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무웅-미당 죽이기·백낙청-김수영 띄우기 위험한 공조가 민든 신화
예로부터 한 시대의 문제를 꼬집고 비판하는 문학작품은 대중의 환영을 받아왔다. 그 중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소시민적 슬픔이 담긴 시를 쓰던 김수영은 1960년 본격적으로 사회참여시를 쓰기 시작하여 이름을 알린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일찍 등졌지만 그의 작품은 문단의 지지를 받으며 더 큰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김수영의 사회참여시는 대중의 분노를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어버렸다. 자유경제원은 이에 '김수영 가짜 신화'가 만들어진 배경, 문단권력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13일 리버티홀에서 열린 김수영 비판 연속세미나 종합 토론회 ‘시인 김수영 바로보기 - 누가 김수영을 이용하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미디어펜 조우석 주필은 “요즘의 작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은 김수영을 즐기고 소비하고 있는 중”이라며 “이들에게서 ‘만들어진 신화’ 김수영에 대한 의구심은 한 자락도 없으며 종교 교리문답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 주필은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한다”며 “이런 황당한 질서를 만든 장본인은 민중문학 패거리, 백낙청과 염무웅”이라고 밝혔다.

조 주필은 “둘의 협력은 마르크시즘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조 관계를 연상하면 된다”며 “30년이 흐른 지금도 백낙청-염무웅의 평론은 거의 도그마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조 주필은 “둘은 역할분담을 했는데, 염무웅은 미당을 살해했고, 그 와중에 백낙청은 김수영을 띄웠다”며 “김수영은 썩 쓸모있는 전략상품이었던 셈”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조 주필은 “인간 김수영은 과연 어땠을까”라고 반문하며 “작가로서 김수영은 귀에 쏙 들어오는 시를 쓴 사람이 아닌 꽤 난해한 모더니스트로 분류돼야 옳다”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조우석 주필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우석 주필
‘시인 김수영=체 게바라’가 아니라니까요?

김수영 신화는 당신의 생각보다 오래 됐다. 20년을 훌쩍 넘긴 대한민국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평론가 5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했을 때도 김수영은 ‘해방 이후 대표시인 50명’ 중 1위로 뽑혔다. 그걸 전후해 김수영을 다룬 석-박사 학위논문만 수백 편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가장 왕성하게 비평행위의 대상으로 등장한 핫한 문인이다. 위력도 상상 이상이라서 ‘떠받들어지는 시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람, 무엇보다 젊은 층이 좋아한다.

요즘의 작가들은 물론 일반 대중은 김수영을 그렇게 즐기고 소비하고 있는 중이다. 문예지가 현역시인들에게 ‘벼락 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 선정을 의뢰했을 때 1위에 랭크된 것도 김수영이었는데, 왜 그에게 끌리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왜 김수영이 매력적인가를 물었을 때 “시인에게 정작 두려운 건 자유의 결핍이 아니라 자유의 완성임을 김수영은 일러준다”고 한 응답자는 거침없이 응답했다. 

그건 거의 자동반응에 가깝다. ‘만들어진 신화’ 김수영에 대한 의구심은 한 자락도 없다. 그건 문학이 아니라 차라리 종교 교리문답의 수준이다. 무조건 ‘김수영=자유’이고, ‘김수영=양심’으로 통한다. 또 다른 응답자는 또 이렇게 대답했다. “김수영은 폭력적 질서에 갇혀있는 나의 시들을 화들짝 일깨운다.”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김수영은 문학의 체 게바라로 통한다. 그들에게 김수영은 시인 그 이상의 아이돌인 셈일까?

그럼 누가 이런 황당한 질서를 만들었을까? 민중문학 패거리의 솜씨다. 1970년대 이후 문단 헤게모니를 쥐어온 게 민족문학(민중문학과 동의어) 진영이니까. 구체적으로 이 작업을 진행한 평론가는 누구일까? 저들의 의도와 복선을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도 이걸 섬세하게 규명해야 하는데, 김수영 신화 만들기를 쌍끌이했던 장본인이 한국문학의 오너 격인 백낙청과, 그의 옛 파트너 문학평론가 염무웅이다. 둘의 협력은 마르크시즘의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조 관계를 연상하면 된다. 

이른바 이론비평과 실제비평에서 나란히 보조를 맞췄고, 이후 대부분의 평론가들을 이들의 움직임을 따랐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백낙청-염무웅의 평론은 거의 도그마로 작용한다. 일테면 자유주의 문학진영의 간판이자, 근현대시사의 큰 봉우리인 미당 서정주를 표적 살해했던 것도 바로 그들이다. 둘은 역할분담을 했는데, 염무웅은 미당을 살해했고, 그 와중에 백낙청은 김수영을 띄웠다. 김수영은 썩 쓸모있는 전략상품이었던 셈이다.

