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원하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무시?…헌법질서 위배
EBS의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방송이 기존의 민주주의 개념을 왜곡, 학문적 공정성을 잃은 ‘선동’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에게서 나왔다. 자유경제원은 9일 자유경제원 리버티 홀에서 ‘EBS 민주주의 방송,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근 5부작으로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민주주의』(이하 EBS)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5명의 전문 패널이 EBS 교육방송의 ‘민주주의 왜곡’ 실태를 분석했다.

이날 3부 『민주주의가 우선한다』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은 “EBS는 ‘민주주의 다수결의 결정’이 자유주의 원리에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다수가 원하면 개인의 자유는 무시해도 된다는 무시무시한 선동적 메시지”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에서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부정하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소장은 “EBS 다큐프라임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EBS 제작진이 민주주의가 최우선적이라 믿는다면, 다수파가 민주주의적 다수결 절차에 따라 소수파의 재산을 약탈해서 다수파에게 나누어주기로 했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주장”이라며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부익부빈익분, 경제성장률 하락 등이 초래될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김 소장은 “검증되지 못한 주장을 이렇게 마치 검증된 사실인양 대담하게 공영방송에서 제시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EBS 다큐프라임 제작자가 편파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왜 민주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들조차 민주주의에 확실한 고삐를 매려고 했는지 소개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김이석 소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3부-민주주의가 우선한다>
우선할 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주의

1. 민주주의는 무엇에 우선하나 - 자유 헌정질서?

EBS의 교양 프로그램은 '공영' 교육방송EBS에서 방송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은 여기에서 방송되는 내용을 명명백백한 불변의 진실쯤으로 대접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송에 비해 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의견에 대해 다룰 때는 정확하게 의견을 전달하고 서로 다른 의견들을 정확하고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방송된 다큐프라임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에 적대적인 이름이 알려진 해외 좌파지식인들의 의견들을 세계의 석학이라고 소개한 반면, 이와 정반대로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길 때 초래될 경제적 파탄과 개인적 자유의 억압을 지적하는 해외 우파지식인들과 리버테리언들의 의견을 균형 있게 함께 전달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이 치명적인 까닭은 이 프로그램의 "3부 민주주의"는 현재 우리의 헌법질서마저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부의 제목이 민주주의가 우선한다고 되어 있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에 우선한다는 부분이 빠져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 무엇이란 바로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다. 

시장경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신의 사유재산을 자유롭게 사용, 처분할 수 있다는 경제적 자유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 우리의 헌법도 이 기본질서의 뼈대 위에 서 있다. 다만 이 기본질서의 틀 위에서 여러 긴박한 이유가 있을 때 매우 제한적으로 이를(민주주의 정치과정을 통해)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3부는 소위 좌파 해외석학들의 입을 빌려 민주주의 다수결의 결정이 자유주의의 원리에 우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수결 민주주의가 숭고한 최고의 원리라는 것이다. 다수가 원하면 개인의 자유는 무시해도 된다는 무시무시한 선동적 메시지를 대담하게 주장하고 있다.

   
▲ EBS 다큐프라임 제작자가 편파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최소한 공공선택론의 시각을 소개했어야 했다. 왜 민주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위대한 자유주의사상가들조차 민주주의에 확실한 고삐를 매려고 했는지 소개했어야 했다./사진=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이 프로그램에는 우리 헌법119조2항을 언급하면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앞선다는 주장을 펴는 부분이 나온다. 경제적 자유에 앞서 민주주의가 우선한다면, 정치적 과정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개인의 재산(권)에 우선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메시지다. 정말 민주주의가 최고의 원리이고 개인의 자유는 그 원리에 복속해야 한다면, 소수파는 무조건 다수파의 의사에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는 전혀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개인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정말 민주주의가 최우선적이라고 믿는다면, 그렇다면 다수파 노란 머리들이 민주주의적 다수결 절차에 따라 소수파 빨간 머리들의 재산을 약탈해서 다수파 노란 머리들에게 나눠주기로 했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게 없고 그렇게 해도 된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제적 자유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부익부빈익분, 경제성장률 하락 등이 초래될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정말 아직 검증되지 못한 주장을 이렇게 마치 검증된 사실인양 이렇게 대담하게 공영방송에서 제시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통 교과서 경제학에는 시장실패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이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로 기술되어 있다. 최근에는 이런 시장의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서 시장에서는 공급되지 못하는 것으로 지목되던 등대와 같은 것이 실제 시장에서 잘 공급되고 있었음이 알려지면서, 시장의 실패보다는 정부의 실패에 대해 더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게 경제학계의 인식이다. 정부실패가 훨씬 더 크고 치명적일 수 있으며 흔히 시장의 실패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해 더 파고들어가면 정부가 재산(권)을 제대로 만들어주지 못해서 발생한 정부실패 혹은 정치실패의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프로그램은 정부의 시장의 결과에 대한 간섭을 정당화하는 이유를 시장실패에서 찾지 않고 곧바로 민주주의에서 찾는다. 다시 이런 간섭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적 귀결을 별로 따지지 않는다. 그냥 시장경제를 통제할 권위를 민주주의에 부여한다.

