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 전구와 제임스 와트 증기기관…이제는 예술가·영화인도 기업가 되어야 하는 시대
자유경제원은 '자본'과 '예술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논해보려는 취지로 지난 3일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오늘날 많은 예술가들은 자본이 예술가를 지배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반감을 갖는다”며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서로의 역할이 다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오늘날 자본가들은 경영에 따른 위험부담 등 기업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예술사업이 망하면 노동자는 투입한 노동력만큼만 손해를 보지만 자본가는 훨씬 더 큰 자본을 손해 본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사업을 할 경우 1년 내 59.8%가 폐업하고, 5년 뒤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사업자의 30.9%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런 것이 기업의 세계”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영화의 세계는 성공할 확률이 이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영화 투자시장은 '정보 비대칭성'이 매우 심한 시장”이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투자자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를 고르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스필버그 감독이 '25단어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의 조건이라고 했듯이 시나리오 피치의 길이가 짧고 간결할수록 비싸게 팔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영화 <에일리언>은 '우주선의 죠스'였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첫 피치는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였다. 이어 김 교수는 “자본가와 노동자는 상호 갈등의 관계가 아니고 협력의 관계”라며 “에디슨, 구텐베르크, 아크라이트, 제임스 와트, 조지 스티븐슨 등 발명가와 자본가의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래 글은 김승욱 중앙대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왜 예술가들은 자본을 백안시 하는가?

이문원 평론가는 “문화계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의미하는 것은 “공적개념이 영화 만들 돈을 주고, 배급도 잡아주고, 극장도 지어준 뒤, 흥행 실패에 따른 페널티조차 주지 않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은 곧 ‘공적개념에의 종속’ 요구이며 ‘종속영화’ 또는 ‘기생영화’라 불려야 마땅한 일이라고 했는데, 매우 공감을 한다. 

또한 최공재 감독은 “자본과 재능의 콜라보로 완성된 이름, 예술(ART)”에서 “자기 재능을 몰라준다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자본이 와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멍청한 일은 없다....자본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이고, 거기에다가 매우 똑똑해서 준비하는 자에게만 기회를 제공하는 버릇이 있음을 알아야 된다....예술이든, 자본이든 모두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수단”이라는 주장을 했다. 

보충 토론

왜 예술가들이 자본을 백안시하는가? 그 이유는 자본이 다른 요소 소유자를 지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중세 봉건제 생산양식에서 영주가 농노를 지배했듯이, 근대 자본제 생산양식에서는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한다고 본다. 이에 영향을 받아서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들은 자본이 예술가를 지배한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반감을 갖는다. 

그러나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는 봉건제하의 영주 계층을 농노를 착취하는 계층이 아니라, 치안과 국방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는 존재로 보았다. 중세 사회 영주-농노 관계의 성격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의 착취-피착취 관계가 아닌 계약에 의한 사회체제로 인식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도 서로 역할이 다른 것이다. 오늘날 자본가들은 기업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업가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본만 투자한 자본가라고 할지라도 경영에 따른 위험부담이라고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든, 예술작품을 만들든, 영화를 만들든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으면 투자 자금을 잃게 된다. 

이러한 위험 부담 감수(risk taking) 역할을 한다. 자본가가 자본을 대고, 노동자가 노동을 공급해서 사업에 망하면, 노동자는 투입한 노동력만큼만 손해를 보게 되지만, 자본가는 훨씬 더 큰 자본을 손해 본다. 노동자는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되지만, 자본가는 잃은 자본을 만회할 길이 없다. 

따라서 위험부담을 많이 지는 측에서 최종 결정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위험부담이 큰 자본가는 자신의 손실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가장 위험도가 낮은 사업을 골라 투자를 하게 된다. 결국 투자자의 사회적 역할은 희소한 자본이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선별하는 막중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1) 

사업을 할 경우 1년 내 59.8%가 폐업하고, 5년 뒤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사업자의 30.9%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비교적 성공한 기업도 상장 후에 상장 폐지되는 경우가 전체 상장 기업의 40%에 이를 정도로 기업으로 성공하기 어렵다.2) 이런 것이 기업의 세계이다. 영화의 세계는 성공할 확률이 이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예술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변덕스러운 취향과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예술품이나 영화에 투자하는 자본가는 더 높은 위험부담을 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가 성공을 위해서 노심초사하고 간섭을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첫 피치는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였다. 김윤지는 『박스 오피스 경제학』에서 투자자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를 고르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로 무엇이 시나리오 가격을 결정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했다./사진=영화 '괴물' 포스터. 봉준호 감독.