   
▲ 김수영 신화는 오래 됐다. 20년을 훌쩍 넘긴 대한민국 광복 50주년을 맞아 조선일보가 평론가 50명을 대상으로 앙케이트를 했을 때도 김수영은 '해방 이후 대표시인 50명' 중 1위로 뽑혔다./사진=SBS 카드뉴스 '스브스뉴스'


미당 평가는 이후 천편일률이다. 문학적 평가와 상관없이 친일문학의 흔적을 가졌다느니, 독재정권과 친했다느니 하는 식이다.  ‘그 이후’가 문제다. 좌파문학 진영은 자유주의 문단의 거장 미당을 끌어내린 자리에 누군가를 올려놓아 자기들의 문학이념을 대변할까를 고심했다. 그 간택 대상이 김수영이다. 지난 30여년 김수영 신화는 미당의 동상을 끌어내린 자리에 새 우상을 세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저들의 복합적 노림수가 있었다. 그걸 노리는 민중문학 진영에게 김수영은 충분한 전술-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당초에 민중문학은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을 함께 띄웠다.  요즘 말로 ‘우리민족끼리’ 정서를 대변하는 민족시인이 바로 그였으니까. 즉 ‘민족적 순수와 반외세’의 카드인 신동엽이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먹혀들었던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이 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동엽은 좀 진부했다. 선동성이 떨어졌고, 대표성도 문제가 됐다. 그러자 모더니스트에서 출발했으나 열렬한 현실참여파로 분류되던 김수영을 끌어안았는데, 그건 저들에게 훌륭한 신의 한 수였다. 저들이 원하는 건 좌파문학의 맹장을 내세우는 게 아니었다. 좌파 냄새를 별로 풍기지 않는 인물을 내세워  한국문학 전체를 먹어치우는 작업이었다.  생각해보라. 김수영 카드를 뽑아드니 고통정리가 절로 됐다. 저들은 해방 이전의 좌파의 간판인 오장환, 이용악, 임화 등을 리스크를 감내해가며 옹호할 필요가 없어졌다.

1950~7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던 민중시 진영의 고은, 민영, 문병란, 이성부, 조태일, 김광규, 이동순 등 고만고만한 ‘난쟁이 그룹’에 비해 김수영은 상대적으로 거물이다. 그리고 김수영에게는 1980년대 이른바 노동해방문학을 했던 시인그룹인 김남주, 백무산, 박노해 같은 붉은 색깔도 없으니 대중성도 높았다. 색깔도 없으니 대중성도 높았다. 그게 포인트다. 한마디로 김수영은 래디컬 리버럴리스트 문학인이었는데, 그런 사람을 민중문학 진영의 간판스타로 포장해 ‘입양’하는 것이 다목적으로 훌륭했다. 

김수영은 프롤레타리아 시인이 아니고 쁘띠 부르주와 시인으로 분류되니 그 점도 괜찮았다. 그걸 ‘시민적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자, ‘양심의 상징’으로 치켜세울 경우 해방 이후 보수화된 문학 수요층에게 지적-정서적 자극을 주기에 썩 훌륭한 카드라고 저들은 판단했다. 그런 걸 새로운 시대의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포장하기에도 유리했는데, 결과적으로 1970~80년대 사회분위기에서 그런 전략이 훌륭하게 먹혔다. 

김수영-신동엽 류를 함께 내세울 경우 진보적이면서도 제법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였다. 그런 전략 아래서 미당이란 이름은 시적 천품을 타고난 노회한 제왕이 아니라 때 묻은 시인으로 밀어냈다.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이라는 이미지도 붙여줬다. 대신 모더니스트이자 현실참여파인 김수영은 정직한 양심의 상징이자, 도덕적 순결성 그리고 과격한 우상파괴자로서 비교할 수 없이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줄줄이 갖다 붙였다.

   
▲ 1950~70년대 한국문단에서 활동했던 민중시 진영의 고은, 민영, 문병란, 이성부, 조태일, 김광규, 이동순 등 고만고만한 '난쟁이 그룹'에 비해 김수영은 상대적으로 거물이었고 대중성도 높았다./사진=SBS 카드뉴스 '스브스뉴스'


그럼 백낙청과 그 아류가 변질시키기 이전 김수영의 진짜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가 대표작 ‘풀’로 상징되는 이른바 민중시인이 아니라면 어떤 게 진면목일까? 현대시사에서 무시못할 시인의 한 명으로, 그 못지않게 빼어난 산문을 줄기차게 썼던 김수영은 과연 누구이며, 인간 김수영은 과연 어땠을까? 작가로서 김수영은 귀에 쏙 들어오는 시를 쓴 사람이 아닌 꽤 난해한 모더니스트로 분류돼야 옳다. 그게 먼저다.

병적인 집착에 가까운 청교도적 자기비판과 도덕적 순결함을 강조하는 대목도 그의 모습의 하나가 분명하다. 권력 앞에 반항하지 못하는, 옹졸한 자기를 질책하는 대표시의 하나인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러나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김수영은 요즘 젊은 층과 지식인들이 습관적으로 떠올리는 체 게바라는 아니라는 점이다. 김수영 신화가 허물어진 지금 그게 새로운 진실임을 기억해두시라. /조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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