   
▲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민주주의라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통해 정부를 움직여 직간접적인 약탈을 일삼을수록 마치 더 바람직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사진=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2. 자유시장경제는 일반 소비자대중에게 봉사한다

물론 실제 민주주의는 언제나 대중의 의사가 언제나 압도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선택론은 잘 조직화된 소수가 다수의 비용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민주주의 정치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되고 있는 이유를 분산된 비용-집중화된 이익으로 설명하고 있다. 잘 조직화된 소수의 이익집단은 조직화되지 못한 일반 대중의 세금을 자신들을 위해 쓰도록 하거나 자신들을 위해 일반대중에게 규제를 가하도록 민주주의 정치과정을 악용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소비자들의 이익에 반하는 높은 관세장벽이 그런 규제의 사례다. 정치가들이 여러 이유를 대서 높은 관세장벽을 만들어내면, 국내생산자들은 해외 생산자들과의 경쟁에서 벗어나 높은 가격을 다수의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받을 수 있게 된다. 겉보기에는 누구의 소득도 직접 가져가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국내 생산자들이 이익을 위해 다수의 국내 소비자들의 이익이 희생된다.

그래서 자유무역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는 일반대중에게 적대적인 게 아니다. 다수의 대중이 귀족의 전용물을 처음으로 누릴 수 있었던 것도, 기업가들이 일반 대중에게 잘 봉사할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두게 하는 시장경제의 유인구조 덕분이었다. 자동차, 세탁기, 항생제 등이 그런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자동차는 귀족들만 탈 수 있었던 현대판 마차다. 그 덕분에 자본주의는 인구의 증가와 획기적인 평균수명의 증가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은 자본주의로 지칭되는 자유시장경제가 마치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는 체제이며, 대중의 이익에 반하는 체제인양 암시하고 있다. 세습 귀족이어서가 아니라 대중들의 필요를 남보다 더 저렴하게 충족시킴으로써 큰 돈을 번 사람들에 대해 이런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성공을 거둔 사람의 저택을 보여주면서 대부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다. 

그 어떤 현실의 정치경제 체제도 특권이 완전히 철폐된 자유시장경제 체제와는 상당히 먼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현재 이 상태에서 자유시장경제에 더 가까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수결 민주주의로 결정할 수 없는 게 더욱 없도록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 경제와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다. 즉, 개인의 재산 혹은 그 일부를 과거에 비해 다수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권위에 의한 정치적 배분"을 하기가 쉬워지게 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에서 중시하는 유인(동기부여)의 원리만 고려하더라도 민주주의를 통한 재분배의 확대는 소를 키울 사람이 사라지게 하고 소를 키우는데 필요한 자본을 소비시켜 경제발전을 지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 프로그램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1원1표, 민주주의를1인1표의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나서, 시장경제에서 부자들은 돈에 비례한 엄청난 투표권이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권이 거의 없다고 암시하며 마치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되고, 또 왜 이런 유인구조가 살아 있는 체제여서 특별히 감시하지 않더라도 개인적 탐욕이 시장에서 순치되는지에 대한 이해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시장에서 부자가 되려면 그가 만들고 판매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남들이 더 많이 더 비싼 가격으로 자발적으로 사줄 때 가능하다. 정치는 '권위에 의한 자원의 배분'이라는 정의에서 보듯이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얼마든지 남에게 봉사하지 않으면서 소득과 부를 누릴 기회가 산재해 있다. 정부 부문은 원천적으로 공급이 독점이어서 소비자들에게 필요는 것들을 공급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민주주의의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도래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실증연구들이 많다. 더구나 이런 실증연구들은 경제학에서 중시하는 유인(동기부여)의 문제 등의 이론적 기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사진=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