영화 투자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매우 심한 시장이다. 영화나 예술을 잘 모르는 투자자가 영화를 더 잘 아는 감독이나 예술가에게 간섭을 잘못해서 작품을 망칠수도 있다. 이는 자본가와 예술가의 협력의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지, 자본가의 잘못이라고만 볼 수 없다.

자본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자본가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의 몫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어떤 시민단체에서는 돈만 대고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는 그런 자선형 투자자를 기대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 사회에 간혹 그런 자선형 투자자도 있겠지만, 그런 백마 타고 나타난 천사와 같은 자선형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이런 투자자를 기대하는 것은 길에 떨어진 돈을 줍기를 고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예술가들은 문화를 돈으로 판단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감을 더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영화제작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이나 금융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문화산업은 악명이 높다. 투자자들은 숫자를 더 신뢰한다. 그런데 숫자보다 ‘감’을 더 신뢰하라는 이야기는 사이비 교주의 이야기처럼 여긴다.3) 

김윤지는 『박스 오피스 경제학』에서 투자자들이 흥행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를 고르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로 무엇이 시나리오 가격을 결정하는지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보통 영화 한편을 제작할 때 수백 개의 ‘피치(간결하게 시나리오를 설명해 놓은 것)’를 검토한다고 한다. 보통 미국 드라마의 경우 400-50편의 피칭을 통해 아이템을 발굴한다. 미국 드리마 시리즈 <로스트>의 경우 약 1000면의 피칭을 거쳐서 아이템들을 선정했다고 한다.

미국의 한 금융경제학 연구팀은 시나리오 피치의 길이가 짧고 간결할수록 비싸게 팔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스필버그 감독이 “25단어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의 조건이라고 했듯이, 이 연구에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팔린 1269개의 미국 시나리오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 분석에 사용된 피치 단어 수는 2개에서 95개였는데, 그 중에 평균이 25개였다. 예를 들면 영화 ‘에일리언’은 “우주선의 죠스”였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의 첫 피치는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였다.4)

또 다른 자본가에 대한 반감은 자본가가 이익을 다 가져간다는 인식 때문이다. 곰은 재주가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기듯이, 노동자가 예술가는 그저 곰처럼 재주만 넘고, 돈은 자본가가 다 챙긴다는 인식 때문에 자본가에 대한 거부감이 많다. 그러나 이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발생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부족한 생산요소의 가격은 오르게 되고 그래서 생산의 과실을 더 많이 가져간다. 풍부한 생산요소의 소유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소한 생산 요소의 소유자는 더 많은 생산의 과실을 누린다. 이를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명명했고 주류 경제학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한다. 

노동이 부족하면 임금이 오르게 되고 노동이 풍부하면 임금이 떨어진다. 오늘날 중국이나 인도 등 인구과잉국의 인건비가 싸고 노동력이 부족한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인건비가 비싼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노동이 흔하던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자본이 귀했고, 그래서 이자율이 높았고,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몫이 컸다. 그래서 자본가가 이익을 다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크스 시대는 자본부족 시대였다. 공급자본이 사회의 자본수요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했고 따라서 자본가는 더 많은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마르크스는 이를 착취라고 간주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회적으로 축적된 자본의 규모도 크고, 은행이나 주식 등 자본의 중계기능이 발전해서 자본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자본이 남아도는 자본 과잉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미국과 유럽도 그 길을 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 또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이다. 

이제는 돈을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저절로 이자가 발생하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눈에 불을 켜고 투자처를 찾아 나서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자본은 공급이 과잉되어 있고, 부족한 것은 참신한 아이디어이다. 그것이 신기술이 되었든, 예술품이 되었든, 영화가 되었든 어디든지 소비자들이 몰릴 만한 곳에는 엔젤펀드들이 투자를 하려고 몰려든다. 

   
▲ 발명왕 에디슨Thomas A. Edison은 모건J. P. Morgan에게 투자를 요구하여 에디슨종합전기회사를 만든 기업인이었다.


