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는 시장경제 발전 덕분
자유경제원은 '자본'과 '예술인'의 진짜 모습에 대해 논해보려는 취지로 지난 3일 리버티홀에서 ‘지독하게 나쁜 용어, 자본: 예술인이 해석한다’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패널로 나선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자본에 대한 반감은 시장경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며 “많은 예술가들이 주류 권력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예술 행위는 지배적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며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은 지배계층 선비들의 산물이었거나 지배계층의 주변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신 교수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신들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것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며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너그러움은 자유사회에서 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금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위험한 사상을 유포한다는 이유로 금서 저술가나 불온한 예술작가들을 극형으로 처벌하지 않는 곳은 자유주의 사회뿐이라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이와 관련 “오늘날 북한에서는 ‘불온 예술’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오직 김일성 왕조 체제를 찬양하는 예술만 허용될 뿐”이라고 예를 들었다. 신 교수는 이어 “시장경제 발전은 예술가들을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다”며 “시장 없이는 언론의 자유가 확보되지 않듯이 예술의 자유도 확보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신중섭 강원대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자본에 대한 반감은 시장경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1.
남정욱과 이문원은 일부 예술가들이 자본주의를 미워하는 현상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영화, 소위 말하는 ‘독립영화’의 본질을 명쾌하고 재미있게 분석하였다. 예술가들은 자기가 자신의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받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를 미워한다는 설명은 재미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시장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예술가들은 자본주의와 시장에 대해 반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재능 없고 열등한 예술가들만 자본을 미워한다. 그러나 이건 미워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라는 남정욱의 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예술가는 없겠지만, 이 지적은 적절하다. 

산업화된 예술문화, 시장에서 거래되는 문화예술은 당연히 그 제작 과정에서 ‘자본’을 만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소위 말하는 ‘독립영화’의 허구를 이문원은 재치 있게 분석하였다. 나아가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개념 차원의 자본’에 온전히 종속되기를 바란다는 지적은 이들의 양면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독립영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고 세금으로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예술의 공공성을 표방하여 돈은 정부로부터 받고 작품은 자기 멋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필요한 돈만 국가로부터 받고 국가로부터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반국가적인 예술 활동까지도 국민의 세금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2.
많은 예술가들이 주류 권력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동안 예술가들은 권력자들의 의지에 반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못했다. 예술 행위는 지배적 권력을 영속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예술 행위는 주류 세력이 스스로 행하거나 아니면 주류 세력의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서양 중세에는 교회에 봉헌하거나 군주의 후원으로 예술이 발전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예술은 지배계층의 산물이었거나 지배계층의 주변에서 나왔다.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예술작품 특히 문학작품은 선비들의 것이다. 조선의 미술품도 선비들의 작품이거나 선비들 주변에서 나왔다. 그것이 주류 권력에 반기를 들 수 없었음은 당연하다. 물론 일반 서민들의 삶의 흔적으로 민속 문학이 남아 있다. 그 중 일부, 양반 계층을 풍자한 작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양반의 지위를 위협하지 않는 한도 안에 머물렀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오늘 두 사람이 비판적으로 검토한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예술의 반감이나 이러한 반감의 표현은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한 자유주의의 은혜에 해당한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자신들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것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너그러움은 자유사회에서 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금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위험한 사상을 유포한다는 이유로 금서를 생산한 저술가나 불온한 예술품을 만든 사람들을 화형이나 매장과 같은 극형으로 처벌하지 않는 곳은 자유주의 사회뿐이다. 오늘날 북한과 같은 곳에서는 ‘불온 예술’을 허용하지 않는다. 오직 김일성 왕조와 체제를 찬양하는 예술만 허용될 뿐이다.

   
▲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이며 작가이다. 1964년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하였다. 사르트르는 '예술이 그것이 자본이든 권력이든 종교든 관계없이, 외부적인 것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예술론을 주장했다.


3. 
예술가들만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앨런 S. 케이헌은 『지식인과 자본주의』1)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반감을 ‘정신과 돈’의 갈등으로 파악하고, 그것의 역사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서양 근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잘 보여주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인들은 돈을 천시했다. 성경이나 서양 고대 사상, 동양 고대 사상에서 현대까지 이런 사상은 왕성하게 이어지고 있다. 돈과 관련된 행위는 물질을 추구하는 행위이고 그것은 도덕적으로 저열한 행위라는 것이다. 사농공상의 전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했던 것이다.

예술이 그것이 자본이든 권력이든 종교든 관계없이, 외부적인 것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예술의 목적을 “있는 그대로 이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이 세계를 회복하는 것이다”라는 사르트르의 예술론 속에도 잘 드러나 있다. 창조적 행위의 목적은 창조물을 통해서 세계를 총체적으로 재파악하는 것이라는 관점이다.2) 이 과정에서 자유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창조적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은 나쁜 것이고, 만일 자본이 그렇게 한다면 자본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술에 대한 자본의 지배’라는 명칭은 부르주아들이 교회나 왕실 또는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로 등장한 것을 기술하는 말이다.3) 그러나 실제로 예술가들이 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된 것은 시장의 발전으로 스스로 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팔아 경제적 독립을 한 이후이다. 1830년대 신문소설이 등장하면서 소설가들은 수입이 좋은 작가로 등장할 수 있었다. 신문소설이 성공하면서 일부 작가들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수요가 폭발하여 문학공장을 세워 대필자를 고용하여 작품을 대량 생산하였다.4) 

이런 역사적 상황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하였다. 이 구호는 낭만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예술을 위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였다. 예술적 자유는 모든 외적 제약, 비예술적이고 도덕적이며 지적인 가치에서의 해방을 의미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시민적 가치기준으로부터의 독립, 공리적 목표에 대한 무관심,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협력의 거절을 의미했다. 예술가들이 자본이나 정치적 선전의 도구 역할을 거부한 것이다. 

하우저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구호는 사실 한편으로는 산업주의와 보조를 같이하여 진행된 분업화의 표현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ㆍ기계화된 생활에 먹혀들어갈 위험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예술의 방파제이기도 하다. 그것은 한편으로 예술의 합리화ㆍ탈마술화ㆍ협소화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생활의 일반적인 기계화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독자성과 자발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의미한다.”5)고 하였다.

   
▲ 예술가들만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앨런 S. 케이헌은 『지식인과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인의 반감을 ‘정신과 돈’의 갈등으로 파악하고, 그것의 역사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서양 근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잘 보여주었다./사진=앨런 S. 케이헌 저서 『지식인과 자본주의』 표지.


4.
자본과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예술과 시장경제에 대한 예술가들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시장경제의 발전은 예술가들을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였다. 프리드먼이 간파하였듯이 시장 없이는 언론의 자유가 확보되지 않듯이 예술의 자유도 확보되지 않는다. 언론과 예술은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을 실어 나르는 매체가 국가에 종속되어 실질적인 자유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에 대해 무지하면 자유의 원천을 공격하고 비난하기 마련이다. 자본주의와 시장이 모든 자유의 원천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공격한다. 예술가와 지식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격에 관용을 베풀면서 무너지지 않는 저력을 가진 것이 바로 자본주의이고 시장이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1) 앨런 S. 케이헌, 『지식인과 자본주의』, 정명진 옮김, 부글, 2010.

2) 장 폴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김붕구 옮김, 문예출판사, 1986, 71쪽.

3)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백낙청ㆍ염무웅 옮김, 창작과 비평사, 1999, 20-21쪽.

4) 앞의 책, 27쪽.

5) 앞의 책, 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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