자회에서 리영호가 반대표를 행사한 것은 김정은의 첫 취임식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던 것이다.

김정은은 김정일 시대에는 거의 열리지도 않았던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를 2012년 7월 갑자기 소집해 리영호를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모든 직무에서 해임한다고 선포했다. 당시 북한 당국은 해임 이유에 대해 ‘신병 문제’라고만 설명해 지금까지 의문을 낳게 했다.

게다가 리영호가 실각된 뒤 처형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2012년 12월 장성택을 처형할 때처럼 북한 당국의 발표와 보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리영호는 평안남도 온천군 온천읍에 있는 평남온천에서 생존해 있다고 한다. 

이곳은 간부들의 요양소로 알려져 있다.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국에 의해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고 치료차 보내지는 곳이므로 이곳 어딘가에 간부 전용의 교화소와 같은 요양소도 있을 법하다. 리영호가 이곳에 살아 있다면 김정은 입장에서 군부 장악을 위해 활용 가능성이 있거나 리영호에게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총정치국장과 총참모장 직제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부터 당이 군을 통제하는 체계가 갖춰졌고, 사실 군부 내 불만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김정은정권에서도 총참모장만 네 차례 교체됐고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총살로 처형되는 등 군 수뇌부의 수난기가 이어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리영호가 살아남아 있다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주목되는 일이다. 얼마 전 최룡해가 3개월 혁명화교육을 받고 부활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오른 것처럼 리영호도 부활해서 다시 권력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73세의 리영호는 올해 83세의 리명수 총참모장보다 10년이나 젊다. 어쩌면 리영호가 재기해 69세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함께 34세의 김정은에게 충성 경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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