자본가와 노동자는 상호 갈등의 관계가 아니고, 협력의 관계이다. 자본이 투자되어서 노동의 자본장비율이 높아질 때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 자본이란 가치증진이나 생산성 확대에 투여되는 것이다. 그리고 발명가와 자본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발명왕 에디슨Thomas A. Edison도 모건J. P. Morgan에게 투자를 요구하여 에디슨종합전기회사를 만든 기업인이었다. 오늘날의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도 모건이 직류방식에 집착하는 에디슨과 결별하고 에디슨종합전기회사의 대주주가 된 후 1892년에 톰슨-휴 스턴전기회사와 합병하면서 탄생한 것이다.5)

이뿐만이 아니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는 1450년에 인쇄소를 설립한 인쇄소 주인이었고, 수력을 이용한 방적기를 발명한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도 기업인이었다. 이발사였던 아크라이트는 1769년에 특허를 얻어 두 친구 제데디아 스트럿Jedediah Strutt , 새뮤얼 니드Samuel Need와 함께 니드 스트럿 앤드 아크라이트 상회를 창립했고, 1771년부터는 수력을 동력으로 한 큰 방적공장을 각지에 세웠다. 증기기관의 발명가 제임스 와트도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라 당시 영국에서 제일 부자였던 볼턴Matthew Boulton과 함께 볼턴 앤드 와트 상회를 창업한 사업가였다.

증기기관차와 철도 운송시스템의 원형을 만들고 표준궤Stephenson gauge를 제시하여 철도의 아버지라고 불린 조지 스티븐슨George Stephenson도 발명가로 알려졌지만 그 역시 뛰어난 사업가였다.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사람은 사실 스티븐슨보다 10년 앞서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었다. 

그러나 스티븐슨이 발명한 기관차의 성능이 훨씬 우수하다고 인정되어 트레비식이 아닌 스티븐슨이 ‘철도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된 것 이다. 이렇게 우리가 발명가로 알려져있던 사람들이 사실은 별명가인 동시에 기업가였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기도 하고, 투자자들과 협력해서 기업을 경영했다. 

오늘날 서비스 산업의 비중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서비스 산업 가운데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지식산업의 비중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이에 종사하는 지식근로자들도 지식자본가 로 변화하면서 생산수단에서 지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 하고 있다. 지식자본을 보유한 지식근로자들은 화폐자본의 공급자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자본을 공급하며, 서로 의존한다. 이렇게 자본의 개념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사회를 구분하고 이들 간의 갈등으로 사회를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 사회 도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영역 중의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예술과 영화의 영역이다. 이제는 예술가도 영화인도 기업가가 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그리고 자본가와 협력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맞는 자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삼백년 전에 홉스는 자연 상태에서는 이기적인 개인들이 중앙 권위체가 없이는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후에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로운 인간이 어떻게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였다. 로버트 엑셀로드는 『협력의 진화』에서 이기적인 인간이 모여서 어떻게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 진화의 과정을 설명했다. 

무조건 배신만을 하는 게임의 세계에서도 협력이 싹틀 수 있으며, 호혜주의를 기초로 한 전략이 수많은 전략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협력이 일단 호혜주의를 원칙으로 안착되면 덜 협력적인 전략들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6) 자본과 예술가의 협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더 우수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제도경제학자들이 잘 설명하고 있다. /김승욱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 미국의 한 금융경제학 연구팀은 시나리오 피치의 길이가 짧고 간결할수록 비싸게 팔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스필버그 감독은 '25단어 이내로 전달할 수 있는 이야기'가 좋은 영화의 조건이라고 꼽았다. 영화 에일리언의 피치는 '우주선의 죠스'였다./사진=영화 '에일리언' 포스터



1) 김승욱 편 (2016), 『자유주의 자본론』, 백년동안, 27.

2) 김승욱 편 (2016), 『자유주의 자본론』, 백년동안, 15.

3) 김윤지, 2016, 『박스 오피스 경제학』, 8.

4) 김윤지, 2016, 『박스 오피스 경제학』, 24-32.

5) 김승욱 편 (2016), 『자유주의 자본론』, 백년동안, 37.

6) 로버트 엑셀로드, 2009, 『협력의 진화』, 시스테마,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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