3. 경제적 자유가 높을수록 경제성장도 빨라지고 소득불평등도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40년대에서1980년대를 자본주의의 황금기라면서 시장경제에 대해 민주주의가 통제를 잘 가할수록 더 높은 성장을 하는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차대전 이후 여러 국가들에서 이상적인 자유시장 경제와는 일정한 괴리가 있고 소위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적 요소를 함께 지니는 혼합경제(mixed economy)였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차대전 이후 각국은 전시통제 경제에 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더 보장되는 시기를 보냈으며, 이 시기의 번영은 이 프로그램의 주장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힉스(Higgs)와 같은 경제사가는 이차대전이 끝나면서 미국경제체제가 루즈벨트의 전시통제경제에서 벗어나는 일종의 체제선환(regime change)을 한 덕분에 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그 결과 미국이 번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오이켄 등 소위 질서자유주의자들이 독일의 경제체제를 히틀러식 통제경제에서 시장의 경쟁질서를 중시함으로써 가격에 대한 통제를 전격적으로 풀고 안정적 화폐가치를 유지했던 덕분에 라인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이 시기를 완전히 이와는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적 시간적 경과와 변화들을 빼버린 채 그 시기를 떼어내어 자본주의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강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식으로 곡해하고 있다.  

사실 경험적 자료의 제시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왜 그런 결과가 초래했는지 논리적 이론적 설명을 동시에 제시돼야 한다. 논리적 설명이 배제된 경험적 자료의 제시, 특히 역사적 맥락을 배제한 단편적 사실의 제시는 곡해를 유발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가격이 올랐는데도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경험적 자료가 있다고 해보자. 그러나 이런 경험적 자료로부터 우리가 가격을 올릴수록 그 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사람들이 가격이 오르자 앞으로 가격이 지금보다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을 불러와 현재 그 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면, 이는 현재 가격이 미래에 등장할 가격에 비해 더 싸다는 의미다. 따라서 현재 수요가 늘어난 것은 사람들이 가격이 쌀수록 더 사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민주주의의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도래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실증연구들도 많이 있다. 더구나 이런 실증연구들은 경제학에서 중시하는 유인(동기부여)의 문제 등의 이론적 기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프레이저연구소는 매년 각국의 경제적 자유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방대한 자료들을 이용한 많은 실증분석연구들은 대부분 경제자유도가 높을수록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다는 상관관계를 보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 대비 정부지출 비중"이나"규제" 등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클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주의 정치를 통해 시장경제를 통제할수록 경제성장률이 낮아진다는 의미다. 이런 정부 간섭과 대치되는 법의 지배 이념이 더 잘 관철될수록 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다.  

이런 실증연구들 가운데 일부는 한 가지 흥미로운 상관관계를 보여주기도 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경제자유도와 소득불평등도가 반비례한다는 상관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진행되면, 일반대중의 소득이 높아지고 그 결과 생활수준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소득분포를 특정한 방향으로 진행시킨다는 논리적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실증결과는 부유한 기득권 계층이 정치적 과정을 이용해서 더 많은 특권을 누릴수록 소득분배가 부유층에 집중되는데 이런 국가에 경제적 자유도가 높아지면 그런 특권을 통한 소득의 향유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소득분포도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게 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인플레이션은"소득과 부의 편중"이 심해지게 만드는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다. (필립 바구스,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 2015). 그리고 소비자들에게 잘 봉사하지 못한 결과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 정상이지만 만약 이 회사가 도산하면 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낸다는 이유를 대어 그 좀비기업을 계속 존속시키는 대마불사가 관행이 된 사회는 자유로운 시장질서가 존중되는 사회에 비해 계층이동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이 프로그램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침묵하고 있다.

   
▲ EBS 다큐프라임 제작진은 자본주의보다 이에 대한 민주주의의 통제가 우선이라는 특정한 관점을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다수결을 이용한 특권의 창출은 지대추구라는 행위로 나온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전횡과 지역이기주의 횡행이 대표적 사례다./자료사진=연합뉴스


4. 정부의 개인적 재산(권)의 보호와 무제한 민주주의의 혼동

아담 스미스를 비롯한 고전적 자유주의자과 미제스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의적인 정부의 간섭은"분업을 통한 협업"이라는 시장의 기능을 해친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크루소처럼 혼자 사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살기 때문에, 즉 사회에서 모여 살기 때문에 희소한 재화의 소유와 관련된 규칙을 준수하면서 서로 자유롭게 교환을 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경제학을 통해 얻은 중요한 교훈이다. 그런데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간섭은 이런 분업을 통한 협업의 기회를 박탈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는 민주주의를 통해 정부를 움직여 직간접적인 약탈을 일삼을수록 마치 더 바람직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이에크가 말한 무제한적 민주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을 감고 있다. 그렇게 할수록 사람들의 자발적 협력의 범위를 줄이고 저해한다는 점을 완전히 망각하게 하고 있다. 

인류의 번영과 문명의 발전에 있어 자유시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미제스도 정부가 (개인적) 재산의 보호를 할 때, 다른 말로 법의 지배 원칙이 제대로 준수될 때 시장의 거래가 활발해질 수 있음을 재삼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기능과 민주정치 과정을 통한 약탈의 허용은 완전히 별개 문제다. 그럼에도 이 프로그램에서는 이 두 가지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법의 지배 아래 행해지는 제한적 민주주의와 다수결 민주주의에 무제한적 권위를 부여하는 무제한적 민주주의를 구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보호와 이에 따른 경제적 번영이 재산에 대한 침해와 이로 인한 경제적 파탄으로부터 구분되지 않고 있다.

5.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와 소득재분배

이 프로그램은 논리적으로도 취약하다. 예를 하나만 들자면,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정부가 공정하지 못하고 느낄 때, 즉, 일부 계층에 편파적이라고 느낄 때, 정부가 신뢰받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이와 동시에 민주주의 다수결을 통해(시장의 자발적 자원배분을 대신해서) 정부로 하여금A로부터 빼앗아B에게 주는"권위에 의한 자원배분"을 하면 시민들이 이런 정부를 공정하다고 여기고 신뢰가 높아지며 이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아마도 소득을 얻은 과정이나 절차의 정당성과는 공정성 개념이 아무런 관계가 없고 오로지 부자에게서 빈자에게로 소득재분배가 더 대규모로 이루어질수록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여긴다고 가정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도둑의 것을 빼앗는 것은 정당하다고 여기지만 최소한 노심초사하고 애써 노력한 결과물을 그 소유자의 허락도 없이 정부가 (다수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가져가는 게 공정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EBS 다큐프라임 '민주주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실험의 실패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다. 북한의 인민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자료사진=연합뉴스


6.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에 대한 성찰이 없는 프로그램

또 하나 반드시 지적해야 할 사실은 이 프로그램은 사회주의(공산주의) 실험의 실패에 대한 성찰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김이석, 시장경제원리, 2014) 그런 까닭인지 서구에서 복지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혁에 나섰던 부분도 언급이 없다.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정치적 파괴력을 자랑하고 있을 때 많은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복지국가가 도입됐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가 일반인에게조차 명확해지고 냉전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그리고 복지병의 실체가 두드러지면서 서구의 소위 복지국가들이 복지병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혁을 단행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이 프로그램은 경제에 대한 민주주의의 통제라는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하이에크가 쓴 <노예의 길>을 읽어보았더라면, 전시처럼 경제를 통제할 때 그리고 시장경제를 마치 군대조직처럼 만들 때 초래될 문제들에 대해 좀더 고민했을 것이고 그 결과 이 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이차대전 직후 애틀리가 예상밖에 처질을 패퇴시키고 수상이 되면서"경제를 전시통제 체제에서와 같이 만들자"는 장면을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장면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그가 기울인 다른 책들에 대한 열정의 반만이라도 하이에크가 쓴<법, 입법, 그리고 자유>를 읽어보았다면, 아니면 그의 사상을 해설한 국내 저술(민경국, 하이에크의 지혜)라도 한번 읽어보았다면 이 프로그램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7. 자유주의적 시각에 대한 무시

결론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자본주의보다 이에 대한 민주주의의 통제가 우선이라는 특정한 관점을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사실 민주주의는 최근 공공선택론에서 활발하게 연구된 주제이고 민주주의 다수결을 이용한 특권의 창출은 지대추구행위라는 특별한 용어 아래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이런 연구결과나 학파의 존재 자체조차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이에크는 공공선택론의 선구자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자칫 약탈의 도구가 되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지켜주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고심했으며 무제한 민주주의를 헌법주의, 법의 지배 원리 등으로 단단히 고삐를 단단하게 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가 편파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최소한 공공선택론의 시각을 소개했어야 했다. 왜 민주주의에 호의적이었던 위대한 자유주의사상가들조차 민주주의에 확실한 고삐를 매려고 했는지,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정치)권력을 제한하고자 했는지 소개했어야 했다. 그것을 빼놓고서 어떻게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다큐프라임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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